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에너지 가격 고공 행진과 文정부 뒷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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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러시아가 24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 침공을 개시해 동부 돈바스 지역에 진입한 이후 수도 키예프까지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에 가까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은 친(親)러시아 성향이 강하고, 서부 지역은 탈(脫)러시아 성향이 짙다. 지난 22일 러시아 군의 침공 초기에는 글로벌 금융시장에 대한 충격이 크지 않았으나, 키예프마저 위협받으면서 본격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국제 금융과 에너지 시장에 대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구소련 체제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서진을 우려해 군사적으로는 나토(NATO) 가입을, 정치·경제적으로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지위를 저울질해 왔다.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의존율이 평균 40%에 이르는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와 원만한 관계를 희망하면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기를 바랐다. 따라서 우크라이나를 EU나 나토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점을 간파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는 국가들에 본때를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이에 미국은 경제 제재로 맞서고 있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으며, 언제든 공급망 단절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 경제 불확실성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곡물·에너지·지하자원 공급원이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3대 곡창지대 중 하나이고, 철광석·석탄·망간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네온 등 희귀가스 생산국이다.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천연가스의 3분의 1이 우크라이나의 파이프라인을 통과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10위 교역 대상국인 러시아는 수출시장이자 에너지 공급국이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면서 국제 에너지 가격의 상승세가 가속화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금액은 연간 17억 달러(2021년)인데, 그 절반 이상이 원유·유연탄·천연가스 등 에너지다. 전면전으로 악화하면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외에 우리나라는 에너지 조달에 심각한 타격이 발생할 것이다.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첨단 소재 확보에도 비상이 걸릴 수 있다.

국내 몇몇 기관은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최악의 사태로 치닫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었다. 몇 개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있지만, 외교적 해법에 무게감을 두고 있었다. 서방 국가의 고강도 제재를 우려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적으로 침공할 가능성이 작은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지려고 하고,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처지다. 더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이후 유럽에서는 러시아를 대적할 리더가 없다.

러시아의 침공이 전면전으로 확전되자 우리 정부는 뒤늦게 미국 주도의 대(對)러시아 제재에 참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은 만만찮을 것이다.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를 결코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이렇게 취약한 에너지 수급 체제를 가진 우리나라가 탈원전을 계속 주장할 것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