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같은 靑 비해 광화문은 테러 취약…이전하려면 경호 체계 확 바꿔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광화문 광장 앞에서 건널목을 건너는 시민들과 신호 대기 중인 차량들 너머로 보이는 청와대 전경. 뉴시스

■ What -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공약

헬기장·벙커 공간 확보 사실상 어렵고 고층건물 통제도 한계… “정부서울청사 새로 짓는 수준의 공사 필요”
이전땐 제왕적 이미지 탈피·비효율적 업무동선 개선 효과… 역대 대통령, 추진만 하다 경호 문제로 중도 포기

‘탈(脫)청와대’ 기류에 다시 불이 붙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불통’ 국정 운영에 대한 불만이 쌓이며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에 틀어박힌 대통령의 공간이 문제라는 인식이 생긴 상황에서 윤석열 국민의힘·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공약을 들고나오면서다. 하지만 공약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다. 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모든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의 이전 혹은 청와대 공간 재배치를 검토했지만 무산되거나 소폭 변화에 그친 것은 경호와 안전, 보안 등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경호 시스템과 청와대 비서실의 구조로는 불가능하며, 단순히 대통령의 의지 부족을 탓할 문제는 아니라는 게 정치권과 정부 안팎의 입장이다. 단, 뒤집어 얘기하면 경호의 개념부터 바꾸고 해체 수준의 비서실 개편이 전제될 경우 집무실 이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도 된다.

◇다시 불붙은 ‘광화문 대통령’= 윤 후보는 지난달 27일 “새로운 대통령실은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구축될 것”이라며 “기존 청와대 부지는 국민께 돌려드리겠다”고 공약했다. 청와대 관저도 이용하지 않겠다고 했고, 비서실도 확 뜯어고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앞서 안 후보는 청와대를 국빈 영접과 주요 정치 행사가 있는 날에만 쓰고 평소에는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를 이용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사실 새로운 공약은 아니다. 안 후보부터가 5년 전 대선 때도 내놨던 공약이다. 문 대통령 또한 2012년에 이어 2017년에도 ‘광화문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공약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 후 실제 광화문 청사 집무실을 검토했다.

이 같은 공약이 계속되는 이유는 대선에서 승리해 집권했지만 5년 뒤엔 ‘실패한 대통령’으로 물러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게 청와대라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개방되긴 했지만 여전히 청와대와 국민의 일상 공간 사이 물리적 거리도 상당하고, 그만큼 여론과 동떨어진 국정 운영으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대통령의 집무실이 광화문에 위치할 경우 내각 혹은 공직 사회와 거리가 확 가까워지고, 자연스레 국정 운영의 무게중심도 청와대에서 내각과 행정부로 옮겨 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文은 왜 포기했나 = 이때까지 모든 대통령의 탈청와대 시도가 왜 실패했는지를 따져 보면 후보들 공약의 이행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경우 상당한 의지를 갖고 광화문 대통령을 시도했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 준비위원회를 꾸리는가 하면, 내부적으로도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다양한 방안을 검토했다. 정부서울청사 활용 방안 외에도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 부지를 활용하는 방안 등도 따져 봤다. 하지만 결국 2019년 1월 사실상 공약 이행 포기를 선언했다. 당시 유홍준 자문위원은 “대통령 집무실을 현 단계에서 이전하면 청와대 영빈관, 본관, 헬기장 등 집무실 이외 주요 시설 대체 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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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문제는 ‘경호’였다. 전 청와대 경호처 관계자는 “현재의 경호 개념으로는 청와대 밖으로 집무실 이전이 불가능하다”며 “현재 경호는 단순히 대통령 주변만 지키는 게 아니라 유사시를 상정해 적 침투에 대비하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3선 경호로, 경호처와 군·경찰 병력까지 청와대 외곽을 겹겹이 지키는 구조다. 또 다른 전직 경호처 관계자는 “우리 대통령은 단순히 행정부 수반이 아니라 국가원수, 국군통수권자의 권한도 지니고 있고, 현실적으로 북한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에는 대공미사일, 대공포, 공중차단 시스템 등 적의 미사일까지 대비할 수 있는 장비들도 배치돼 있다. 사실상 ‘요새’ 같은 구조를 구축했다. 대통령이 일상적으로 집무를 보는 공간이 광화문으로 옮겨 갈 경우 이 같은 시설의 이동 혹은 재배치가 불가피하다.

고층 건물이 즐비한 광화문과 정부서울청사의 입지는 저격 등 테러에도 취약하다. 경호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경호엔 정말 취약한 구조”라고 밝혔다. 한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설 청사의 창문은 모두 방탄유리로 교체해야 하고, 주변 고층 건물까지 통제가 이뤄져야 한다.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그럼에도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외교안보부처 관계자는 “대통령의 업무는 상당 부분 최고 기밀 사항인데 광화문에 있는 주한미국대사관, 주한일본대사관 등 주요국 대사관과도 가까워 보안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 내 헬기장과 국가위기관리센터(벙커)를 대체할 공간을 찾기 어려운 점도 또 다른 요인이다. 대통령 전용 헬기는 적의 공격을 염두에 두고 항상 2대가 동시에 이륙하는데, 정부서울청사의 헬기장은 안전이 담보되지 않고 동시 이착륙도 불가능하다. 또한, 대통령의 이동 시 시민 통제가 불가피한데, 광화문 집무실의 경우 이로 인한 시민의 불편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있다. 비용과 공사 기간도 실질적인 문제다. 전 경호처 관계자는 “아예 정부서울청사를 새로 짓는 수준의 공사가 필요하다”며 “최소한 2∼3년은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확 바꾸겠다”는 尹, 엇갈리는 전망= 윤 후보 측은 이 같은 요인에 대해 “대통령의 일하는 방식이 바뀌면 경호도 당연히 거기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며 “새로운 경호 개념으로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이양수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수석 대변인은 “경호 규칙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며 “경호처야 새로 당선된 사람이 청와대에 들어가면 좋으니까 핑계를 대는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윤 후보 측은 분리·차단 개념인 기존 경호 대신 안면인식·차량 정보 인식 등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하고, 정보 수집 등을 통해 이상 징후를 보이는 사람이나 차량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출퇴근 경호 대책, 다양한 공격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놨지만 보안 사항이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저격 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이미 파악이 다 돼 있고, 추가로 CCTV와 인력 배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하 벙커와 헬기장 등 각종 작전·보안 시스템은 민간 개방 후라도 청와대 기존 시설을 활용하겠다는 게 윤 후보 측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업무 첫날부터 광화문으로 출근하겠다는 윤 후보의 의지가 워낙 강해 공약은 어떤 식으로든 이행될 것이라는 게 캠프 안팎의 관측이다. 이 수석 대변인은 “경호 때문에 감당해야 할 불편보다는 대통령이 구중궁궐에 있을 때 국민이 느끼는 불편함이 훨씬 크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비서실이 대통령과 함께 정부서울청사로 이동할 경우 야기될 청사 공간 재배치와 관련해서도 윤 후보 측은 청와대 비서실을 아예 확 뜯어고치고, 대폭 줄일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한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윤 후보가 날짜까지 못 박은 것을 보면 어떻게든 실현시킬 것으로 보인다”며 “단, 아예 경호 개념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현재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처럼 결국 광화문에도 집무실을 마련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온다.

민병기·정철순·조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