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북공정’ 넘어… 노골적 문화침탈 이면엔 ‘美·中 패권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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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의 시대, 한중 문화충돌’ 쓴 김인희 연구소장의 진단

中박물관 고구려 연표 삭제 등
과거‘동북공정’과는 차원 달라
‘韓 = 中 문화 속국’ 인식하면서
美자본주의·기독교 사상 반기

中‘21세기 홍위병’극좌 네티즌
‘사드’이후 직접 모집해 지원도

올바른 역사관 정립하기 위해선
학계·정부 공조해 실리 외교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인희 연구소장

“최근 중국 박물관의 역사 왜곡부터 한복·김치가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문화 침탈은 2000년대 초·중반 ‘동북공정’과는 차원이 다른 전방위 공세입니다. 중국은 ‘한국이 자국의 속국’이라는 인식을 통해 미·중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최근 ‘문화의 시대, 한중 문화충돌’(동북아역사재단)을 출간한 김인희(아래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한중관계사연구소장은 잇따라 불거진 한·중 갈등을 동북공정 프로젝트의 연장선으로 파악하는 분석에 반대했다. 두 나라 간 영토 문제를 넘어 미국과 중국이라는 최강대국이 얽힌 세계사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2년부터 추진된 동북공정은 고조선·부여와 고구려·발해를 중국 지방정부로 왜곡한 역사 찬탈 시도로 공식적으로는 2007년 종료됐다. 하지만 중국은 최근 베이징(北京) 국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중·일 고대 청동기전(展)’의 전시 연표에서 고구려와 발해를 무단 삭제해 여전히 자국 중심주의로 주변국 역사를 규정하는 패권적 인식을 유지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국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중·일 고대 청동기전’. 김인희 동북아역사재단 한중관계사연구소장은 최근 중국이 자행하는 역사 왜곡과 문화 침탈은 과거 동북공정 당시와는 차원이 다른 공세라고 지적한다. 연합뉴스

‘문화의 시대, 한중 문화충돌’은 단오제와 한복·김치 등 한국과 중국의 문화 소유권 논쟁의 원인과 이면을 미·중 갈등과 연계해 진단한다. 김 소장은 ‘중국 애국주의 홍위병, 분노청년’ ‘중국 애국주의와 고대사 만들기’ 등 중국 애국주의를 비판하는 학술서를 연이어 펴낸 역사 인류학자다.

20일 전화로 만난 김 소장은 한·중 문화충돌의 기원이 2004~2005년 ‘단오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했다. “한국이 단오제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자 중국은 한국을 향해 ‘우리 문화를 빼앗아간 도둑’이라 성토했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단오는 구체적 행사와 내용이 다르고, 한국 단오가 문화유산에 등재된다고 해서 중국 단오를 등재할 수 없는 게 아니라는 ‘팩트’는 외면했습니다.” 당시 중국은 한국 문화에 의해 자국 문화가 잠식될 수 있다는 수세적 입장에서 ‘문화 도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나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 이후 ‘한국은 중국의 문화 속국’이라는 공세적 입장으로 전환했다. ‘조선 시대 관복은 명나라의 하사품’ ‘김치는 중국 파오차이(泡菜)에서 유래한 음식’ 등 이른바 한복·김치의 중국 기원설을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삼았다. 지난 2월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선 한복을 입은 여성이 조선족 대표로 등장하면서 “중국의 문화침탈이 노골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한복을 입은 조선족 여성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김 소장은 한국 문화를 향한 중국 입장이 사드 갈등을 기점으로 달라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중국은 한국이 문화적으로 중국의 속국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자국의 애국주의 노선을 위협한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집권 이후 애국주의 강화를 위해 ‘인류운명공동체론’을 내세웠습니다. 중국 중심의 ‘천하 질서’ 이론과 마르크스 이념을 결합한 이데올로기를 통해 미국으로 상징되는 서구 자본주의와 기독교 사상에 반기를 든 것입니다. 교회 첨탑을 부수고, 베이징 지하철역의 영어 표기를 없애고, 학교에서 영어 교재 사용 금지한 ‘문화 쇄국’ 정책은 이런 구상에서 비롯됐습니다. 역사와 문화를 겨냥한 중국의 ‘반한(反韓)’은 서구 이데올로기가 공산당 체제에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치적 기조입니다.” 김 소장은 이 같은 미·중 패권 싸움의 프레임을 인지해야 중국이 베트남·몽골·일본 등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여타 아시아 국가에는 취하지 않는 공세를 유독 한국에만 집중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중국 정부의 역사·문화 침탈을 온라인에서 뒷받침하는 것은 ‘21세기 홍위병’으로 불리는 극좌 네티즌 집단이다. 중국은 1990년대에도 애국주의 교육을 통해 친(親)정부 네티즌을 은밀히 양성했으나 미·중 갈등이 본격화한 2016년 이후부터는 ‘청년 인터넷 문명 지원자’를 직접 모집해 지원하고 있다. 김 소장은 “올림픽 같은 국제 행사, 박물관이라는 문화 공간, 민간인이 활동하는 SNS 등 영역을 넘나드는 역사 왜곡과 공세가 이어지는 상황”이라며 “올바른 역사관 정립을 위해 학계와 정부가 공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계는 고대사부터 한복·김치까지 정치 쟁점화하는 중국에 맞서 이론적으로 논박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합니다. 아울러 대외적으로는 미국과의 동맹을 굳건히 하되 ‘한국이 중국의 성장과 부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초조함이 한국 문화에 대한 극단적 배타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중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균형·실리 외교가 필요합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