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태영 “‘선진농업 배우고 싶다’ 덴마크 국왕에 무작정 편지, 기적적 답신 유학길”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농촌과 청소년 미래에 한평생을 바친 류태영 ‘농촌·청소년미래재단’ 설립자이자 명예이사장. 그는 지난 15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있는 재단 사무실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 꿈은 오로지 우리 농촌을 잘살게 하겠다는 것이며, 그 꿈을 따라 지금까지 한길을 걸어왔다”고 말했다. 곽성호 기자

■ M 인터뷰 - 새마을운동 초석 류태영 농촌·청소년미래재단 명예이사장

가난 탓에 18세에 중학 입학
주경야독 고생끝에 대학졸업
‘잘사는 농촌’ 평생 헌신 결심
유럽 각국 농촌정책 집중연구

귀국후 이천 새마을운동 지휘
靑 발탁되며 전국적 캠페인化

‘인재 육성’ 사회발전 기틀 인식
재단 통해서 장학사업 등 앞장

22일은 ‘새마을운동 제창 52주년 제12회 새마을의 날’이다. 1970년 4월 22일 ‘새마을가꾸기운동’ 제창일을 기념하기 위해 2011년 국가기념일로 제정됐다. 행정안전부가 주최하고 새마을운동중앙회가 주관한 기념식이 이날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소재 새마을운동중앙회 대강당에서 열렸다. 김부겸 국무총리를 비롯해 주요 외국 대사, 대학 새마을동아리 지도교수와 동아리 학생 290여 명이 참석했다.

새마을운동은 세계적으로 농촌 개발 모델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에도 전파돼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어로 번역된 새마을운동 관련 서적을 당 간부들에게 나눠 주며 공부하라고 지시했을 정도다. 유엔도 2007년 새마을운동을 본뜬 ‘새천년마을(Millennium Villages) 프로젝트’를 세계 빈곤퇴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채택했다. 그 뒤 148개국으로 수출됐다. 새마을 정신을 배우기 위해 해마다 여러 국가의 연수생이 한국을 찾는다. 2019년 한 해 동안만 51개국 공무원과 학생 750명이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지금까지 누적 인원이 6만1700여 명에 달한다. 새마을운동 기록물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러한 새마을운동의 초석을 다진 이는 류태영(86) 재단법인 ‘농촌·청소년미래재단’ 설립자이자 명예이사장이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있는 재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재단은 2002년 건국대 교수로 정년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과 그동안 펴낸 저서 32권의 인세와 판매 수익금, 강연료 등으로 모은 4억3000만 원과 후원금 등을 들여 설립됐다. 어려운 생활 형편에도 불구하고 의지와 노력으로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 청소년들에게 힘이 돼 주고 싶어서다.

“‘장학 사업’과 ‘청소년 건전 육성 사업’을 하고 있어요. 장학 사업은 매년 고등학생, 대학생을 선발해 등록금을 전액 지원해 줍니다. 청소년 건전 육성 사업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학을 이용해 ‘희망 가꾸기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하지요. 이 외에도 ‘농촌 지도자 양성 사업’을 통해 농촌의 젊은 층과 지도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촌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어요. 또 ‘해외 농촌 전문인 양성 사업’을 통해 선진 농업 국가 연수 또는 농촌 개발 국가 파견 등 전문 농업인을 양성하는 데 힘쓰고 있어요.”

그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누구보다도 찢어지게 가난해 고생을 많이 했다. 주경야독하며 18살이 돼서 겨우 중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살던 시골에 고등학교가 없어서 고민 끝에 무작정 상경했다”며 “신문 배달과 구두닦이 등을 하며 야간 고등학교와 야간 대학교에 다녔다”고 했다. 힘든 어린 시절을 겪으며 느낀 점은 아무리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든 것은 농촌이 낙후되고 나라가 가난한 게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건국대를 졸업하고 덴마크로 유학을 결심했다.

“유달영 박사가 펴낸 ‘새 역사를 위하여’라는 책에서 전쟁으로 황폐화된 덴마크가 농촌운동과 협동조합운동으로 경제발전을 이뤄 세계적인 농촌복지국가로 탈바꿈한 기록을 읽은 후 덴마크 유학을 결심했어요.”

그러나 유학 비용이 문제였다. 가난한 상황에 덴마크 유학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덴마크 국왕에게 편지를 썼다. ‘오직 바라는 건 한국 농촌이 잘사는 것이다. 덴마크처럼 훌륭한 나라에서 배워 우리 농촌을 잘살게 하는 데 내 인생을 바치겠다. 그것을 위해 생활비와 전액 장학금을 줄 수 없겠느냐’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당시 대사관도 없었고, 왕궁 주소도 몰라 편지 겉봉에 ‘덴마크, 코펜하겐, 프레드릭 9세 국왕 폐하’라고 써서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 40일 뒤에 온 것이다. 편지에는 ‘당신이 원하는 기간과 장소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책임지겠다’고 쓰여 있었다. “그래서 고작 80달러를 손에 쥐고 덴마크 유학길에 오르게 됐어요.” 1968년 7월 그가 덴마크에 도착하자 현지 언론은 덴마크 정부의 초청을 받은 최초의 한국 장학생이라며 대서특필했다.

6개월간의 공부를 마치고 다른 유럽 국가의 농촌부흥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는 덴마크 정부에 “유럽제국의 농촌정책을 비교 시찰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덴마크 정부는 그의 진정성에 3만 달러를 지원했다. 독일,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등 주재국 덴마크대사관이 해당국과 교섭해 2개월 동안 농업 기술과 현장을 견학했다.

이스라엘에도 문을 두드렸다. “당시 우리나라와 덴마크는 격차가 너무 커서 바로 적용하기 힘들다는 한계를 느꼈어요. 이에 비해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와 상황이 비슷하면서도 국가안보를 지키며 농촌을 개척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대통령에게도 무작정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이번에도 이스라엘 정부가 국비 유학을 승인해 1969년 11월부터 6개월 동안 농촌 개발을 연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건국대 설립자인 유석창 박사에 의해 건국대 생활관장으로 근무하면서 틈틈이 유달영 박사의 고향인 경기 이천시로 내려가 농부들에게 덴마크와 이스라엘 농업지식을 전수했다. 1970년 새마을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이천 지역에서는 ‘류태영식 새마을운동’이 농민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특히 KBS 농업 관련 방송에 3년간 고정 출연해 덴마크와 이스라엘의 농업혁명을 소개하면서 주목받았다.

그러자 1972년 3월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새마을운동에 대해 브리핑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청와대 수석 비서관들에게 우리나라 농촌 현실과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해 5시간이 넘도록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박정희 대통령이 지금 월급의 3배를 줄 테니 당장 내일부터 청와대로 들어와서 새마을사업을 하라고 했어요.”

그러나 학교 강의도 있고, 관장직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다음 날 학교에 출근하자 갑자기 총장실에서 급히 찾는다고 해요. 전날 밤 청와대에서 총장과 이사장에게 연락해 ‘내일 아침 류태영 선생이 출근하면 청와대로 보내라’고 했다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해서 청와대로 들어가 박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박 대통령이 우리나라 농촌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서 덴마크 등 유럽과 이스라엘 사례를 말씀드렸는데, 1시간 설명하기로 한 것이 5시간을 넘게 했어요.” 박 대통령과의 첫 만남에서 이야기한 새마을운동 기본 정신은 박 대통령이 ‘근면·자조·협동’ 3가지로 정리해 새마을운동의 표어로 삼게 됐다. 그리고 청와대에 새마을운동 담당관실을 만들고 함께 일할 사람들을 뽑아 본격적으로 새마을운동을 추진했다.

그가 청와대에서 초대 새마을운동 담당관을 맡아 첫 번째로 한 일은 청와대 비서관 등 전 직원 300명을 대상으로 새마을운동 특강을 한 것이었다. 대통령이 한 달에 한 번씩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도 꼬박 90분 동안 강의했다. 또 그해 가을 광주에서 전국 시·도지사·시장·군수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전국지방장관 확대회의에서도 새마을운동 특강을 했다. “강의 때마다 박 대통령이 제 강의를 끝까지 들으셔서 내가 그랬어요. 각하께서는 제 강의를 벌써 여러 번 들으셨는데 매번 끝까지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일어나면 장관·도지사들이 줄줄이 따라 나와 버려요. 그래서 내가 끝까지 앉아 있는 거요. 그리고, 내가 여러 번 류 박사 강연 듣는 것을 장관·도지사들이 아는데, 그건 류 박사 말대로 하라는 무언의 압력이오.”

그 결과 농촌 근대화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됐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고, 도로 확장, 지붕 개량과 같은 농촌 환경 개선 운동을 벌이면서 품종 개량, 비닐하우스 보급 등을 통해 농업인들의 소득도 늘었다. 새마을운동은 빠르게 성과를 냈고 전 국가적인 근대화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1973년 3월 청와대 새마을 담당을 약 1년간 하다 사표를 제출했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제안했지만 거절했다고 했다. 그가 “새마을운동은 이미 기초와 틀이 잡혔고, 더욱 발전시키려면 정치인이 되기보다 이스라엘에서 연구를 더 해 큰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하자 박 대통령은 흔쾌히 허락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가장 역동적으로 농촌이 변화하던 나라였고, 예전 6개월 동안의 연구는 그런 이스라엘을 이해하기에는 짧았어요. 그래서 다시 이스라엘로 떠나 히브리대에서 농촌사회학 석·박사 과정을 4년 만에 마치고 동양인 최초로 국립 벤구리온대에서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계속 강의할 수 있었지만,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했어요. 우리나라가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제 수준이 향상되면서 이제 단지 먹고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인재를 길러 내느냐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978년 한국으로 돌아와 그때부터 건국대 교수로 재직했다.

새마을운동은 힘든 시절을 이겨 낸 모든 국민이 이뤄 낸 성과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해외 새마을운동 신규 사업을 중단하고, 기존 사업도 대폭 줄일 시도를 했다. 사업 명칭에서도 ‘새마을’을 삭제하고 박정희 이름도 빼는 등 흔적 지우기를 하려 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동남아시아 순방을 갔는데, 가는 나라마다 첫마디가 새마을운동이고, 새마을운동을 우리한테 전수해 달라고 부탁해서 결국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새마을운동의 정신은 초창기나 지금이나 똑같다”면서 “다만 현재의 사회구조와 환경에 맞게 재조정해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가 끝나자 류 명예이사장은 기자에게 32권의 저서 가운데 ‘언제까지나 나는 꿈꾸는 청년이고 싶다’와 ‘꿈과 믿음이 미래를 결정한다’ 두 권을 선물했다. 그러면서 “꿈과 믿음이 있는 한 불가능은 없다”면서 “언제까지나 꿈꾸는 청년이고 싶다”고 했다.

박현수 기자 phs200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