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학’ 예술이란 현실속에 숨겨진 실체의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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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카페 - 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19) 표현의 자유

현실을 작품속에 담아내는 건
새로운 현실을 짓는 창작 해당

탁월한 작가 모방하기도 비슷
표절 시비에 걸릴수 있겠지만
경쟁 넘어선 순간 진정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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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차’가 화제다. 한 고등학생이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공모전에서 상을 탄 ‘카툰’이다. 상을 준 사람들은 무릎을 쳤겠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게 우리 정치 현실이지! 정말 잘 그렸네.” 화가 난 사람들도 있다. 최고 지도자에 대한 음해며 모욕이라는 것이다. 내용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 당사자와 지지자들이 유쾌할 리 없을 것 같긴 하다. 한편, 애초에 정치적인 내용은 담지 말라는 규정을 어긴 작품에 상을 준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 카툰이 창작이 아니라 영국의 유명 카툰 작가의 작품을 표절했기 때문에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논란의 와중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어떨까? “저것이 바로 그것이로구나!” 이 철학자는 예술의 기쁨을 이 한마디에 담아냈다.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들으며, 시를 음미하고, 연극을 관람하는 순간, 작품 속에 재현된 것으로부터 예술적 추론을 통해 현실에 숨겨진 실체를, 실체의 본질을 깨닫고 놀라운 희열을 느낀다는 것이다. 추론? 그렇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 감상과 창작의 핵심을 모종의 추론, 그리스 말로는 쉴로기스모스(sullogismos)라고 했다. 진리의 탐구와 증명의 추론과는 다른, 설득을 일구어내는 수사적 추론과는 다른 예술적 추론, 그것이 예술의 창작과 감상에도 있으며, 그것이 모든 즐거움 중에 가장 큰 지적 쾌감, 깨달음의 환희를 낳는다고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세계는 수많은 요소들이 얽히고설키어 있다. 그래서 어떤 한 대상,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본질이 우연적이고 부수적인 요소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라고 어린왕자가 말했을 때, 그 ‘중요한 것’이란 대상의 ‘본질(l’essentiel)’을 새긴 말이다. 예술가는 본질을 가리는 번잡한 찌꺼기들을 제거하고 오롯이 그 본질만을 작품 속에 깨끗하게 재현하려고 애쓴다. 그것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다. 작가의 피, 땀, 눈물로 얼룩진 각고의 노력에 정교한 예술적 추론이 깃들고, 그로 말미암아 태어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다시 추론을 통해 작품에 구현된 사물의 본질을, 현상의 비밀을 깨닫고 기뻐하는 것이다. “아, 저것이 번거롭게 뒤섞인 요소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바로 그것이로구나!”

이와 같은 예술적 추론에 근거한 일체의 ‘창작’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두 ‘미메시스’라고 했다. 미메시스는 ‘모방(imitation)’ 또는 ‘재현(representation)’으로 번역되는데, 현실을 작품 속에 담아내는 일이 현실의 모방이고 재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에 대한 단순한 모사가 아니며, 현실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를 환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재구성하여 현실을 닮은 새로운 현실을 짓는 일이니 창작인 것이다. 그렇게 창작과 모방, 또는 재현은 예술의 행위를 가리키는 중요한 개념이 된다. ‘윤석열차’라는 건 이 세상에 없다. 그것은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다. 그러나 그 허구가 우리의 현실의 중요한 특징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것인 한, 현실만큼, 아니 현실보다 더 진실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을 모방한다’는 미메시스 개념은 시간이 흐르면서 탁월한 작가를 존경하고 모방하는 동시에 그와 경쟁하면서 자신만의 새로움을 드러내는 행위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바뀐다. 로마의 쿠인틸리아누스는 이런 작가의 행위를 ‘모방과 경쟁’이라는 두 단어로 표현했다. ‘다른 작가를 모방한다는 것’에 표절 시비가 걸릴 수도 있지만, 유명한 작가를 모방한다는 것 자체가 그 작가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자부심의 표현으로 통했다. 그와 경쟁해 그를 넘어서는 순간, 작가는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짓는 것으로 통했다. 실제로 로마 문명 자체가 그리스 문명에 대한 모방과 경쟁의 결과였고, 그 이후의 서구 문명은 그리스 로마 문명을 모방하고 경쟁하며 성장해왔다고 할 수 있다.

사족 하나 덧붙이고 싶다. ‘윤석열차’를 무효화시키기 위해 권력에 의존하는 억압의 기재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그런 카툰의 소재 자체를 제거하거나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 쪽으로의 정치적 노력이 절실하지 않을까.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