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성의 뿌리=정부’…‘공무원 철밥통’부터 깨야 경제구조개혁 가능

■ 윤희숙의 Deep Read- 尹정부 경제정책방향 평가

‘One In, Two Out’ 규제 완화 방식 시선 끌어…구조개혁의 목표·방향·시대적 요구 반영 안된건 한계
우리나라 최대 ‘군살’은 공무원사회… 尹정부, 관료의 관성·보신주의 수술 통해 민간 발목잡는 비효율 혁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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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이 최근 발표됐다. 52쪽이나 되는 분량 중 어느 부분에 주목할지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감세와 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는데, 틀린 해석은 아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새 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을 심도 있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내용 중 무엇이 새로운지, 포함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무엇보다 시대적 맥락과 잘 부합하는지에 대한 의견이 활발히 교환될 필요가 있다. 특히 잠재성장률을 떨어트리는 오래된 경직성의 뿌리가 정부라는 인식, 새 정부 구조개혁의 선제조건은 공무원 사회의 철밥통 깨기라는 깨달음이 필요하다.

◇눈에 띄는 규제 접근

첫째, 새 경제 정책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규제 완화의 접근 방식이다. 방향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다. 김대중 정부의 ‘규제 기요틴’, 노무현 정부의 ‘규제 덩어리’, 이명박 정부의 ‘규제 전봇대’, 박근혜 정부의 ‘손톱 밑 가시’, 문재인 정부의 ‘붉은 깃발 규제’에 이어 윤석열 정부는 ‘모래주머니’로 이름이 바뀌어왔을 뿐, 지난 20여 년간 김대중 정부를 제외하고는 의미 있는 개선이 있었다 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이번 발표의 가장 앞부분을 이것이 차지한다는 것은 자료 작성 주체가 강하게 내세우고 싶은 내용이란 뜻이다. 무엇보다 ‘원인 투아웃(One In, Two Out)’ 룰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이런 식의 규제 비용 관리는 박근혜 정부에서 이미 도입됐지만, 없앨 규제를 같이 찾아와야 한다는 조건이 총리 훈령이었을 뿐이라 구속력이 약했다. 이번에는 기존 지침상의 ‘신규 비용만큼’이 아니라 그 2배를 감축하도록 강화하고 아예 의무화하겠다는 것이다.

‘원인 투아웃’을 법제화하면 제대로 규제 비용을 계산해놓지 않았거나 대신 죽일 규제를 찾아오지 못한 법률은 시행령 심사 단계에서 잡혀 버리니, 현재 의원입법으로 양산되는 규제 법안들의 발을 묶을 수 있다. 국회의 저항이 강하겠지만, 경제의 숨통을 조이는 의원입법 규제의 문제점을 펼쳐놓고 종합적인 해결책을 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둘째, 법인세 인하. 보수 정부의 법인세 인하는 전형적 행보다. 사실 경제를 보는 기본 시각에 따라 세율 인상과 인하는 모두 합리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의 신뢰를 널리 얻기 위해서는 줄어든 세수를 어떻게 메꿀 것인지, 세출을 어떤 수준으로 관리할 것이며 고령화 속에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지출 소요를 어떤 세목을 늘려 충당할 것인지 등 종합적인 청사진이 제시돼야 한다.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겠다는 약속과 감세 조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는 정부에 대한 기본적 믿음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시대 변화가 담겨 있나

그런데 윤 정부 향후 5년의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가장 근본적 차원의 점검은 ‘시대적 요구를 충족하고 있는지’에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깊은 식견을 가진 이들이 관료만이라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전문 역량들이 십시일반 생각을 보태고 정부 또한 의견과 도움을 폭넓게 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팬데믹이 열어젖힌 미증유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미·중 국제질서의 변화 등 지축을 흔드는 변화들이 근래 목도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발표된 내용은 기존의 방식과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연속성’은 ‘관료 주도’ 작업의 장점이지만, 큰 변화를 정부가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는지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구조개혁이 강조되나, 그 기본 목표와 방향이 무엇인지 제시되지 않았다. 노동, 연금, 교육개혁이 반복적으로 선언되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그 단계를 넘어 국민에게 그것들이 왜 시급하고 어떻게 추진해서 무엇을 달성할 것인지, 구체적인 목표와 방향성을 밝히고 공감을 얻어낼 필요가 있다.

왜 이런 내용이 제시되지 않았을까. 우리가 지나고 있는 시대가 어떤 시대이며, 우리에게 어떤 숙제를 주고 있는지에 대한 시각이 정부 내에서 충분히 숙성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 본다. 시대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과거를 답보하는 정책의 비용은 막대하다. 고속성장이 종료된 후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우리 경제가 근본적인 구조 변화를 겪었을 때 정부는 그 변화의 폭과 깊이를 이해하지 못했고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그 결과 20여 년간 양극화와 불평등의 담론이 확대되고 포퓰리즘이 팽배해지는 것을 손 놓고 바라봤을 뿐 사회적 갈등을 선제적으로 완화하고 통합을 이뤄 내는 데 실패했다.

◇경직성의 뿌리, 공무원

잠재성장률이 뚝뚝 떨어졌던 책임의 상당 부분은 정부의 둔감함, 즉 관료사회의 철밥통 구조에 있다. 현재 직면하는 시대적 변화는 경제·사회·안보 전반의 불확실성이 증대하지만 개인의 ‘안정성과 존엄’에 대한 희구는 증가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시대를 헤쳐가려면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시도를 하게끔 국민 개개인 마음에 불을 질러야 하는데, 국민은 지쳐 있고 장애물은 널렸다.

대표적인 ‘경직성의 뿌리’는 정부다. 지금 정부가 경제의 군살을 빼겠다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외치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가장 딱딱한 군살은 공무원 사회다. 공무원 스스로 ‘별문제만 없으면 매년 월급이 또박또박 오르다가 정년과 공무원 연금을 확보할 수 있다’며 민간의 발목을 잡는 자세를 쇄신하지 않고서는 사회 분위기를 바꿀 수 없다.

수많은 젊은이가 공무원이 되길 열망하는 것도 바로 그 경직성과 위세 때문이다. 공무원들의 월급은 근무연한에 따라 자동으로 오르도록 방치하면서 민간의 보수체계를 ‘성과와 노력’에 연동시키고 위험을 감수하는 혁신을 조장하겠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 경제안보의 시대에 국민을 잘 돌보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점점 늘어날 것이고 정부 사이즈가 커지는 것도 어쩌면 불가피하다. 그러나 정부는 이미 경제의 짐 덩어리가 돼 버렸다. ‘기소불욕 물시어인’, 자기 하기 싫은 일은 안 하고 남에게 강요하지도 않는다는 논리로 버티는 사회에서 구조개혁은 불가능하고 변화의 파도를 넘을 수도 없다. ‘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일이니 나부터 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관성과 보신’ 벗어나기

규제 천국을 만들어놓은 정부가 ‘관성과 보신’에서 벗어나, ‘일이 잘못될 위험도 무릅쓰겠다’며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자기 자신에게 메스를 대는 것이 새 정부 경제 정책 방향의 첫 페이지에 새겨져야 한다.

전 국회의원, 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세줄 요약
눈에 띄는 규제 접근 : 윤석열 정부의 새 경제정책 방향 중 가장 참신한 것은 규제 완화를 위한 ‘원인 투아웃’ 룰. 법인세 인하는 줄어든 세수의 충당 방안 등 종합적 청사진이 제시돼야 국민 신뢰를 얻을 것임.

시대적 변화와 요구 : 尹은 경제구조개혁을 강조하지만 목표와 방향, 시대적 요구를 잘 담아내지는 못한 것으로 보임. 시대 변화상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사회 갈등 완화나 통합을 이뤄내는 일에 성공할 수 없음.

경직성의 뿌리, 공무원 : 우리나라 경직성의 뿌리는 공무원임. 잠재성장률을 떨어트리는 ‘군살’ 공직사회의 철밥통 깨기가 절실. 관료사회의 관성과 보신주의를 극복해야 민간의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있음.

■ 용어 설명
‘규제 기요틴’은 김대중 정권 때 규제 혁파를 강조하며 사용한 말. 정권 출범 첫해인 1998년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가 신설되면서 사용되기 시작. 그 효시는 1984년 스웨덴 정부 때로 추정.

‘원인 투아웃’은 규제 신설 때 예상되는 규제순비용 2배의 기존 규제를 철폐하는 것. 트럼프 미 대통령 당시의 탈규제 행정명령과는 다르게 갯수 기준 아닌 비용 기준으로 설계한 것이 특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