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혁신성장 정치화’로 경제체질 악화… 尹정부, 혁신생태계 복원 급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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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희숙의 Deep Read - 새 정부와 개혁 ③ 혁신성장

기술변화 중시 ‘내생적 성장론’ 따른 혁신성장 대세… 文정부, ‘소주성’ 내세우며 예산 쏟아붓기 ‘분식회계’ 치중
윤석열 정부, 노동·금융·공공·R&D예산·교육·규제개혁 등 전방위 혁신으로 개인·민간 성장 동력 살려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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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은 본질적으로 기회이며 일자리다. 그렇기 때문에 성장을 위해 애쓰되, 그 부작용으로 성장이 지속 불가능하지 않도록 성장의 내용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경제정책의 목표다. 건강한 성장을 대표해온 캐치프레이즈는 혁신성장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무현 정권 이래로 혁신성장은 창조경제 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각 정권에서 꾸준히 내세워졌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혁신성장에 성공한 정부는 없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혁신성장을 내세우면서도 실은 ‘혁신성장의 정치화’를 꾀했고, 그 결과 경제의 ‘반혁신’이 팽배해졌다.

◇혁신성장의 이론적 연원

혁신성장이 학문적으로 어엿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1980년대 성장론이 탈바꿈하면서다. 당시 지배적 패러다임은 현대 경제성장론의 태두인 ‘솔로 모델’(1956)이었는데, 이 모델은 경제성장이 노동과 자본의 투입으로 결정된다고 봤다. 노동과 자본의 기여분을 제외한 나머지, 예컨대 기술과 지식의 발전 같은 변수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으로 취급됐다.

로버트 루커스 등의 ‘내생적 성장론’은 솔로 모델의 이러한 결핍을 파고들었다. 나머지, 혹은 ‘잔차(residual·관측값과 실제값 사이의 차이)’로 취급받던 기술발전을 성장론의 중심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즉 경제가 끊임없이 스스로 새롭게 해 성장하는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내생적 성장론이 주목한 것은 사람의 능력과 그 능력을 발휘시키는 경제생태계의 특성이다.

이것은 정책적으로 심대한 함의를 갖는다. 유망해 보이는 기업가에게 지원금을 몰아주는 것을 넘어, 경제에 혁신의 바람이 일어나고 흐를 수 있도록 사람을 키우고 경제생태계의 기본과 토양을 가꿔야 좋은 성장정책이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이 확산하면서 이론화한 게 혁신성장이다. 사람을 키우는 인적 자원 정책, 사람의 능력과 물적인 자본이 원활히 결합할 수 있는 시스템 유연성, 사회 내 기술과 지식을 늘리고 모으는 연구·개발(R&D) 정책, 협업을 촉진하는 사회적 신뢰,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 등 경제의 토양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 중에서도 새로운 시도들을 막지 않도록 규제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구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혁신성장의 정치화

그러나 문 정부는 혁신성장이 아니라 ‘혁신성장의 정치화’를 꾀했고, 그 결과는 반혁신이었다. 혁신토양을 가꾸는 지난한 노력이 아니라, 재정을 쏟아부어 단기적 성과를 급조해 정권의 치적으로 홍보하려는 욕심만 부렸다. ‘정공법’이 아닌 ‘분식회계’에만 힘쓴 것이다.

그 본질은 말로만 혁신성장을 떠들며 그나마 있는 혁신의 가능성마저 잘라내는 것이다. 혁신이 스스로 새롭게 하는 것이라면, 군살과 비계를 떼어내는 개혁과 같은 말이다. 비록 아프더라도 우리 경제 안의 무엇을 잘라내야 할지, 고단하더라도 무엇을 북돋아야 할지를 명확히 가리켜야 했다. 그런데 마치 혁신성장이란 자판기에 재정을 집어넣으면 일자리가 튀어나온다는 인식 속에 세금을 기업에 뿌려댔다. 이는 기존의 비계 낀 사업 관행 위에 더 두꺼운 비계를 공적자금으로 입혀주는 것과 같다. ‘160조 원 투자해 일자리 190만 개 창출’이라던 문 정부의 한국판 뉴딜 홍보는 ‘반혁신 선언’이나 다름없다.

문 정부가 내세운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양 바퀴론’은 믿기 어려울 만큼 이분법적이고 도식적이다. 정부가 국민 개인에게 돈을 뿌리거나 임금을 올리는 정부주도 활동이 소득주도성장이고, 혁신기업과 같은 기업주도 활동이 혁신성장이라는 것이다. 혁신활동이 중요하다는 건 두말할 필요 없지만, 기업가에게 ‘아쉬운 거 줄 테니 혁신하라’고 재촉하는 것은 혁신성장이 아니다. 문 정부는 결국 가장 적극적으로 혁신성장이라는 용어를 쓴 정부지만, 실은 경제의 체질을 가장 악화시킨 역설을 가져온 정권으로 기록됐다.

◇혁신생태계가 문제다

아프지 않은 혁신은 없다. 우버나 ‘타다’처럼 인공지능, 인터넷, 클라우드 기술 등에 힘입어 발전한 승차공유서비스업의 혁신 시도가 기록적인 속도로 싹이 잘린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혁신 시도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생태계의 난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개선하는 것이 혁신성장을 위해 우선 취해져야 할 조치다.

혁신 시도와 전통산업 종사자들의 생계가 부딪칠 때 어떻게 갈등을 조정할지, 혁신성장으로 나아갈 때 소멸이 예정된 산업의 고통을 어떻게 줄일지, 보다 전망이 좋은 곳으로 자원이 쉽게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노동·자본시장의 규제를 어떻게 개혁할지 등은 사회적 출혈과 갈등이 불가피한 영역이다.

갈등조정 거버넌스, 교육, R&D, 벤처, 훈련, 노동관계, 사회안전망 등 사회경제의 거의 모든 분야가 그렇다. 그런 면에서 혁신성장은 노동개혁, 금융개혁, 공공부문 개혁, R&D 예산 개혁, 교육개혁, 규제개혁 등을 모두 합친 말과 다르지 않다.

노무현 정부부터 시작해 혁신성장을 외친 정부의 경제정책이 대부분 실패했던 건 ‘혁신성장의 정치’에만 매몰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문 정부에서 극대화했다. 듣기 좋은 소리만 하면서 유의미한 덩어리 규제 하나 풀지 못했고 세금으로 돈 잔치만 했다.

혁신의 동력은 민간에서 나온다. 원래 한국에서 민간과 정부의 성장 기여도는 3 대 1 정도였지만 문 정부 집권 2년 차인 2018년부터 그 비율이 급격히 뒤바뀌어 2019년에는 1 대 3으로 역전됐고, 2020년 1분기 민간의 성장 기여도는 마이너스를 기록했다(그래프 참조).

◇尹 정부의 혁신과제

윤석열 새 정부의 정책 목표 역시 혁신성장이다. 국민 귀에 단 소리만 내놓다가 혼자 거울 앞에 앉아 소주성을 읊조리던 문재인 정부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첫째, 돈 뿌리기 포퓰리즘을 삼가고 정직해야 한다. 둘째, 경제생태계의 혁신을 위한 개혁 논의가 본격화해야 한다. 셋째, 좋은 아이디어를 장착한 개인을 길러내 사업을 시작하게 키워내고 새로움을 수혈해 지속 성장하도록 도울 일을 찾아야 한다. 넷째, 기업의 창의와 시장의 자율을 가로막는 장애가 무엇인지 찾아내 제거해야 한다. 다섯째, 경제 운용 과정에서 늘 국민에게 이해와 고통분담 협조를 구해야 한다.

전 국회의원, 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세줄 요약

혁신성장의 연원 : 기술 발전을 중시한 ‘내생적 성장론’이 노동·자본의 역할에 집중했던 성장모델을 대체하면서 ‘혁신성장론’으로 발전. 이는 사람을 키우고 경제생태계의 토양을 가꿔야 좋은 성장정책이 되는 걸 의미.

혁신성장의 정치화 : 문재인 정부는 혁신을 내세웠지만 실은 ‘혁신성장의 정치화’를 꾀했고, 그 결과는 ‘반혁신’이었음. 재정을 쏟아부어 단기 성과 만들기에만 치중하면서 경제 체질을 악화시킨 정권으로 기록될 것.

尹 정부의 혁신과제 : 경제생태계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고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 혁신성장은 노동·금융·공공부문·R&D 예산·교육·규제개혁을 포괄. 이를 통해 개인과 민간의 혁신 동력을 살려 나가야 함.

■ 용어 설명

‘솔로 모델’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솔로가 고안한 경제성장 모델. 신고전학파의 성장이론을 대표. 경제성장에서 특히 자본의 중요성을 강조한 반면 기술·지식의 변수는 소홀히 함.

‘내생적 성장론’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경제가 지속 성장한다는 이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루커스와 제자 폴 로머는 모든 경제 주체의 최적화 행동에 의해 경제성장이 촉진된다고 설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