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항생제 내성 위협과 ‘원헬스의 날’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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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미 한국파스퇴르연구소장

1940년 페니실린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항생제는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마법의 약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항생제 내성균이 출현하게 됐다. 이후 많은 새로운 항생제가 개발됐지만, 항생제 오남용이 늘어나면서 항생제 내성은 인류에게 가장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항생제 내성 문제의 심각성을 전 세계적으로 인식시키고 극복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는 2015년 항생제 내성 국제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WHO는 항생제 내성균 데이터 수집과 공유를 위한 글로벌 플랫폼 운영을 시작했고, 2017년에는 항생제 내성균 중 우선순위가 높은 병원체 선정을 위한 전문가 위원회를 열었다.

우리 정부도 WHO의 노력에 발맞춰 2018년 5월 세계보건총회에서 스웨덴과 공동 행사를 개최해 항생제 내성 관련 극복 과제를 논의했다. 또, 정부 부처 합동으로 2016년 제1차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2016∼2020)을 세우고 이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런데도 2019년 국내에서 인체 항생제 사용량은 OECD 회원국 중 3번째로 높으며, 비(非)인체 분야의 항생제 사용량도 상당히 높았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면서 의료기관 내 항생제 사용 증가 문제가 다시 제기되는 가운데, 정부는 지난해 11월 제2차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2021∼2025)을 내놨다. 주요 내용은 인체뿐 아니라, 가축과 수산 분야에서 항생제의 적정 사용, 감시 체계 강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01년에 도입한 약제급여 적정성 평가 결과 공개 제도 또한 의료기관의 항생제 오남용을 줄이는 데 역할을 했다. 2021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감기 환자의 항생제 처방률이 2002년 73%에서 2021년 38%로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병원별로는 상급종합병원의 감소 폭이 가장 크고, 병·의원의 감소 폭이 작았다. 그간의 데이터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항생제 처방률 개선이 느린 병·의원급 의료기관에 대한 지원과 홍보, 항생제 내성률 감소를 위한 방안 마련 등 정교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도 새로운 항생제 개발을 위한 노력과 함께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 환경에서 채취한 검체로부터 항생제 내성 패턴을 분석하는 글로벌 메타지놈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새로운 항생제 개발을 위해 우리 연구소는 글로벌항생제연구개발파트너십(GARDP)이라는 국제기구와 새로운 항생제 개발 연구 협력을 추진하고 있으며, 향후 국내외 연구 협력을 더욱 확대해 나갈 것이다.

항생제는 인체뿐 아니라 가축·수산 분야의 항생제 사용 모니터링과 교육, 환경에서의 항생제 내성 분석 등 원헬스(One-Health)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WHO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세계동물보건기구(OIE), 유엔환경계획(UNEP)과 협력해 항생제 내성인식주간(11월 셋째 주)의 주제를 ‘함께 예방하는 항생제 내성(Preventing AMR together)’으로, 11월 3일을 ‘원헬스의 날’로 정해 관련 교육과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원헬스 개념의 다분야·다부처 협력체계 구축, 원헬스 포럼 개최, 매년 11월 항생제 내성인식주간에 관련 학회와 함께 항생제 내성 인식 개선을 위한 행사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항생제 내성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범사회적 접근이 꼭 필요하다. WHO 등 국제기구와 원헬스 개념의 공조, 새로운 항생제 연구·개발(R&D) 등 글로벌 역량을 총결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