‘올해의 책’ 못잖은… 북리뷰팀의 사심 담은 ‘픽’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픽 = 권호영 기자

문화일보 북리뷰팀 기자와 외부 필진이 지난주 ‘올해의 책’에 이어 ‘사심’을 가득 담은 각자의 리스트를 뽑았다. ‘올해의 책’으로 선택되지 못했지만 “이대로 떠나보낼 순 없다”는 간절함으로. 무게감을 덜고 개인적 취향에 집중해 뽑고 보니 하나같이 통통 튀는 개성과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갖춘 ‘좋은’ 책들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재밌게 즐겨주시길. 리스트가 흥미롭다면, 책도 한번 들춰보시길. 내년에도 멋진 책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북리뷰팀


■ 오남석 기자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초유의’ ‘최악의’ ‘끝 모를’ ‘극심한’…. 2021년 한 해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어디서든 들을 수 있었던 수식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 시대를 분석한 묵직한 책들에 특히 눈길이 간 이유다.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책세상)은 정치적 극단주의의 주력군이 누구이며, 어쩌면 우리 옆집에 사는 이웃일 수도 있는 그들이 어쩌다 그런 병적인 흐름에 휩쓸리게 됐는지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와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공론장에서 소외된 ‘버려진 사람들’에 주목한다. 혐오의 시대를 넘어서려면 이들 버려진 사람을 돌아봐야 한다는 메시지는 대통령선거를 앞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프로보커터’(서해문집)는 온라인 공간에서 의도적 도발을 통해 조회 수를 끌어올리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쁜 관종(관심종자)’으로서 프로보커터(provocateur)의 실체를 파헤친 책이다. 저자 김내훈이 1992년생 소장 연구자라는 사실은 그의 후속작을 기대하게 한다. ‘지리 대전’(글항아리)은 미국과 중국이 무력 충돌할 경우 그 현장이 될 가능성이 큰 남중국해의 복잡다기한 역사와 지정학적·지경학적 긴장의 기원을 추적했다.

한때 절멸 대상으로 취급받은 자폐인이 ‘조금 다른 사람’으로 인정받기까지의 역사를 되짚은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꿈꿀자유), 기후 변화와 생물 다양성 파괴에 맞서 국제종자저장고를 만든 ‘행동하는 낙관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세계의 끝 씨앗 창고’(마농지)는 암울한 현실 속에도 희망을 품게 하는 책이다.


■ 장은수 출판평론가

곳곳에 누적된 어둠이 책의 촉수를 예민하게 만드는 듯하다. 상처와 절망의 감지력은 언제나 좋은 작가의 역능이었으나, 팬데믹 두 해째인 올해는 민감도가 더 높아진 느낌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에서 작가는 한국 현대사 속 학살의 현장으로 어두운 여행을 떠난다. 광주의 고통을 기록했던 언어가 4·3 학살의 기억에 공명하면서 한라산 눈 위에 시처럼 흩뿌려졌다. 시공을 건너서 영사되는 기억의 섬세한 시학만으로도 권력의 무참한 폭력과 맞설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시간과 물에 대하여’(북하우스)는 횡행하는 ‘기후 반동’에 맞서 우리를 빙하의 장례식장으로 데려간다. 소리 없이 녹아서 사라지는 빙하의 울음은 우리 삶의 연약성도 상징한다. 아이슬란드 빙하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 아름다운 에세이는 우리 자신의 운명을 함께 슬퍼하는 중이다.

‘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한국경제신문)는 오늘날 수많은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고 있는 절망사를 고발한다. 죽음에 이르는 병의 원인은 능력주의와 교육 양극화, 경기 침체와 실업, 공동체 붕괴 등이다. 병에 걸린 이들은 좌절감·고립감·소외감에 빠져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 자살 등으로 매년 수십만 명씩 죽어간다. 방치하면 사회는 붕괴한다.

‘전라디언의 굴레’(생각의힘)는 한국의 지역주의이자 인종주의인 ‘전라도 문제’를 정면으로 들췄고, ‘마이너 필링스’(마티)는 한국계 미국 작가가 인종주의가 소수자 마음에 남기는 감정적 상처를 섬연히 기록했다. 억압된 것은 언젠가 되돌아온다. 나쁜 꿈을 망각의 지층에 묻어둘 때 한 사회는 몰락하고, 건져 올려 공동의 기억으로 삼을 때 문명은 일어선다. 책의 이정표는 그 갈림길에 서 있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 박동미 기자

한 해의 끝이 하필 겨울이어서 아무래도 이 ‘사적인 리스트’는 따뜻한 기운을 품어야 할 것 같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후끈한 여자 목욕탕을 배경으로 한 김유담 작가의 장편 ‘이완의 자세’(창비)다. 세신사 어머니를 둔 ‘유라’가 여탕에서 보고 들은 다양한 여성의 ‘몸’의 풍경이 경직된 몸으로 무용과 대학생이 된 ‘지금’과 함께 펼쳐진다. 연애도 춤도 좀처럼 풀리지 않던 유라가 이완의 자세를 향해가는 성장기.

김초엽 작가의 첫 장편 ‘지구 끝의 온실’(자이언트북스)도 우리를 훈훈하게 한다. ‘더스트’에 잠식된 지구, 폐허가 된 세상, ‘돔 시티’에 들어가는 자와 배제되는 자 등 이야기는 어딘지 ‘지구 끝’에 서 있는 것처럼 불안하지만, 비인간 존재(식물)와 작은 마음들로부터 희망 한 줄기를 발견하는 과정은 ‘온실’ 안의 공기처럼, 당신을 안온하게 만든다.

윤성희 작가의 소설집 ‘날마다 만우절’(문학동네)은 ‘크리스마스 선물’ 같다. ‘그럼에도’ 울지 않았던 어른들에게 주는 산타, 아니 윤 작가의 선물. 소설 속 인물들은 무거운 삶 속에서도 유머와 농담, 그리고 담담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 특히 아련한 풋사랑의 기억을 품은 두 남녀가 우연히 세 번 마주치는 ‘네모난 기억’이 좋았다. 두 사람은 각자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만날 때마다 서로에게 환하게 응답한다. 빛이 잘 드는 곳, 물을 흠뻑 마신 식물처럼 싱싱하게. 돌아보니 별거 아니군 하고 가만히 위로를 주며.

코끝이 찡해질 때가 있다. 누군가의 진심을 볼 때. 무언가에 진심인 사람들을 볼 때. 부부인 김혼비·박태하 작가가 대한민국 지역 축제(일명 K-축제) 열두 현장을 둘러보고(라기보다 뛰어들었다) 쓴 ‘전국축제자랑’(민음사)은 그런 진심의 장면들이 담겼다. 수도권과 광역시, 제주는 제외했다. 비교적 조명을 덜 받는 축제를 놀고, 관찰하고, 재밌게 썼다. ‘한국 사람들은 왜 이럴까’란 질문이 ‘한국 사람들은 이렇기 때문에’라는 진심 어린 대답으로 바뀐다.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황금가지)는 과학소설(SF) 거장 어슐러 르귄의 강연, 에세이, 서평 등을 모았다. 위대한 작가이면서, 열정적인 독서가였던 르귄은 읽기, 쓰기, 말하기 등 ‘글을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궁극적으로는 소설과 문학, 그러니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상상력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르귄에게 설득당한다면, 그 세계에 입문한다면,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내년엔 좀 더 잘생겨질지도. 아, 얼굴 말고 영혼.


■ 장동석 출판평론가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까.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한티재)은 인간 삶의 원초적인 기쁨인 노동과, 그것이 기쁨이 되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는다. 꼬집되, 우리가 손을 내밀어야 하는 이들을 향한 애정이 절절히 묻어난다. 인간이란 “살아오면서 먹은 음식의 총체”라고 정의하는 저자는 가족의 사랑과 그리움 등 기억과 사연이 깃든 음식이야말로 “무겁고 복잡하며 귀한” 그 무엇이라고 정의한다. 손을 내밀어야 하는 이들이 어디 한둘인가만, ‘로지나 노, 지나’(우리학교)는 불법인간으로 살아가는 ‘미등록 이주민들의 삶의 자취를 좇는다. 다섯 살에 한국에 온 방글라데시 소녀 로지나의 성장기가 눈물겹다. 온갖 이슈만 따라다니는 우리의 눈은 언제쯤 미등록이주아동·청소년들에게도 가닿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신의 전쟁’(교양인)은 평화의 왕이어야 하는 신의 이름으로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과, 종교 뒤에 숨어 권력을 차지하고자 저지른 폭력을 종교에 덧씌우는 인간의 저열함을 꼬집는다. ‘걸으면 보이는 도시, 서울’(뜨인돌)은 도시민이 살아온 하나의 자취로서의 서울을 오롯하게 재현한다. 건축가인 저자가 직접 그린 서울 곳곳의 세밀화도 일품이지만, 개개의 장소들을 역사와 함께 엮어낸 저자의 글솜씨가 유독 탁월하다.

걷다 보면 종종 발길이 숲으로 향한다. ‘숲, 다시 보기를 권함’(더숲)은 그때 유용한 책이다. 숲은, 크게 보면 자연은 스스로 필요한 환경을 만들 줄 알고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까지 지녔다. 숲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숲에 맡겨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숲, 그곳에서 태어난 책들이 올해도 그랬듯, 내년에도 눈 밝은 독자들과 만나기를 기대한다.


■ 나윤석 기자

‘직업’을 이리저리 잘 바꾸는 이도 있고, 한 자리를 우직하게 지키는 이도 있다. 전자를 보면 재주가 좋다는 생각이 들고, 후자를 만나면 숙연해진다. ‘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책과함께)은 르네상스 시대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20년’을 조명한다. 미켈란젤로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식어가는 재능에 대한 회의에도 불구하고,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에 헌신하며 ‘최후의 걸작’을 남기고 떠났다. 그는 젊었을 때도, 천국으로 향하는 순간에도 ‘예술가’였다. ‘기자’로 일한 지 10년이 조금 넘었다. 10년 뒤, 20년 뒤에도 세상 돌아가는 걸 취재하고 글을 쓸 수 있을까. 장담할 순 없어도 그랬으면 좋겠다. 한눈 팔지 않고, 한 발 한 발 뚜벅뚜벅.

‘인생은 왜 50부터 반등하는가’(부키)는 이런 다짐을 지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안긴 책이다. 저자는 인생 곡선이 40대에 최정점을 찍고 하향하는 ∩자형이 아니라 ‘중년의 슬럼프’를 지나 다시 행복을 되찾는 ∪자형이라고 말한다. 근거 없는 낙관론이 아니라 빅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희망의 그래프’를 제시하기에 덥석 믿고 싶어졌다. 그래, 오르락내리락 굴곡이 있겠지만 10년쯤 뒤엔 ‘반등’할 수 있을 거야.

두 책이 ‘앞날’을 그리게 했다면, ‘요즘 애들’(RHK)은 ‘오늘’을 숙고하게 만들었다. 마흔 언저리로 ‘나의 세대’인 저자가 ‘나의 세대’에게 바치는 헌사인 책은 3040의 ‘번아웃’을 인류학적 시선으로 파고든다. ‘요즘 애들’이 힘겨운 건 게으름 탓이 아닌 못난 체제 탓이라는 말과 함께. 아울러 부동산 광풍을 여성주의 관점으로 분석한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창비), 코로나 시대 ‘마스크의 윤리학’을 고민한 ‘의무란 무엇인가’(열린책들)도 ‘사적 리스트’에 담아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