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러 침공 언급 없이 “강대국에 휘둘리지 말자”는 文 본색

전 세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데 똘똘 뭉쳤다. 국제질서를 바꿀 것이란 전망이 나올 정도로 전례 없는 단결이다. 지난 28일 25년 만에 소집된 유엔 특별총회에서 193개 회원국 중 110여 개국이 발언권을 신청, 러시아 규탄 연설을 했다. 중국과 북한, 쿠바 등 극소수 국가를 제외하고 전 세계 자유민주 진영과 스위스 등 중립국들도 반(反)러시아 제재에 동참했다. 문화와 스포츠 분야까지 행동 통일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일 국정연설에서 “우리는 역사를 통해 독재자가 침략에 대해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그들이 더 많은 혼란을 초래한다는 교훈을 배웠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영화배우 이영애 씨와 BTS 팬클럽은 물론 일반 시민까지 우크라이나 돕기 모금에 참여했다. 이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러시아 침공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강대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주도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며 “대결적 적대가 아니라 대화만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입장은 러시아를 간접적으로 거드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지칭한 강대국이 누구인지도 모호하다. 자국 피해를 감내하면서 침략국에 맞서는 미국까지 포함한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국제질서의 현실을 도외시한 잠꼬대 같은 발상이기도 하다. 좋든 싫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질서를 그런 식으로 외면한다고 해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서 동맹이 중요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70여 년 전 북한·중국·소련이 합작한 침공을 받았을 때 미국을 포함한 16개국 덕분에 존립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 입장이 이렇다 보니 미국이 주재하는 각종 회의에 한국은 초대받지도 못했다. 한미동맹을 훼손하는 반(反)안보 죄책이 심각하다.

한편, 문 대통령은 “첫 민주정부였던 김대중 정부”라고 했다. 1948년 초대 이승만 정부는 물론 1987년 민주화 이후 직선제로 선출된 노태우·김영삼 정부 정통성조차 인정하지 않는 발언이다. 대통령이 임기 끝까지 공산·독재국에 굴종하고 역대 정부를 폄훼한 셈이다. 참담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