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타락한 ‘진영 정치’ 심판해야 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네거티브 유난히 극심한 대선
여당의 4·15 총선 압승이 뿌리
조국 사태 면죄부 여기며 독주

유력 후보일수록 퍼주기 공약
정부·기업·민간 부채 임계수위
국민이 나서 국가 파탄 막아야

오는 3월 9일 치러지는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보름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런데 대선 후보들의 공약집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한국 정치를 주도하는 양대 정당은 상호 네거티브에 휘말려 치열한 복마전을 방불케 한다. 저급한 선거전임에도 현명한 선택을 해 보려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각 대선 후보자의 10대 공약 보도자료를 찾았지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각 후보의 10대 공약이 한 줄씩 요약돼 있고 각 줄을 클릭하면 한쪽 분량이 채 되지 않는 추가 설명만이 달려 있을 뿐이다.

물론 요약본이라고 변명하겠지만, 그래도 공약에 대한 설명이 구체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공돼야 한다. 국정 운영과 국민 생활에 미래 지향적 희망을 주는 정책을 제시하고 진정성과 성실성을 보여야 한다. 사실, 정책 개발은 집권 후보다 선거 전의 준비 기간이 훨씬 더 유용하다. 집권 후에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 국정 상황으로 임기응변적 대응이 대부분이다. 집권 첫해에 개혁정책을 펴지 못하면 나머지 임기를 허송세월하게 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대선에 네거티브가 유난히 극심한 것은, 현 정부가 ‘조국 사태’ 때부터 진영 정치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4·15 총선에서의 여당 압승은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의 여망 때문이었지 조국 사태에 대한 면죄부가 아니었다. 이를 착각한 여권은 오만과 독선에 빠졌고, 내로남불의 궤변에 능란해졌다. 이념적 진영 논리는 권력욕으로 타락한 진영 정치로 전락했고, 입법 독주와 권력 오남용의 불상사를 일으켰다.

결국, 현 정권에 몸담았던 고위 인사 가운데 몇몇이 야권의 대선 후보로 나섰고, 그중 한 사람이 유력한 후보로 부상했다. 야당의 ‘정권교체’ 여론이 비등하자 여당은 ‘정치교체’로 맞받아치며 각종 흑색선전을 포함한 네거티브 선거전에 돌입한 양상이다. 진영 논리가 지배하는 네거티브 선거전에서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지고, 확증편향적 탈(脫)진실의 편견이 판을 친다. 정책이 있다면 임기응변적 인기몰이용 공약이 단편적이고 즉흥적으로 제시될 뿐이다. 여당 후보는 탈모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등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을 자랑스러워하고, 야당 후보는 전기차 충전요금 5년간 동결 등 ‘59초 공약짤’에 집중하고 있다.

거대 여야의 두 유력 후보가 지역마다 선심성 공약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면서 특정 세대나 집단을 향한 표(票) 구걸 행위가 선을 넘어섰다. 여야 두 후보 모두 1호 공약으로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피해 지원을 내세웠는데, 이는 550만 명의 종사자 표를 의식한 것이다. 여당 후보는 만 30∼59세를 제외한 전 연령층에 기본소득 또는 수당을 지급하고 ‘전 국민 기본소득’은 내년에 25만 원씩, 임기 내 100만 원으로 늘린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병사 월급 200만 원 인상 등 야당 후보의 공약 베끼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야당 후보는 청년 원가주택 30만 호(수도권 20만 호)를 공급하고, 아기 출산 시 1년간 월 100만 원을 지급하며, 기초연금을 월 최대 30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여야 두 후보가 퍼주기 공약을 노골적으로 경쟁하면서 구체적 재원 조달 계획은 없다. 기껏해야 국비 및 지방비 세출 구조조정, 긴급 추경 편성, 경기회복 세입 증대, 민간 투자 자금 활용, 국가부채 탄력적 적용 등이다. 새로운 재정 확충 계획과 공약별 세부 예산 편성도 없다. 뭉뚱그려, 여당은 270여 개 공약을 추진하는데 300조 원 이상을 전망하고, 야당은 200개 공약 이행을 위해 266조 원의 규모를 예상했다. 무책임한 공약 남발과 무모한 재정 지출로 국가 파탄에 이른 사례는 수없이 많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급속히 높아져 40% 미만이던 것이 현재는 50%를 넘어섰다. 이미 과다 부채 임계치를 넘어선 가계와 기업 부채를 합치면 민간·정부의 부채 비율은 254%까지 확대됐다. 선제 관리가 필요한 시점에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에 빠져 있는 두 유력 후보의 공약을 보고 있노라니 참으로 참담할 뿐이다. 국가 비전과 철학이 실종됐다. 오로지 이기고 보자는 선거에서 국민은 외로운 선택을 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