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독립운동 = 자유투쟁”… 北·日 ‘동북아평화 여정’ 초대했지만 곳곳 장애

■이상현의 Deep Read - 尹의 자유론과 광복절 경축사

尹 경축사서 ‘독립운동은 현재진행형 사건’ 강조…‘북한 비핵화·일본 반성’ 전제로 미래 향한 협력 제안
‘北 극좌·日 극우’ 성향이 담대한 구상 실현에 난관… 소용돌이치는 국제정세 속 윤 정부의 전략적 비전 절실

윤석열 대통령의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사의 핵심 키워드는 ‘자유’다. 윤 대통령에 따르면 독립운동은 곧 ‘자유를 위한 투쟁’이며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는 세계 평화의 중요한 전제이고 세계시민의 자유를 지키고 확대하는 기초가 된다고 강조했다. 북한에는 ‘담대한 구상’을, 일본에는 ‘미래를 위한 협력’을 제안한 건 이 같은 ‘자유론’에 기초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담대한 구상들은 소용돌이치는 국제정세 속에서 수많은 장애를 넘어야 한다. 무엇보다 그의 자유론은 북한의 완고한 핵 무력화에 막혀 있고, 일본의 인색한 과거사 해결 의지에 차단당하는 형국이다.

◇尹의 ‘자유론’

‘자유’는 윤 대통령이 취임 때부터 강조해왔던 가치다. 그는 5월 10일 대통령 취임사에서 자유를 총 35번이나 언급했다. 이번 8·15 경축사에서도 자유라는 단어는 33번이나 등장했다. 독립운동을 자유의 확대라는 현재진행형으로 연관시키려는 그의 생각은 국민·세계·평화·민주주의·세계시민 등 용어를 수차례 동원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은 보편적 가치에 기반해 세계시민의 자유를 지키고 확대하는 것으로 계승되고 발전돼야 한다”고 말했다. 독립운동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현재화’시켜 ‘과거에서 미래를 관통하는’ 독립운동의 세계사적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독립운동의 정신인 자유를 보편적 가치로 승화시켜 한국이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견인하는 글로벌 중추국가가 되기 위해 시급한 게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자유와 평화를 확대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대북 ‘담대한 구상’을 통해 북한을 비핵화하는 것, 둘째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해 한·일 관계를 개선하며 일본을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는 파트너로 만드는 것.

윤 대통령은 자신의 ‘자유론’을 광복절의 정신에 맞게 재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북·대일 전략을 제시했다.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전체주의적 도전에 맞서 대북 지원과 대일 협력을 강조함으로써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이룩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북한과 일본에 ‘동북아 평화와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한 여정에 동참해 달라’는 초대장을 보낸 것이다.

◇담대한 대북·대일 제안

윤 대통령은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북한이 전향적으로 비핵화 조치를 취할 경우 경제 조치 외에 안보 우려까지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 연장에서 윤 대통령은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할 경우 대규모 식량 공급 프로그램, 발전과 송배선 인프라 지원, 국제 교역을 위한 항만과 공항의 현대화 프로젝트, 농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기술 지원 프로그램, 병원과 의료 인프라의 현대화 지원, 국제투자 및 금융 지원 프로그램 등 5대 사업을 이행하겠다고 했다. ‘담대한 구상’과 관련해 대통령실은 정치·군사 부문의 협력 로드맵도 준비해뒀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서도 담대한 제안을 내놓았다. 그는 동북아에서 일본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과 법치 등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로서 글로벌 중추국가 실현에 핵심적인 파트너라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다.

윤 대통령은 그런 맥락에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이행하자고 제안했다. 이 선언엔 한·일 양국 간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과거사 인식을 포함한 11개 항의 합의사항이 명문화돼 있다. 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대북 담대한 구상과 한·일 관계 적극 개선을 언급한 것은 ‘자유의 최전선’으로 북한과 일본을 초대한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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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한 구상의 장애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엔 일본의 사과가 포함돼 있고, 담대한 구상엔 비핵화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사실상 ‘아베 극우 역사관’을 승계한 기시다 내각은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는 엄두도 내지 못할 보수정권으로 평가되고, 북한의 김정은 세력은 선군·선핵 정치 포기를 상상할 수도 없는 극좌정권이다.

북한은 연초부터 미사일 도발을 지속하면서 한국과 국제사회의 대화 제의에 일체의 대응을 하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가시 돋친 반응을 지속하는 중이다. 갈수록 악화하는 미·중 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 위기 이후 북한 이슈로 국제적 동력을 동원하기도 더 어려워졌다.

윤 정부는 ‘담대한 구상’이 ‘선 비핵화’ 또는 ‘일괄타결’을 요구했던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비핵·개방·3000’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경축사 내용만으로는 아직 구체적 차이점을 알기 어렵다. ‘광물자원·식량 교환 프로그램’이나 ‘남북 공동경제발전위원회 가동’ 등 차별화한 대목이 있기는 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구상과 겹친다.

문제는 이러한 구상이 실현되기 위한 첫걸음은 북한이 호응해 와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특히 대북 구상 중 ‘부족한 2%’는 북한의 초기 호응을 어떻게 실현할지에 관한 부분이다. 북한은 미국에 대해서는 적대시 정책 중단을, 한국에 대해서는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를 일관되게 요구해왔지만, 이를 비핵화 유인책으로 쓸 수는 없다는 데 우리 정부의 딜레마가 있다.

현재의 한·일 관계도 협력을 논하기엔 너무나 열악하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동원 피해자 등 일련의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해결되지 못한 채 쌓이면서 한·일 관계는 폭발을 향한 임계점에 도달해가는 상황이다.

◇소용돌이 국제정세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소용돌이 속에 있다. 최근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5대 원칙’과 ‘3불 1한’을 준수하라고 압박했다.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코로나19가 대북전단을 통해 전파됐다는 주장을 늘어놓으며 바이러스는 물론 남조선 당국도 박멸해버리겠다고 위협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중간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러야 하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다가오는 20차 당 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모두 국내 정치의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미·중 강대강 대치는 피할 수 없다.

사면초가에 처한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에 전례 없는 전략적 비전과 안목이 요구된다. 갈 길은 멀지만, 광복절 경축사가 이제 겨우 첫발을 뗐다.

세종연구소장, 한국핵정책학회장

■ 세줄 요약

尹의 ‘자유론’: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키워드는 ‘자유’. 그에 따르면 독립운동은 ‘자유를 위한 투쟁’이며 현재진행형임. 북·일에 ‘동북아 평화와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한 여정에 동참하라’고 제안한 것.

담대한 대북·대일 제안 : 윤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하면 경제뿐 아니라 안보 우려까지 해결하겠다고 약속. 일본에 대해서도 ‘김대중 - 오부치 선언’을 적극 이행하자고 제안. 북과 일을 ‘자유의 최전선’으로 초대한 것.

담대한 구상의 장애 : ‘김대중 - 오부치 선언’엔 日의 반성, 담대한 구상엔 北 비핵화라는 전제가 있음. 둘 다 수용하기 힘든 것들. 소용돌이치는 국제정세 속에 윤 정부에 전례 없는 전략적 비전과 안목이 요구되는 시점.

■ 용어 설명

‘담대한 구상’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밝혀온 대북 구상. 윤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취임식 당시 내놓은 ‘담대한 계획’을 구체화한 ‘담대한 구상’을 제시.

‘김대중 - 오부치 선언’은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채택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당시 과거사 인식을 포함한 11개 항의 공동선언이 발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