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함께 싸우다 전사한 이들 이름이라도 불러야 하늘나라서 편히 대할 수 있다고 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15년 윌리엄 웨버 대령(오른쪽)이 자신의 제안으로 기획된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앞에서 카투사 전사자 호명행사가 성사된 뒤 처음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호명행사를 도왔던 당시 주미한국대사관 무관인 예비역 육군 소장 신경수 한미동맹재단 사무총장. 한미동맹재단 제공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19년 윌리엄 웨버 미국 육군 예비역 대령 메릴랜드 자택에서 촬영한 사진. 평소 웃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사진작가 라미 현 제공
“저는 주미 무관시절 웨버 대령을 가까이 접하면서 그가 웃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단 한 번 카투사(KATUSA·미군 배속 한국군) 전사자 호명행사 계획을 발표할 때 그는 모처럼 환하게 웃었습니다. 살아생전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는 감정이었을 것입니다.”
12일 주미한국대사관 무관을 지낸 예비역 육군 소장인 신경수 한미동맹 사무총장은 지난 9일 별세한 윌리엄 E 웨버 대령과 관련해 “카투사 전사자 호명행사는 웨버 대령 제안으로 이뤄졌다”며 “무산될 뻔한 호명행사가 성사된 뒤 항상 무표정한 얼굴의 웨버 대령이 처음으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게 됐다”며 2015년 당시 사진을 공개했다.
신 사무총장은 “2016년 당시 무관부에서 확인한 카투사 전사자 숫자는 불과 3000명이 조금 넘었다. 당시 국방무관은 2015년 초에 워싱턴 소재 한 레스토랑에서 현재 확보한 전사자 명단이 3000명에 불과하고 인원 확인이 너무 어려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면서 1년 뒤에 할 것을 제안했다”고 회상했다.
“그 자리에서 웨버 대령은 테이블을 손으로 치면서 내가 죽은 뒤에 할 것이냐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습니다.” 그는 “웨버 대령은 죽기 전에 함께 싸우다 전사한 이들의 이름이라도 불러야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편하게 그들을 대할 수 있다고 말해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먼저 하자고 해야 하는데, 군복을 입은 한국군 장군으로서 부끄러웠다”고 회상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부인 애널리 여사가 전화를 했습니다. 아까 식당에서 남편이 무례한 것 같아 본인이 사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가 오히려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든 추진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날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에 한국 육군총장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도와달라고, 어떻게든 전사자를 확인해 달라고. 육군본부의 노력으로 우리는 7000명 이상의 전사자 명단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웨버 대령에게 진 빚을 갚았던 2016년 6월 25일은 내 군 생활 중 가장 보람 있었던 하루였습니다.”
웨버 대령은 전사한 전우들을 위한 특별행사 전사자 호명행사를 직접 기획했다. 웨버 대령은 주미 무관부와 공동으로 2015년 7월 25일 10시부터 7월 26일 오후 4시까지 30시간 동안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앞에서 미군 희생자 3만6536명의 이름을 한글과 영어로 호명하는 행사를 열었다. 2016년 6월 25일에는 전사한 미군 및 유엔군 소속 카투사 전사자 7052명에 대한 호명식을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실시했다. 주미대사관 및 한국전 참전기념비 재단 주관으로 진행된 행사에는 한·미 참전용사는 물론 미 측 주요인사와 카투사 모범장병 및 미래세대인 한국과 미국의 학생들이 호명자로 참석했다.
“웨버 대령은 6·25전쟁에서 미군과 함께 싸우면서 전사한 인원이 1만 명이 넘는다고 강조하면서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그만큼 미군이 더 전사했을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한국은 물론 미국 국민이 카투사 전사자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호명행사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신 사무총장은 “웨버 대령은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용사기념비에 미군과 카투사 전사자들의 이름을 새긴 ‘한국전 추모의 벽’ 건립을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다”며 “웨버 대령은 추모의 벽 건립을 위한 입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립공원 내 추가 시설물의 설치를 금지하는 법안으로 인해 두 차례에 걸친 좌절을 겪으면서도 이를 참전용사들을 위한 마지막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상하원 의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펼쳤다”고 회상했다. 웨버 대령은 상하원 의원들의 소극적 참여, 국립공원 관리청의 반대, 비용 문제 등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전쟁에서 산화했던 전우들의 모습이었다고 회고했다.
웨버 대령은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에 의해 한국전 참전용사기념비 자문위원으로 임명됐다. 웨버 대령은 전역 후 20여 년 동안 ‘한국전쟁 참전용사기념비 재단’ 회장으로서 6·25전쟁 참전용사기념비 건립, 6·25전쟁 전사자 4만 명 ‘추모의 벽’ 건립 추진 등을 통해 미국민들에게 6·25전쟁을 알리는 노력을 해왔다.
신 사무총장은 “부인 애널리 웨버, 손녀 다이앤 웨버, 자부 베스 웨버 양이 생존해 있고, 현재 부인 애널리 웨버 여사도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라며 “재단은 한미동맹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온 웨버 대령의 장례식에 대표단을 파견할 예정이며, 웨버 대령의 자서전을 발간하고, ‘웨버대령상’을 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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