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제압하는 건 기술이 아니라 ‘정치’[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35) 기술과 가짜

■ 헤로도토스‘역사’

악인들의 기교 거짓을 진짜로 속여 교묘하게 대중 현혹
이기적 욕망이 위험 참된 정치인에게 기술, 善 구현하는 힘

이란의 동남쪽 작은 나라 페르시아를 거대 제국으로 만든 이는 퀴로스였다. 그는 외할아버지의 땅 메디아를 정복하고 땅을 동서남북으로 엄청나게 넓혀나갔다. 그가 죽자 그의 아들 캄뷔세스가 뒤를 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아버지를 능가하는 정복자가 되길 기대했다. 그는 최선을 다해 그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했고, 이집트와 리비아를 정복했다. 그걸로 충분했다. 그러나 그는 만족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에티오피아까지 노렸다. 철저한 준비 없이 서두르다가 참혹하게 실패했다. 목적지의 5분의 1도 가지 못해 식량이 바닥났고, 배고픈 병사들은 수송용 동물들을 잡아먹었고, 급기야 제비뽑기로 10명 중 1명을 뽑아 잡아먹기까지 했다.

캄뷔세스는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시달렸다. 사람들이 자신을 모욕하고 조롱한다고 생각하면서 애먼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했다. 그에겐 스메르디스라는 동생이 있었다. 똑똑하고 용기 있는 전사였다. 탁월한 능력과 업적을 보여주며 존경과 신망을 얻자, 캄뷔세스는 시기와 질투를 느끼며 동생이 더 이상 활약할 수 없도록 그를 페르시아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동생이 페르시아의 왕좌에 앉아있고, 머리가 하늘에 닿았다는 꿈을 꾸었다. 에티오피아 원정의 실패로 좌절하던 캄뷔세스는 동생이 자신을 죽이고 왕이 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신뢰할 만한 자객을 페르시아로 보내 동생을 죽였다.

그런데 얼마 후, 페르시아로부터 이상한 소식이 전해졌다. 캄뷔세스의 동생 스메르디스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캄뷔세스는 믿을 수 없었다. ‘분명 내가 자객을 보내 동생을 죽였는데, 그가 어떻게 살아있단 말인가? 그놈은 분명 가짜다!’ 그의 생각은 옳았다. 마법사인 마고스 중에 스메르디스와 아주 닮은 파디제이테스라는 자가 진짜 스메르디스인 척하면서 백성들을 선동했다. “미치광이 캄뷔세스는 더 이상 페르시아의 왕이 아니다. 내가 형 대신 왕이 되어 페르시아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외치자 백성들은 동조했다. 동생을 죽인 것을 후회하며 가짜의 정체를 밝히고 없애버리겠다며 캄뷔세스는 서둘러 말에 뛰어올랐다. 그러다 자신의 칼에 허벅지를 찔려 죽고 말았다. 그렇게 가짜 스메르디스는 진짜처럼 페르시아의 왕이 될 판이었다.

이때 나선 이가 다레이오스다. 캄뷔세스의 심복이었다. 그는 가짜를 제거하고 나라를 바로잡겠다며 신속하게 움직였다. 때마침, 수많은 페르시아인이 모인 자리에 진짜 스메르디스를 죽인 자객이 나타났다. 가짜 스메르디스의 요청을 받아 ‘지금 왕은 진짜 스메르디스’라고 선언하고 막대한 재물을 대가로 받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용감하게 진실을 밝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진실에 직면하여 페르시아인들이 술렁이고 있는 사이, 다레이오스가 가짜 스메르디스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그렇게 가짜는 제거되었고, 다레이오스는 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페르시아를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제국으로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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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거짓을 제압하고 진실이 승리하게 만드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기술이다. 대중은 자칫 거짓에 속기 쉽다. 현실에서는 항상 거짓이 승리하고 권력을 누리는 것 같지만, 참된 정치인은 교묘한 거짓을 과감하고 지혜롭게 폭로하며, 거짓이 득세하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제압한다. 그때 진실이 오롯이 승리한다. 너무나 꿈같은 이야기지만, 꿈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기적인 욕망만이 중요한 사람들은 그 저급한 진실을 감추려고 다양한 기교와 기술로 거짓을 진짜로 둔갑시켜 대중을 교묘하게 현혹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알뜰하게 충족시켜 나간다. 그러니 기술 자체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기술을 이용하는 사람의 악덕이 진짜 위험한 것이다. 악인의 꾀를 쫓지 않고, 오직 참된 정치를 실현하려는 사람에게라면 기술은 선을 구현하는 힘이 될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정치라고!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