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선거용 추경, 경제 충격파 더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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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대선 국면에서 딴 목소리를 내던 여야가 21일 의기투합해 코로나19 방역 지원금 추경안을 통과시켰다. 국회 본회의에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의 방역 지원을 명분으로, 정부가 제안한 14조 원보다 2조9000억 원이 더 많은 16조9000억 원의 추경을 관철한 것이다. 국가부채와 통화량은 안중에 없는 이른바 ‘표(票)퓰리즘’이다.

지금은 인플레이션 문제가 심각한 상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넉 달 연속 3%를 기록하고 있다. 그동안 돈이 너무 많이 풀린 결과다.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와 양적완화를 통해 통화량을 늘려 왔고, 코로나19를 맞아 통화량을 더 늘렸다. 지난해 증가한 양만도 400조 원이 넘는다.

이렇게 증가한 통화량은 주택과 주식 등 자산가격의 폭등을 일으켰다. 지난해 8월부터 인플레이션 조짐이 보이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며 긴축 모드로 돌아섰다. 긴축정책으로, 폭등했던 주가와 주택 값은 떨어질 것이고 고통을 겪는 사람과 기업이 많아질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고, 긴축에 따라 사람들과 기업들이 겪는 고통은 통화정책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와 직결돼 있다. 통화정책은 물가 안정을 목표로 한다. 물가 안정을 위해 2%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실시한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율은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로 산정한다. 현재의 통화정책은 소비자물가지수가 2% 이상 상승하지 않는 한 중앙은행이 계속 돈을 푸는 구조다.

그러나 소비자물가지수를 산정할 때 포함되는 재화의 범위는 한정돼 있다. 통화량 증가에 따른 물가 상승은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된 재화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통화량 증가로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되지 않은 재화와 자산가격이 급등해 사람들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면 올바른 통화정책이 아니다. 그런데도 한은과 각국 중앙은행들은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2% 미만이라고 그동안 돈을 계속 풀어 왔다. 그 돈이 자산가격 버블을 일으켰고, 뒤늦게 소비자물가지수 품목들에 영향을 미쳐 ‘인플레이션’이 나타난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돈을 풀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있다. 돈을 풀면 생산이 뒷받침되지 않은 소비가 늘어 물가가 올라 실질소득이 줄어들고, 그로 인해 경제가 쇠퇴하게 된다. 그래서 돈을 풀수록 물가는 오르고 경제는 나빠지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난다.

우리는 지금 그 상황으로 가고 있다. 1970년대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도 그렇게 발생했다. 당시 경기 후퇴는 1960년대의 확대 통화정책으로 인한 붐과 버스트의 결과였다. 그 경기침체를 잠깐 겪고 넘어갔더라면 1970년대 내내 그렇게 심한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경기침체를 타개해 재선을 하겠다는 정치인의 욕심으로 돈을 풀어댔다. 불황은 더 깊어졌고 인플레이션의 고통을 겪었다. 결국 이 사태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정부의 시장 개입을 줄여 시장의 역동성을 살리고 통화관리를 엄격하게 시행함으로써 해소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통화관리를 엄격하게 하고 시장의 역동성을 살려야 한다. 그래야 이 어려움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코로나19 피해 지원을 명목으로 돈 푸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참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