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미술韓流 걸림돌 된 문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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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선 문화부 선임기자

“백남준 선생께 죄송하네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소동에 대한 후배 기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올해 한국관 예술감독과 작가의 갈등이 노출된 게 한심했다. 감독 해촉설까지 나돌던 위기는 봉합됐다. 오는 23일 현지에서 전시를 여는 일정은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한국관 커미셔너로 운영 책임자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조정력을 보이지 못한 문제는 과제로 남았다.

1895년부터 시작한 베니스비엔날레는 국경을 초월한 세계인의 미술축제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본 전시 이외에 국가관 전시가 있어서 나라끼리 경쟁을 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미술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이 비엔날레가 열릴 때마다 전 세계의 관심을 받는 배경에는 각국의 문화 민족주의가 깔려 있는 셈이다.

그 역설을 간파한 이가 백남준이다. 한국 출신의 글로벌 아티스트였던 그는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에 참여해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그는 그 여세를 몰아서 한국관 건립을 추진했다. 세계 미술계 인사들뿐만 아니라 베니스시청 도시계획 담당자들을 만났다. 한국에 와서 대통령을 면담하고 한국관이 우리 미술의 세계적 위상을 높일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 결과로 정부 차원에서 건립을 추진했고, 마침내 1995년 결실을 봤다. 베니스 카스텔로 공원 안에 세계서 26번째로 독립된 국가관을 갖게 된 것이다. 당시 우리와 경쟁했던 중국과 중동 부국들에 앞선 개가였다. 아시아에서 우리와 일본만 카스텔로 공원에 국가관을 마련했다.

문예위가 홈페이지에 소개한 것처럼 한국관은 우리 미술의 해외 진출 교두보 역할을 해 왔다. 그런데, 그 자랑에 먹칠을 하는 소동이 이번에 벌어졌다. 문예위는 감독 선정 과정에서 심사위원 구성 오류로 재심사 논란을 일으켰다. 추진단 내부 갈등엔 무기력했다. 예산 집행 문제가 불거지고, 큐레이터와 스태프의 ‘갑질’-‘을질’ 분란이 커졌다. 대립 상황은 “일단 한국관 작품을 올려놓고 보자”는 공감대에서 정리됐다. 그러나 한국관 운영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또 터진다는 게 미술계 우려다. 이전에도 잡음이 있었으나 국가를 대표하는 일이니 쉬쉬해 왔다는 것이다.

문예위는 이번 일을 미봉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 미술 한류(韓流)를 진작시켜야 할 기관이 오히려 걸림돌이 된 상황을 직시하고 제도를 혁신해야 한다. 예산 확보와 집행 방법, 감독과 작가를 함께 뽑는 공모제, 작품 제작-전시 진행 방식 등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그 방향은 참여 예술가들의 자존심을 살리는 쪽이길 바란다. 개성 강한 예술가들을 한국 대표로 내보내면서 커미셔너 기관이 통제 권한만 누리려고 해서 되겠는가.

1990년대에 한국관을 추진할 때, 베니스 시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재라며 난색을 표했다. 현지에 간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건축 허가서를 받아 고국에 전하기 위해 갖은 힘을 다했다. 문예위원장을 비롯한 문화행정 담당자들은 기억하길 바란다. 당신의 선배들이 백남준 같은 선각자와 함께 문화 한류를 꿈꿨음을. 그들은 ‘문화 변방국’ 시절에 혼을 다해 세계로 가는 길을 만들었다. 21세기에 당신들이 무능과 태만으로 그 길을 훼손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