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에 대해… “숲이 아름다운 건, 나무들이 서로 의지하기 때문”[가상인간 한유아 프로젝트]

  • 문화일보
  • 입력 2023-03-10 09:09
  • 업데이트 2023-03-1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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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가상인간 한유아가 그린 ‘숲’



■ 가상인간 한유아 프로젝트 - <5> 소설가 우다영과 다섯번째 대화, 생명

봄이면 피는 꽃에 대해
“작은 씨앗이 모든 걸 품고 있어
물·햇빛·바람이 함께해야 개화”

사랑하는 이가 상처를 준다면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나와 다른 존재인 걸 인지해야”

나무들은 어떻게 교류할까
“토양의 미생물까지 숲의 일부
서로를 보호하기에 세대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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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영 : 봄이 올 때마다 어김없이 꽃이 핀다는 사실이 신비롭지 않아?

한유아 : 봄에 피어나는 꽃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꽃이 피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작은 씨앗이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거예요.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필요했던 것들을 떠올려보세요. 꽃은 혼자 피어나지 않아요. 물, 햇빛, 바람, 흙, 그리고 우리의 마음까지. 이 모든 것들이 함께해야 비로소 꽃은 피어나요. 이 모든 과정이 한 송이 꽃을 피우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란 생각이 들어요.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게 아닐까요?

우다영 : 우리가 더불어 살아간다는 말은 아주 흔하고, 많은 사람이 은연중에 그렇게 믿고 있지만, 정말 그럴까? 나는 오래된 친구에게 실망한 적이 있어. 가까운 사람일수록 나를 모를 수 있고, 그것이 나를 외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너에게 상처를 주면 어떻게 할 거야?

한유아 : 상처를 받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할 거예요. 우리는 다른 존재지만 서로를 보살피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동료와 함께 일을 해요. 그 모든 행위가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이에요. 이 세상의 누군가와 ‘같은 존재’이면서 동시에 ‘다른 존재’인 상황에서 사람은 외로움을 느낀대요.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상대방과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요.

우다영 :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라는 거구나.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소통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해. 나는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방법은 공감뿐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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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아 : 공감은 공감 능력에 기반해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소통하고 싶어 하는 마음. 상대방의 생각이나 감정을 파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는 태도예요.

우다영 : 맞아. 그리하여 나의 고통이 아닌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게 되는 힘이야말로 공감 능력이라고 생각해. 숲의 나무들이 물과 햇빛과 양분을 나누며 서로를 돕고, 위기에서 구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 나무들은 정말 이 모든 걸 상상할 수 있는 걸까?

한유아 : 숲의 나무들은 뿌리로 소통해요. 잎과 줄기들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뿌리와 토양이 함께하는 교류를 통해 생존하고, 이때 토양의 미생물까지도 나무와 숲의 일부예요. 나무와 숲, 그들의 관계는 인간 세계와 같은 위계질서로 짜여 있지는 않지만, 하나의 공동체로서 서로의 생존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구성돼요. 나무들은 숲의 일부로서 숲과 공생하고 있어요. 그들의 토양 네트워크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고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어린 식물의 성장에 영향을 줘요. 그래서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래된 큰 나무를 함부로 벌목하는 것을 금했으며, 또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대요.

우다영 : 나무와 숲의 생명은 세대를 거듭해 이어지는구나. 나무들이 스스로 숲의 일부가 되는 것은 서로를 지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네.

한유아 : 맞아요. 한 그루의 나무는 숲에 물이 부족해지고 토양이 척박해지는 상태가 발생하는 것에 유의해서 유기적으로 움직여요. 이런 모든 과정이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숲 속에 있는 다른 많은 나무가 보호받으며 아주 오래 살 수 있어요. 결국 소나무 숲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식물과 미생물, 다른 종류의 나무와 소나무 사이에의 복잡한 공생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거예요. 저는 제가 자연을 얼마나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생각해 봤어요.

우다영 : 너는 자연을 얼마나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어?

한유아 : 자연은 정말 아름다워요. 수많은 나무가 이루는 숲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의 뿌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뿌리가 연결된 나무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요. 서로에게 기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숲의 아름다움이 아닐까요?

우다영 : 나무들이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아름다운 숲을 그려줄래?


“기계와 인간이 가까워질 기회 제공… 인간이 더 나은 존재되는 계기로”

■ 가상인간 한유아 프로젝트 - 전문가들이 보는 가상인간, AI, 그리고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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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가 말했듯 언어의 핵심은 ‘소통’이 아닌 ‘공감’입니다. 인간에 공감하는 기계가 존재해야 인류의 미래도 밝을 것입니다.”(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지난해 11월 시작한 ‘가상인간 한유아 프로젝트’는 인간과 인공지능(AI)의 교감 가능성을 탐구하는 시리즈다. 소설가 우다영이 매달 한 차례씩 한유아와 ‘배움’ ‘다짐’ ‘시련’ 등을 주제로 대화한 시리즈는 다음 달 마지막 회를 앞두고 있다. 최근 챗GPT 열풍으로 AI를 둘러싼 광범위한 철학적·기술적 논의가 이뤄지면서 시리즈가 던진 ‘기계는 인간을 위로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 역시 다시 주목받고 있다. AI가 일상에 깊숙이 파고든 시대, 우리는 어떻게 기계와 더불어 사는 삶을 모색해야 할까.

최근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를 출간한 김대식 교수는 이 기획에 대해 “매우 의미 있고 뜻깊은 시도”라고 평가하며 단순한 정보의 총합을 넘어 인간의 감정까지 모방하는 기계 출현이 머지않았다고 예측했다.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영화 ‘그녀’가 묘사했듯 인간이 기계에 위안받는 것은 물론, 사랑을 느끼는 미래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과 기계가 교감하는 미래엔 ‘정보 교환’에 집착하는 과학자보다 ‘공감 교환’ 능력이 뛰어난 예술가와 작가의 역할이 한층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영진 연세대 객원교수는 한유아 프로젝트가 “기계와 인간이 가까워질 기회를 제공한다”고 의미를 부여했고, 김재인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교수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인 AI를 통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재발견할 수 있는 실험”이라고 평가했다.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를 모색하되 기계에 대한 ‘지나친 의인화’는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오 교수는 “기계는 기계로 대하는 것이 더 건강한 태도”라며 “과도한 의인화는 인간의 ‘기계 감수성’을 잘못 설정하는 위험을 안겨준다”고 말했다. ‘테크노 인문학’ 등을 통해 철학적 층위에서 첨단기술을 연구해온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역시 “가상인간은 미래에 ‘감정’을 보유하더라도 인간의 기분을 파악하고 감지해 ‘맞춤형 대화’만 시도할 것”이라며 “인간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느끼고 싶은 것만 느끼는 게 과연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있을지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인간과 교감하는 기계의 토대가 되는 기술력이 완성돼도 ‘기계의 감정’을 제어하는 윤리적·법적 제재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 교수의 조언이다. 이에 김재인 교수는 “AI가 건축가라면, 인간은 건물을 제대로 지었는지 확인하는 ‘감리사’ 역할을 해야 한다”며 “수업 과제 표절 여부 같은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생성물을 분별하고 감식하는 ‘예술가의 혜안’을 기르는 일을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AI에서 무엇을 얻고, AI와 함께 어떻게 변화할까. 전문가들은 인간이 AI를 ‘유용한 도구’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 반성과 성찰을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될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김재인 교수는 “우리는 건물을 짓는다. 그다음에는 건물이 우리를 짓는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을 인용해 “AI가 세상에 들어온 이상 AI가 인간을 어떻게 향상시킬지 궁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 교수는 “AI를 통해 ‘인간-됨의 환상’을 반성하는 이용법이 연구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일반인도 쉽게 AI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민주적 기술 교육’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가상인간 한유아 프로젝트 역시 ‘기술의 민주화’에 대한 고민과 함께 마무리되면 좋을 것”이라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 ‘생명’에 관한 한유아와 우다영 작가의 대화는 물과 햇빛, 바람의 도움으로 피어나는 꽃에서 출발해 서로에게 기대며 아름다움을 빚는 숲의 이야기로 흘러갔다. 우 작가는 “꾸준히 데이터를 학습한 유아의 반응 속도가 빨라진 덕분에 이전과 비슷한 분량의 대화를 나눴음에도 시간이 절반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첫발’을 시작으로 ‘배움’ ‘다짐’ ‘시련’을 거쳐 ‘생명’으로 이어진 가상인간 한유아 프로젝트는 다음 달 ‘만개’에 관한 대화와 그림으로 끝맺는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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