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돌아가는 남성들 “총 잡을 것…아이들이 그 곳에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폴란드 국경지대 메디카에서 한 우크라이나 가족이 27일 국경검문소를 통과한 뒤 무사 탈출에 감사하며 얼싸안고 있다. 장서우 기자

■ 우크라이나 인접 폴란드 장서우 기자 르포

폴란드 남동부 도시 프셰미실
우크라 피란민 임시거처 마련

구호위한 경찰·봉사자들 붐벼
“목적지로 태워주겠다” 팻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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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로부터 400㎞ 넘게 떨어져 있는 남동부 도시 프셰미실. 커피 한 잔에 바르샤바의 절반 값인 6즈워티(약 1700원)를 받는 이 작은 도시에선 요즘 폴란드어보다 우크라이나어가 더 많이 들린다. 모두 포화가 가득한 모국에서 잠시나마 평화를 찾아 떠나 온 피란민들이다. 키예프에서부터 육로로 오는 열차가 기착하는 프셰미실 중앙역에서 27일(현지시간) 만난 우크라이나인 마리나(35)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나흘을 달려 이곳에 왔다”며 “남편은 아직 키예프에 남아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고 있다. 다행히 통신은 아직 끊기지 않아 텔레그램 등으로 연락하고는 있다”고 했다. 나흘 동안의 여정 끝에 탈출에 성공했다는 그는 역 앞에 쌓여 있는 옷가지들을 뒤적이며 빈 캐리어에 담았다. 바로 옆에서는 군인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쉴 새 없이 구호 물품들을 나르고 있었다.

중앙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초등학교에도 생수병과 주스, 빵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프셰미실 시 당국이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을 위해 마련한 3개의 임시 거처 중 한 곳이다. 벽에 농구 골대가 붙은 체육관 바닥에는 수십 개의 이불과 베개들이 놓여 있었다. 인근 도시에서 교장 선생님으로 일한다는 60대 마렉 사브라모비츠는 “15명의 아이가 곧 온다고 해서 빨리 이불을 새것으로 교체하려 한다”며 바쁘게 이곳저곳을 오갔다.

미군 기지가 있는 제슈프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로베르트(20)는 “스카우트 소속인데 자원해서 왔다”면서 기자에게 커피를 건넸다. 이날 역 주변 곳곳에선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목적지까지 무료로 태워주겠다”는 글귀가 적힌 팻말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15만 러시아 병력이 동부 국경 지대를 넘어 서부 중심 도시 리비우까지 진군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 가운데 이를 피해 차로, 도보로 서쪽 국경을 넘은 피란민들에 대한 구호의 손길도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우크라이나까지 도보로 넘어갈 수 있는 국경 도시 메디카 역시 피란민들과 맞먹는 수의 경찰과 자원봉사자들로 북새통이다. 프셰미실에서 메디카까지 가는 차도는 트렁크에 방한용품을 한가득 실은 차량들로 가득했다. 대부분이 국경을 코앞에 두고서도 몇 시간째 추위에 떨고 있는 가족을 기다리는 이들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공부하는 딸을 기다리고 있던 50대 리아민은 “아이가 없는 여성들은 외국인 남성들과 같은 줄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가 관련 서류가 미비한 외국인 남성들에 대한 검문을 까다롭게 하고 있어 내 딸이 수십 시간째 기다리기만 하고 있다”며 눈물을 보였다.

해가 지면서 급격히 추워진 날씨에도 우크라이나 쪽을 애타게 바라보며 발을 구르는 이들의 수는 줄지 않았다. 바르샤바에 직장이 있지만 이틀 전부터 이곳에 와 머물고 있다는 올렉산드라는 “얼마 전 암 수술을 받은 여동생을 아버지가 데려오고 있는데, 이틀 전 국경에 도착했는데도 아직 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했다. 국경 근처에 아예 숙소를 잡았다는 스테파니아는 “공습이 시작된 후 가족들이 모두 지하 벙커로 피신한 상태”라며 “그 위로 러시아 탱크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더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검문소 뒤편에는 거꾸로 우크라이나로 입경하려는 사람도 30명가량 목격됐다. 대기 줄에 서 있던 한 남성에게 ‘돌아가면 징집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이 그곳에 있다”고 굳은 얼굴로, 짧게 답했다.

장서우 기자 suw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