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한·일 관계 ‘톱다운 해법’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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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탄생은 대일정책의 변화를 예고한다. 문재인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라는 시한폭탄이 있는데도 한·일 관계를 방치해 최악의 상황을 만들었다. 집권 후반에는 일본과의 대화를 주장했으나, 실질적 대화는커녕 일본으로부터 냉대를 받았다. 문 정부의 대일정책 실패는 북한 문제를 우선시하면서 일본을 협력자가 아니라 방해자로 보는 인식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많다.

윤 당선인은 문 대통령과는 달리 한·일 협력을 중시한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포괄적 협상을 주장하며 과거사 문제의 현안을 풀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면서 한·일 안보 협력에도 적극성을 보인다. 또한,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게이조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업그레이드해 새로운 협력 시대를 만들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탄생으로 최악의 한·일 관계를 풀 계기가 마련된 것은 분명하다. 윤 정부는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미국과의 동맹을 굳건히 하기 위해 한·미·일 협력을 추진할 의지가 보인다. 게다가 더는 한·일 관계의 악화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도 관계 개선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를 고려하면, 윤 정부는 일본과의 대화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윤 당선인이 공약한 대로 한·일 관계 개선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우선, 대통령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 것이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민족주의적 경향이 강한 더불어민주당이 172석을 차지한 현 상황에서는 야당과 협의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거대 야당 민주당이 사사건건 반대하면, 정국은 혼란으로 이어지며 대일 전략외교도 원활히 추진할 수 없다.

또한, 문 정부 아래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반일 시민단체들도 대일정책의 걸림돌이 된다. 선거 막판에는 윤미향 의원을 제명한다는 결의를 하면서도 여전히 정치권은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고 있다. 보수정권 아래서는 대일 강경 시민단체와 피해자 설득이 무엇보다 어려운 과제다. 게다가 현재 일본 정부의 강경 태도도 한·일 관계의 개선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일본 정부가 ‘한국이 제안을 가져와야 한다’는 강경 자세를 유지하면 윤 정부도 반일 여론의 벽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일본의 협조도 매우 중요하다.

윤 당선인은 이전 정부의 대일정책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한·일 관계 개선을 서두르다가 국내적 합의를 무시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피해자 중심주의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피해자와 소통을 경시한 문 대통령의 실패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윤 정부는 감정이나 이념에 경도되기보다는 ‘당당하고 유연한 전략외교’를 실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하루빨리 일제시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정책과 일본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양면 전략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일제 식민지시대 피해자에 대한 국내 대책이 충분히 마련될 때 한국은 일본과의 협의에서 도덕적 우위를 가질 수 있다.

또한, 한·일 정상회담이야말로 한·일 관계 개선의 지름길이다. 현재처럼 한·일 관계가 악화한 상황에서는 톱다운 방식의 한·일 정상회담에서부터 물꼬를 터야 한다. 윤 대통령 취임식에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참석할 수 있다면 한·일 관계의 청신호가 될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