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편 아니면 네편… ‘좁은 공감’ 이 갈등과 혐오 낳는다

공감의 반경│장대익 지음│바다출판사

타인에 감정이입 ‘정서적 공감’
내집단 편애 · 외집단 차별 유발

인간에게만 있는 ‘인지적 공감’
타인마음 헤아리며 내집단 확장

“공감의 깊이보다 넓이 키워야”

우리는 타자에게 마음 쓰는 존재다. 인류는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 공감 능력을 타고난다. 타자를 나와 같은 존재로 여기고 서로 협력하는 탁월한 공감력 없이 인류의 집단 성취인 문명은 불가능했다.

‘공감의 반경’에서 장대익 가천대 창업대학장은 공감에는 어두운 얼굴도 있다고 말한다. 공감은 협력과 함께 편향도 낳는다. 인류는 우리 편(내집단)에는 쉽게 공감하나 다른 편(외집단)에는 거의 공감하지 않는다. 우리는 내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자존감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반면, 외집단과 상호작용 할 때는 자존감과 지위가 위협받는 것처럼 느낀다.

동전 던지기를 해서 임의로 팀을 가른 후, 사람들을 경쟁시키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우리는 자기 팀은 열렬히 칭송하고, 상대 팀은 허접하다고 생각한다. 승리는 우월한 우리 편이 얻는 필연이고, 패배는 불운이 겹친 사건이거나 상대 속임수에 따른 비열함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우리는 내집단은 선호하고 외집단은 짐승, 벌레, 물건 같은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한다. 이 탓에 우리 사회에는 맘충, 한남충, 급식충 등 혐오의 말이나 지잡대, 전라디언, 짱개, 깜둥이 등 차별의 언어가 넘쳐난다. 내집단에 대한 과잉 공감은 갈등과 분열의 원천이고 문명 붕괴의 원흉이다.

인터넷은 인류를 하나로 연결했으나 사랑의 장을 열지는 못했다. 나와 다른 의견을 체계적으로 제거하고 극단끼리만 어울리게 하는 맞춤형 알고리듬이 범람하면서 우리 편 편향을 강화했다. 협력과 화합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잦아들고, 갈등과 혐오를 유발하는 개소리는 ‘좋아요’를 얻는다. 권력자들은 말실수하고도 ‘대안적 진실’을 내세워 사과를 미루고, 범죄에 연루되고도 희생자인 양 눈물을 흘린다. 타락한 정치가 우리 편 편향을 강화하면, 살육과 전쟁을 피할 수 없었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그런데 공감에는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이 있다. 타인에게 감정이입 하는 정서적 공감은 강하고 깊지만, 내집단 편애와 외집단 차별을 촉발한다. 저자는 이런 공감을 ‘부족 본능’이라고 부른다. 공감의 구심력인 부족 본능은 범위는 좁고 방향은 안쪽을 향한다. 구심력이 높아지면, 혈연·지연·학연 등 연줄이 강화되고 극단적 편 가르기로 사회가 갈가리 찢어진다. ‘느낌의 공동체’는 우리를 망친다.

다행히 우리 안엔 타인의 처지를 따져보고, 그 생각을 이해하는 인지적 공감도 있다. 이는 자동으로 일어나는 정서적 공감에 휘둘리는 대신, 이성에 바탕을 두고 차분히 따져가면서 타인이 되어보는 일이다. 인지적 공감은 공자의 ‘헤아리는 마음(恕)’을 떠올리게 한다. 사랑(仁)의 핵심인 서(恕)는 나의 마음과 남의 마음을 똑같이 여기는 일(如心)이다. 인지적 공감은 나와 외집단을 동등한 존재로 여기고 이들의 마음을 헤아림으로써 내집단을 확장한다.

정서적 공감은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에게 흔히 나타나지만, 인지적 공감은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독특한 본성이다. 저자는 우리의 공감 대상을 확장한다는 점에서 인지적 공감을 공감의 원심력이라고 부른다. 그 원심력에는 한계가 없다. 우리는 소수자를 포용하고, 인권을 넘어 동물권을 주장하며, SF 영화에서처럼 로봇이나 인공지능과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감의 깊이가 아니라 공감의 넓이다. 우리 편 편향이 가져온 기후 위기, 팬데믹, 핵전쟁 등으로 인해 인류 문명은 붕괴의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를 내집단에 가두는 정서적 공감의 구심력을 인지적 공감의 원심력으로 균형 잡아 공감의 반경을 넓히지 않으면 우리를 기다리는 건 파멸뿐이다. “정서적 공감이 따뜻한 감정의 힘이라면, 인지적 공감은 따뜻한 사고의 힘이다. 차분히 사고하지 않으면 상대 상태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저자가 ‘느낌의 공동체’보다 ‘사고의 공동체’를 강조하면서 글쓰기나 가상현실 장치 등을 통해 인지적 공감력을 길러 주는 ‘공감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이유이다. 296쪽, 1만65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