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민 “인생의 3분의1은 다른 이의 삶을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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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인생의 3분의1은 다른 이의 삶을 살지 않았을까요?”

배우 이성민이 바라보는 그의 인생이다. 연극 무대를 거쳐 드라마와 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는 그는 수시로 ‘주어진 삶’을 살곤 한다. 작품 속 세상, 실제 그의 삶은 아니지만 30년 넘게 ‘연기밥’을 먹는 동안 그 경계는 어느덧 불분명해졌다.

“전 연극할 때도 쉰 적이 없어요. 내가 나 아닌 삶으로 살았던 시간을 계산해보면, 제 인생에서 3분의1은 그럴 거예요. 그 때도 후배들이 ‘쉬면서 비운다’고 했을 때 이해가 안 됐어요. ‘비울 게 뭐 있어’ 그랬죠. 가끔은 새로운 캐릭터를 맞이하고, 그 옷을 입고 사는 게 더 편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26일 개봉을 앞둔 영화 ‘리멤버’(감독 이일형)의 현장 만큼은 “편하다” 말하기 어려웠다. 극 중 그는 80대 노인을 연기했다. 촬영 내내 특수 분장을 하는 데만 150시간 이상 썼다. 단순히 외적인 변화 뿐만 아니라 자세와 말투까지 그 배역에 맞게 몸이 바뀌었다.

“치밀하게 막 계산한 건 아니지만, 무의식적으로 행동을 느리게 하고 이상한 자세로 다녔나 봐요. 촬영 전부터 그런 게 잠재돼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촬영 중반쯤인가 목이 불편했죠. 나중엔 목디스크가 오더라고요. 촬영 끝나고도 한참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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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연기한 80대 한필주는 뇌종양 말기 환자다. 기억을 더 잃기 전, 일제강점기 때 가족을 앗아간 친일 세력을 향한 복수를 꿈꾼다. 광복을 이룬 지 8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그 때의 아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개봉했을 때 ‘이제 와서 또 그 얘기냐’라고 할까 봐 우려도 했어요. 하지만 아직도 (과거 청산 문제가) 논란과 논쟁이 된다는 점에서 ‘리멤버‘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요. 그러기 위해, 노인이 된 제 모습을 관객들에게 설득시키는 것이 중요했죠. 그 모습이 영화를 보는 데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하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독립기념관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참 어려웠어요. 감정적으로 도망가고 싶을 만큼 스트레스가 많은 무서운 장면이었죠.”

‘리멤버’는 이성민에게 아픈 손가락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3년 전 이미 촬영을 마쳤으나 코로나19가 창궐하며 극장에 걸릴 수 없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흐른 후 이제서야 관객들 앞에 내놓으며, 이 작품에 대한 부채 의식 역시 털어낼 수 있게 됐다.

“늘 ‘언제 개봉하나’ 생각했는데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일반 시사회 객석이 꽉 찬 걸 보고 뭉클했어요. 3년 가까운 시차을 두고 영화를 보니까 옛날 생각이 많이 났어요. 그래서인지 마지막 장면에서는 눈물도 나더군요.”

‘리멤버’ 개봉 후에도 이성민은 쉴 틈이 없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형사록’,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등이 줄줄이 공개되기 때문이다. 영화, 드라마, OTT 등 플랫폼을 넘나들며 연말 내내 바쁜 행보를 이어간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재벌 총수 역할을 처음 해봤어요. 그래서 기존에 봤던 재벌, 귀족들의 모습과는 다른 결의 드라마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거의 1년 가까이 촬영했어요. 주말 말고 일하는 직장인들도 똑같지 않나요? 오래 전에 작업한 것들이 이제 나와서 작품 공개 시기가 겹친 것 같아요. 가끔은 어려운 장면이나 캐릭터를 연기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하지만 그게 배우의 숙명 아닐까요?”

안진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