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사도광산 같은 ‘갈등유산’… 세계유산 추진 애초에 무리였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최근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둘러싸고 논란이 이는 세계유산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왼쪽은 일본 정부가 역사 왜곡 논란 속에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 온 사도광산의 모습. 오른쪽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이후 OUV 훼손 논란에 휩싸인 터키 이스탄불 역사지구(위)와 일본 메이지산업혁명유산의 모습. 자료사진

유네스코 강경대응 기조 무시
강제노역 현장을 ‘유산’ 추천
日, 결국 등재 추진 보류할 듯

터키 아야소피아도 논란 대상
박물관서 모스크로 전환 따라
“종교분열 부추기는 행위”비판

‘탁월한 보편적 가치’ 제1원칙
정치·종교탓 취소사례 없지만
개발탓 가치훼손 3건 등재취소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사도(佐渡)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추천하는 구상을 보류할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애초에 일본 정부가 ‘갈등유산’에 대해 강경 대응하는 최근 유네스코의 흐름을 무시하고 무리한 시도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등재된 세계유산도 선정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에 대해 국제사회와 주변국 등이 의문을 제기할 경우 그 지위가 흔들리거나 최악의 경우 등재 취소까지 이르고 있다. 심사 단계부터 논란에 휩싸일 경우 세계유산 등재는 어렵다는 사실을 일본 정부가 간과했다는 얘기다.

24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유네스코 세계유산 중에도 정치와 분쟁, 종교, 역사해석 차이 등의 이유로 국가 간 혹은 이해관계자 간 갈등에 휩싸인 사례들이 있다. 유네스코는 이들 갈등유산 중 세계유산 등재 당시와 비교해 OUV가 훼손됐다는 비판을 받는 사례에 대해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동·서양 문화 교류와 융합의 현장으로 꼽히는 터키 이스탄불 역사지구가 대표적이다. 터키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건물 아야 소피아가 포함된 이스탄불 역사지구는 198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 전 세계 관광객과 문화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 왔으나, 최근 터키의 이슬람 색채가 짙어지면서 논란의 대상이 됐다. 터키 정부가 2019년 공공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던 아야 소피아를 모스크(이슬람 사원)로 다시 전환한 것이다. 6세기 동방정교회 대성당으로 건축된 아야 소피아는 1453년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을 점령한 오스만 제국에 의해 모스크로 변경됐으나 1934년부터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공공박물관으로 사용됐다. 아야 소피아의 용도가 변경되자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에서 “종교 공동체 사이에 분열을 부추기는 행위” “세계 문명에 대한 공개적 도발” 등 반발이 이어졌다. 그러자 유네스코도 2020년 별도 입장문을 내고 “아야 소피아의 세계유산 지위를 재검토하겠다”고 경고했다.

군함도로 널리 알려진 일본 메이지산업혁명유산도 이와 비슷한 사례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당시 일본 정부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징용의 역사를 고의로 누락했다는 한국 등의 반발을 의식해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세계유산 등재 후에는 태도를 바꿔 조선인 강제징용 역사를 부인하는가 하면 ‘유산의 전체적인 역사를 설명하라’는 유네스코의 권고사항도 이행하지 않았다. 결국 유네스코는 2021년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정부의 약속 미이행에 강하게 유감을 표하고 군함도 관련 당사국 간의 대화를 권고하는 내용의 결정문을 채택했다.

아프가니스탄의 고대 불교 유적 바미얀 석불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훼손을 막기 위해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에 등재한 사례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바미얀 석불을 ‘우상 파괴’라는 명분하에 파괴하는 만행을 저지르자 유네스코는 이 석불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한편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에도 포함시켰다. 2021년 탈레반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자 유네스코는 ‘바미얀 석불 파괴 20주년 성명’을 발표하고 이 유산을 보호할 것을 촉구했다.

지금까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1100여 건의 유산 가운데 정치·종교·역사해석 논란 등을 이유로 등재가 취소된 사례는 없다. 오만의 아라비안 오릭스 보호구역(2007년),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2009년), 영국 리버풀 해양산업도시유산(2021년) 등 3건의 등재 취소 사례는 모두 개발로 인해 OUV가 훼손됐다는 판정을 받았다. 강동진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위원 겸 근대문화재분과위원은 “리버풀 항구의 경우 유네스코가 우려를 표한 시점부터 세계유산 등재 취소까지 약 10년이 걸렸다”며 “계속해서 권고를 무시할 경우 메이지산업혁명유산이든 아야 소피아든 이와 비슷한 길을 걸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강 위원은 “사도광산은 메이지산업혁명유산과 유사한 사례이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고 했다. 일본 측이 어물쩍 사도광산의 흑역사를 배제한 채 세계유산 등재를 시도한 것 자체가 최근의 흐름을 무시한 처사라는 얘기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