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생각하는 능력 상실 … 진정 원하는 것 무엇인가 질문해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인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지난 7일 서울 서초구의 연구실에서 문화일보와 만나 인문학적 사유의 중요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모든 면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진단하면서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선 인문학적 사유가 필요하다. 최근의 ‘인문학 유행’은 매우 희망적인 현상”이라고 이야기했다. 김호웅 기자

■ 일상속 인문학 멘토를 만나다 (中)

‘실천 철학자’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

후진국, 법학·정치학 중심기능
중진국은 경제학적 통찰에 무게
인문학 사유 갖춰야 한단계 도약

‘황당무계함’ 속에 문명 주도권
개인 판타지 실현 도전 지속을
결국 독서로 지식·내공 쌓아야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도가 철학자다. 장자의 철학을 연구하고 가르친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안철수 후보의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는 등 정치 참여에도 서슴없는 ‘실천 철학자’이기도 하다. 최 교수는 2020년 인문·철학 교육 활동을 위주로 하는 사단법인 ‘새말새몸짓’을 설립하고 인간으로서의 기본 태도와 자질을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 ‘기본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7일 서울 서초구의 연구실에서 만난 최 교수는 “우리의 모든 면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진단하면서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 희망의 끈을 그는 ‘인문 정신’에서 찾았다.
최 교수의 현재 우리 사회에 대한 진단은 명료했다.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 “세상을 결정하는 힘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이 정치인데 정치가 진영으로 분열돼 ‘이게 나라냐’와 ‘이건 나라냐’가 대립하고 있습니다. 건강성이 전혀 보이지 않아요. 왜 진영에 갇히느냐. 생각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진영에 갇히면 진영이 이미 정해놓은 이념을 더 자주, 더 큰 목소리로 말하는 것 외엔 할 일이 없어서 생각하는 능력이 거세되죠.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설립한 게 인문학과 철학을 가르치는 ‘새말새몸짓’이다. 왜 인문학일까. “그동안 우리 사회는 법학이나 정치학, 경제학적인 시선이 주도권을 행사하던 사회였습니다. 법학이나 정치학에서 나오는 통찰이 중심 기능을 가지면 후진국, 경제학에서 나오는 통찰이 중심 기능을 가지면 중진국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선 인문학적 사유가 필요합니다. 다행히 최근의 ‘인문학 유행’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전 우리나라에서 6·25전쟁 이후 일어난 일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일이 ‘인문학 유행’이라 생각하는데요. 우리가 매우 지적이라는 증거인 동시에 매우 희망적인 현상입니다.”

‘새말새몸짓’의 목표는 착실한 사람을 데려다 황당무계하게 만드는 것이다. ‘황당무계함’에 관해 설명하며 최 교수는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을 이야기했다. “사실 전 황 감독이 앞으로 훌륭한 감독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오래전에 예상했습니다. 예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제일 의미 있는 영화 한 편을 꼽으라면 ‘수상한 그녀’를 꼽아왔어요. 칠순의 할머니가 스무 살의 자신으로 돌아간다는 설정을 보세요. 선악의 문제인가요? 진위의 문제인가요? 이도 저도 아닌 황당한 설정이에요. 우리 삶은 개인의 판타지를 실현하는 도전이어야 합니다. 개인의 판타지를 실현하려는 도전이 한 사람의 일생이어야 해요. 그런데 자신만의 판타지는 황당함에서 나옵니다. 문명의 주도권은 황당한 사람에게 있지 착실한 사람에게 있지 않아요. 대답은 착실하고 질문은 황당하죠. 이 세계의 주인은 대답하는 자가 아니라 질문하는 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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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시작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다. ‘기본학교’도 자신을 향한 질문을 시작하자는 목표에서 설립했다. “제가 대학교수 할 때 가장 슬펐던 일은, 젊은이들이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보다 더 슬픈 건 자신이 뭘 원하는지 자신에게 묻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적어도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질문을 시작하는 단계를 철학에선 ‘경이’(驚異)라고 한다. “말 그대로 경이로운 순간이자 축복의 순간입니다. 거기서 비로소 생각이 시작되죠. 그런데 그 순간을 지속하느냐, 순간적인 불꽃으로 소비하느냐는 자신이 하는 일이에요. 누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질문을 시작했다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활동 중 하나가 독서다. “파스칼 키냐르는 독서를 ‘마법의 양탄자’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길을 찾는 어떤 사람이 책을 읽으면 마법의 양탄자를 타는 일과 똑같습니다. 자신을 어디론가 데려다줍니다.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어떤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거예요. 책이 왜 중요할까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지식도 필요하지만, 그 지식을 발휘할 수 있는 내공도 필요합니다. 인간이 발견한 것 중 지식과 내공을 동시에 증가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게 독서입니다. 책 읽으려고 사놓고 안 읽은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끝까지 못 읽고 중간에 멈춘 건 또 얼마나 많습니까. 책을 끝까지 읽는 일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하나의 수련입니다.”

일상이 바빠 책을 멀리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따끔하게 조언했다. “시간이 없다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그래서 그 삶이 행복한가요? 그 삶이 자유롭나요?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 행복하지 않고 자유롭지 않으면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물론 돈을 더 많이 벌려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돈은 더 많은 여유를 제공할 수 있고 시간과 공간을 늘려줄 수 있어요. 그래서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망은 굉장히 중요하고, 그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자신한테 물어봐야 돼요. 소 왓?(So What?) 돈을 많이 벌어서 어쩌겠다는 건가요.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 너는 도대체 누구인지, 이걸 자신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인문학적 사유가 주도권을 행사하는 단계의 국가로 도약시키는 일을 자신의 소명으로 생각했다. “75세까지는 ‘보살행’(菩薩行)을 하려고 합니다. 불교에서 세상을 구하는 활동을 ‘보살행’이라고 해요.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지만 꿈은 있어요. 우리나라를 선도국가로 도약시키는 일. 인문학적 사유가 주도권을 행사하는 단계의 나라로 도약시키는 것. 이것이 제 꿈입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5일 전남 함평군 호접몽가에서 열린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3기 입학식. 새말새몸짓 제공

■ 철학부터 블록체인까지 공부… ‘나는 누구인가’ 등 주제로 매주 에세이

최 교수 설립한 ‘새말새몸짓’
태도 · 자질 양성 ‘기본학교’운영
‘체덕지’ 강조… 체육활동도 진행

‘새말새몸짓 기본학교’는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고향이기도 한 전남 함평에서 열린다. 6개월 과정으로, 주말마다 수업이 진행된다. 학교는 소액 기부자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되기에 학비는 없다. 15세에서 49세까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으나 에세이 심사와 논술, 면접 심사를 거쳐 선발된다. 보통 지원자는 100명 이상으로 선발 과정을 거쳐 20명 안팎으로 추린다. 현재는 지난 11월 입학한 3기 학생 16명의 수업이 진행 중이다.

과목은 철학부터 4차 산업혁명, 블록체인, 음악 등 다양하다. 이른 새벽에 산에 올라 일출을 보는 체육도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등을 주제로 매주 에세이를 쓴다.

최 교수는 ‘새말새몸짓’에 대해 “지난 과거를 ‘헌말헌몸짓’으로 규정하고 새 세상을 열어야 한다는 염원이 담겨있다”고 설명하며 “미래는 시간이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인재가 열어준다. 인재가 준비돼있지 않으면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인문학의 핵심은 독립적 사유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다. 생각을 ‘받아서’ 사는 세상에서 생각을 ‘하는’ 세상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래서 새말새몸짓 기본학교에선 철학 강의가 중점”이라고 설명했다. 또 “일반적으로 말하는 ‘지덕체’보다는 ‘체덕지’가 맞다고 생각한다.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고 하지만 몸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강력하다. 그래서 새벽 등산을 한다”고 덧붙였다.

사단법인 새말새몸짓은 기본학교 외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책 읽고 건너가기’ 활동을 했으며 최 교수의 강연을 유튜브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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