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지역화폐 예산 삭감은 非情 아닌 合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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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확정된 정부 예산안을 ‘비정(非情)한 예산안’으로 비판하면서 야당의 얄팍한 프레임 공격이 시작됐다. 근거도 없는 주장을 하는 것은 국회를 장악한 공당의 책임 있는 행동이 아니며, 결코 국익에 도움 되지 않는다. 더욱이 ‘따뜻한 나라, 역동적 경제, 건전한 재정’이라고 주장하는 새 정부의 예산안을 낙인찍기 위해서는 설득력이 있는 근거가 필요하다.

새 정부의 예산안은 재정 중독을 치유하는 첫걸음이라는 의미가 있다. 2023년도 예산안은 올해 본예산보다 5.2% 늘었지만, 추경을 포함한 예산보다는 6.0% 줄었다. 이번 예산안에는 건전 재정을 달성하려는 새 정부의 의지가 강하게 드러났다. 법과 제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지출해야 하는 의무지출은 2022년 본예산 대비 12.7% 증가했으나, 재량지출은 오히려 2.4% 감소했다.

재정을 건전화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막대한 국가채무의 짐을 지고서는 정부가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경제성장도 정체된다. 빠르게 고령화하는 대한민국이 국가채무를 관리하지 않으면,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된다. 급한 마음에 국가채무를 급속히 늘리면 투자는 위축되고 서민들의 금리 부담은 더 커진다. 문재인 정부의 방만한 재정 관리도 경제의 어려움을 촉발한 원인 중의 하나이며, 제21대 국회는 문 정부의 탈선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문 정부가 천문학적인 재정지출과 국가채무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살리지 못한 것은 재정지출의 비효율성 때문이다. 새 정부는 재정지출의 효과를 제고하기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인 24조 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러한 지출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복지 분야는 4.1%가 늘었고,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은 22조5000억 원이 늘어 지방재정은 17.3% 증가했다. 정부의 가용재원 증가율은 1.5% 수준에 불과했다. 지방재정의 규모가 증가한 만큼 재정지출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지자체도 지출 구조조정에 동참해야 한다.

이 대표뿐 아니라 김동연 경기지사도 지역화폐의 국고 지원을 삭감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비정한 예산안’이라고 비난한 근거가 지역화폐 사업의 국고 지원 삭감이라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주장이다. 지역화폐 사업은 지출 구조조정 1순위가 돼야 한다. 재정정책의 기초를 아는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지역화폐 사업을 찬성하기 어렵다. 정책의 대상이 불분명하고 정책 목표도 달성하기 어렵다. 평소에 살 물건을 사는 것이라 상권 활성화에 큰 도움이 안 된다. 많은 재정이 투입됐지만, 결과적으로 지역화폐로 이익을 본 것은 지역화폐를 관리하는 기업뿐이다. 재주는 국민이 부리고 돈은 관리 기업이 챙기는 셈이다. 이러한 재정지출을 줄이고 도움이 필요한 그늘진 부분에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무다.

새 정부가 국민의 부담을 줄이고 재정지출 효과를 올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산업부문과 SOC부문 등 경제 활력 제고에 소홀한 부분도 있다. 재정 건전성과 재정지출의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한 법 개정 사항도 검토돼야 한다. 국회가 재정 건전화를 위한 재정지출의 구조조정에 동참해 지성적 토론을 통해 합리적(合理的) 예산안을 도출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