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원했다… ‘스페셜테이너’의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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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 박사만 잡으면 편성이 보장됩니다.”

신규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한 예능 PD는 이렇게 말했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는 요즘 ‘예능 치트키(위기의 순간에 사용하는 만능키)’로 통한다. 그의 촌철살인 멘트에 출연자는 물론이고 시청자들도 귀를 기울인다. 당연히 그가 등장하면 시청률이 오르고 화제성이 동반된다. 오 박사에 앞서 요식업 사업가인 백종원과 반려동물 훈련 전문가 강형욱이 방송가 섭외 1순위였다. 이 전문가들은 최근 방송가를 지탱하는 한 축인 스포테이너(스포츠+엔터테이너)와 더불어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하는 스페셜테이너(스페셜리스트+엔터테이너)라 불린다.

◇오은영, 백종원, 강형욱에게 물어보세요

오 박사는 매일 TV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요일에는 SBS ‘내가 알던 내가 아냐’, 목요일에는 SBS ‘써클 하우스’에 출연하고 금요일 밤 시간대에는 채널A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와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가 연이어 방송된다. 재방송과 케이블 채널 동시 편성까지 고려하면 그야말로 ‘채널만 돌리면’ 오 박사가 나온다. 얼마 전 종방한 TV조선 ‘미친.사랑.X’와 MBC ‘등교 전 망설임’을 비롯해 오 박사를 중심으로 새롭게 준비 중인 프로그램까지, ‘오은영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같은 맥락으로 1500만 반려인구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강 훈련사는 ‘개통령’이라는 수식어를 얻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은 늘어났지만 정작 올바른 훈육법을 모르는 이들에게 강 훈련사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조력자다.

두 전문가의 특징 중 하나는 발상의 전환이다. 두 사람은 “우리 아이가 이상한 행동을 해요” 혹은 “제 반려견을 교정해주세요” 등의 의뢰를 받고 그들의 가족을 관찰한다. 이 과정에서 의외의 결과가 도출되는 경우가 많다. 정작 아이나 반려견이 아니라 그 부모나 견주의 문제 행동이 지적받는 식이다. 잘못된 훈육이나 반응이 더 비뚤어진 행동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휴대전화 게임을 그만하라”는 말에 게임을 중단한 후 휴대전화를 던지고 가는 아이를 나무라는 엄마에게, 오 박사는 “‘게임을 그만하라’는 말에 응한 아이를 일단 칭찬해줘야 해요. 게임을 멈췄는데도 휴대전화를 던진 행위부터 지적하는 엄마의 행동은 또 다른 불화를 야기합니다”라고 조언했다.

또한 강 훈련사는 공격 성향을 보이는 반려견을 애지중지 키우는 견주를 향해 “보호자님, 개를 사랑하죠? 이 친구는 개예요, 사람이에요? 그러면 개로 존중받아야 해요. 정말 내 자식이라면 더 꾸짖고 신경 쓰고 버티고 싸워서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가르쳐 줄 텐데, 자식처럼 사랑한다는 말이 조금 변질된 것 같아요”라고 일침을 놓는다. 반려견의 잘못된 행동조차 사랑으로 감싸려는 견주의 자세가 오히려 공격 성향을 키웠다는 의미다. 이렇듯,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을 뒤집는 그들의 조언이야말로 시청자들이 스페셜테이너에 열광하는 이유다.

백종원 역시 “요리는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쉽고 간단한 눈높이 조리법으로 각광받았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최근 ‘연반인’(연예인+일반인)이 주목받고 있는데, 오은영·강형욱·백종원은 전문가 계열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상황 속 심리 상담, 반려동물과의 동행, 음식 등 대중 모두가 보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더욱 공감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대를 반영하는 스페셜테이너

TV는 시대를 반영한다. 최근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을 끝낸 메달리스트들이 순회하듯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처럼, 각 제작진은 그 시기 대중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분야에 집중하며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오 박사의 인기는 코로나19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붕괴, 난항을 겪는 대인관계 등 대중은 심리적인 허점을 크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전염을 피하기 위한 자발적인 ‘집콕’ 생활과 확진으로 인한 비자발적인 격리 생활은 가족 간 불화도 키웠다. 이런 세태 속에서 대중은 전문가의 심리 상담을 원했고, 오 박사가 구원자로 등장한 셈이다.

오 박사가 TV에 얼굴을 비치기 시작한 건 10여 년 전이다. 2006년부터 시작된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와 EBS1 ‘부모’ 등에서 꾸준히 심리 및 행동 교정에 대해 조언해왔다. 하지만 요즘처럼 각광받지는 못했다. 심리 상담에 대한 대중적 니즈가 형성되지 않은 탓이다. 오 박사의 인기를 견인한 ‘금쪽같은 내 새끼’는 지난 2020년 5월 처음 방송됐다. 2020년 2월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직후다. 당시 사회 환경과 이 프로그램 간의 상관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같은 맥락으로, 백종원 열풍은 요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동반됐다. 그는 쉽고 빠른 요리법을 제시하며 판을 뒤흔들었다. 통상 바른 먹거리를 앞세우던 이전 요리 프로그램과는 달리, 백종원은 맛을 위해 설탕 쏟아붓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는 그가 종이컵에 가득 담긴 설탕을 붓는 장면에 폭포수를 합성했고, 그에게는 ‘슈가보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웬만한 요리를 10분 안에 뚝딱 해치우며 그가 건네는 “참 쉽쥬?”라는 충청도식 사투리는 유행어가 됐다. 현재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백종원의 요리비책’의 구독자 수만 531만 명에 이르고, 6분 47초 분량의 ‘초간단 김치찌개’ 레시피 조회 수는 1096만 회가 넘는다.

강 훈련사 역시 지난 2015년 EBS1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통해 본격적인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그의 인기가 폭발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사이 반려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점차 개선되며 강 훈련사의 훈련법이 새삼 주목받기 시작했다. 반려동물의 행동을 강압적으로 바꾸는 압박 교육이 일반적인 대한민국을 떠나 그는 스무 살부터 호주에서 새로운 훈련법을 익혔다. 이를 바탕으로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시즌3를 비롯해 KBS 2TV ‘개는 훌륭하다’ 등에서 반려동물과 반려인구가 동행할 수 있는 훈련법을 전파하고 있다. 지난 9일 치러진 20대 대선 과정에서도 반려인구에게 어필하는 후보들의 모습이 조명되는 등 강 훈련사는 달라진 시대상 속에서 가장 주목받는 전문가로 탈바꿈했다.

이문행 수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방송인들이 ‘방송 진행 능력’을 갖췄듯, 이들은 자신만의 ‘콘텐츠’를 갖고 있다. 그리고 제작진은 전문가들이 가진 콘텐츠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구축한다. 오 박사의 상담이 아이들의 심리 분석과 교정에서 시작해 성인 대상으로 확대됐듯, 스핀오프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의 활동폭도 넓어지고 있다”면서 “사연 신청자나 연예인들의 고민 상담을 지켜보며 시청자들도 대리만족을 얻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