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쌀값 강제 떠받치기는 농업 망칠 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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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

정부와 여당이 45만t 규모의 쌀을 시장에서 격리하기로 결정했다. 역대 최대 규모라는 평이 나온다. 일부 농민단체들은 이것도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도 쌀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양곡관리법을 개정하려고 한다. 2020년 변동직불제를 폐지한 민주당이 이제는 농민을 위해 초과 생산량을 무조건 매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해법들은 가격 조정 기능을 해체하면서 문제를 더 악화시킬 것이다. 쌀값이 비싸게 유지되면 소비는 늘지 않고 공급은 줄지 않아 가격은 언제든 폭락할 수 있다. 농민들도 정부에 매각하는 것에 익숙해져 쌀 품질 향상을 등한시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 농민이 생산한 밀은 우리 농민이 생산한 밀이나 쌀보다 훨씬 싸게 팔린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농민이 프랑스 농민보다 더 잘 산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는 쌀값 유지에 집착하는 정책으로 일관했고, 이러한 쌀값 정책은 생산성 증대와 고품질화 등 농업 발전에는 오히려 독이 됐다. 소비자들은 값비싼 쌀을 외면했고, 밀과 잡곡 같은 다른 식자재를 찾게 됐다. 농업 발전의 근본적 대책보다는 돈을 푸는 선심성 정책으로 농민의 고통은 더 심해졌다.

과거 추곡수매 제도는 농업의 생산성이 정체되고 현대적 생산관리가 발달하지 못한 시절에 농민의 소득 안정을 위해 어느 정도 역할을 했지만, 농업의 발전과는 거리가 먼 제도다. 추곡수매 제도가 세계무역기구(WTO)의 감축보조금에 해당해 폐지되고, 공공비축제와 쌀소득 보전 직불제가 시행됐다. 추곡수매 제도가 폐지됐지만, 정치권의 쌀값 집착에는 변함이 없다. 장기간 가격 조정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그 누구도 농업을 발전시킬 유인을 가질 수 없었다.

공공비축 제도는 양곡 부족으로 인한 수급 불안과 천재지변 등 비상시에 대비하기 위한 제도다. 국제 규범에 따라 쌀값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운영돼야 한다. 이 제도가 이제는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한 제도로 변질했고, 국제 규범에도 어긋나며 농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됐다. 온 국민이 물가 상승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정부는 재정으로 쌀값을 올리고 있다. 모두가 고통스럽다.

그러면 농업 발전과 농민을 위한 근본 대책은 무엇인가. 첫째, 농산물 수급 조정을 위해 가격 기능을 살려야 한다. 공공비축 제도를 제도 목적에 맞게 운영하고, 가격 하락을 일정 수준 용인해야 한다. 정치적 타협에 의한 수급 조정은 갈등만 악화시킨다. 둘째, 농민의 소득 증진을 위해서 고품질의 다양한 작물을 경작하도록 정부가 농민과 함께 노력해야 한다. 고급화한 품질의 쌀과 밀, 그리고 다양한 잡곡들은 지금도 비싸게 팔린다. 식량 안보를 위해 쌀만 집착할 이유는 없다. 셋째, 농업 생산성 향상과 농가 소득 증진을 위해 스마트 농업과 과학 영농을 확대해야 한다. 농업도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농업 선진화를 위한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넷째, 농촌의 집적화(集積化)가 필요하다. 농업은 자경농에서 기업농으로 변신하고, 농민은 퇴근 후 집적화한 지역에서 문화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들은 값싼 수입 농산물로 눈을 돌렸고, 정치권은 해묵은 가격 안정 정책에 매몰돼 있다. 모든 국민을 위한 효과적인 선진 농업정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