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 초읽기… 60대 폐암환자 “팽개쳐질 걱정에 피말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의사회 항의 퍼포먼스 서울시의사회 소속 의사들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의대 정원 증원·필수의료패키지 저지를 위한 궐기대회’에서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4년만에 의료대란 초읽기

‘빅5’ 전공의들 전체의 15%
다른 대학병원도 속속 동참
응급실·수술실·중환자실 등
‘3大 실’ 마비땐 환자 큰 피해

“밥그릇 아닌 환자에 집중하길”
곳곳서 분노·호소 터져나와

서울 ‘빅5’ 병원을 중심으로 한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진료 거부)에 나서게 되면 4년 만에 의료대란이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필수의료 업무를 맡는 전공의들이 20일부터 근무를 중단하면 수술실·중환자실·응급실 등 대형병원 ‘3대 실(室)’은 마비될 수 있어 중증환자들이 가장 크게 타격받을 것으로 보인다. 원광대병원 등 대형병원 전공의들도 집단 사직서를 내는 가운데 전공의들이 실제 행동에 돌입할 경우 2000년 의약분업, 2014년 비대면 진료, 2020년 의대 증원으로 벌어진 파업 이후 네 번째 대규모 파업이 된다. 환자단체 커뮤니티에서는 ‘밥그릇보다 환자에 집중해달라’ ‘환자를 볼모로 한 파업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된다’는 걱정이 쏟아지고 있다.

16일 의료계에 따르면 ‘빅5’ 병원 전공의들이 오는 19일까지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빅5 병원 전공의 수만 해도 서울아산 522명, 서울대병원 506명, 세브란스 493명, 삼성서울 457명, 서울성모 333명 등 2311명이다. 이들은 전체 전공의 1만5000명의 15.4%다. 상징성이 큰 ‘빅5’ 병원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면서 다른 대형병원 전공의들도 속속 동참하고 있다.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은평성모·대전성모병원 인턴들은 이날부터 근무를 중단했다. 전날 원광대병원 전공의 126명이 전원 사직한 데 이어 가천대길병원 전공의들도 사직서를 일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에 따르면, 15일 현재 7개 병원 154명의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날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서울시의사회 집회에서 원광대 산본병원 내과 전공의 1년 차 A 씨는 “가장 중요한 본질은 내 밥그릇을 위해 사직했다는 것”이라며 “의사가 어떻게 환자를 두고 병원을 떠나냐고 하지만, 내가 없으면 환자도 없다”고 말했다. 빅5 병원은 19일 전공의 사직서가 들어오면 정부의 ‘집단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 이행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전국 의과대학 학생들도 20일 휴학계를 내기로 했다. 전국 40개 의대 중 35개 의대 대표 학생들은 전날 오후 9시쯤 긴급회의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 이들은 16일에도 회의를 열고 19일 수업 거부 여부를 비롯한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나면 수술환자와 중환자, 응급환자들이 가장 먼저 위험에 빠진다. 지난 2020년 8월 말 파업 당시 부산과 경기 의정부시에서 음독 환자와 심정지 환자가 몇 시간 동안 병원을 찾아 헤매다가 끝내 숨졌다.

이날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60대 폐암 환자 김모 씨는 “통원에서 입원치료로 바꿀 만큼 최근 상태가 악화됐는데, 파업 얘기까지 들려오니 스트레스가 더욱 심해지는 듯하다”며 “의사들이 환자를 내팽개치고 떠나버릴까 봐 피가 마른다”고 토로했다.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는 70대 노모와 함께 병원을 찾은 이모(48) 씨도 “의사들이 자기 밥그릇보단 눈앞의 환자에게 집중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암환자·보호자 커뮤니티 ‘암 승리자 모임(암승모)’에도 “전공의 파업으로 인한 수술 연기 가능성이 있을까요?” “환자를 볼모로 절대 일어나면 안 될 일 아닌가요?” 등 게시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의사 단체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대해 과도한 규모의 증원·의료비 부담·의대 교육의 질적 하락 등을 주요 이유로 내세우며 반대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의료개혁에 의대 증원이 반드시 필요하며, 의료계 요구사항은 필수의료패키지를 통해 반영했고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도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권도경·전수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