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을 늘 밝게 만들었던 당신은 봄 햇살같이 따사로운 사람[추모합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조카(안지민, 안서현)들이 초등학교 시절, 가족이 모여서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고암 이응노 회고전을 본 뒤에 미술관 뒤뜰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뒷줄 맨 왼쪽이 매제 안대찬.

■ 추모합니다 - 나의 매제 안대찬(1970~2024) <상>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 우리 모두를 사랑했던 사람 안대찬, 당신의 이름을 목 놓아 불러 보네.

이제는 우리가 요단강을 건너는 저 배에 오를 시간이 되었네.

자네, 요단강이 왜 요단강인 줄 아는가? 하느님께서 예비하신 약속의 땅, 요단강 건너의 저 천국에서 주님은 우리더러 “수고했으이, 어서 와”라고 두 팔 벌려 부르시건만, 타고난 미련퉁이인 우리들은 “아뇨, 아뇨! 주님, 아직은 아니에요. 요다음에, 요다음에 건널게요.” 하며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억지를 부리니, ‘요다음 강’이 ‘요단강’이 된 것이라네.

마지막 인사를 실없는 농담으로 시작하는 이 철없는 처남을 용서하시게.

당신은 일찍이 이 땅에 성리학을 받아들인 순흥 안씨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의 후예로 아버지 안승환 님과 어머니 진재남 님의 4남 2녀의 막내로 남원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성장하였네.

어쩌면 늦둥이로 태어나 여러 형제에게는 언제나 마음 한구석이 짠한 안쓰러운 존재였는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당신은 의젓하고 꿋꿋하게 자라 자수성가(自手成家)를 이룬 가문의 보배요 자랑스러운 동생으로 살아온 거로 아네.

그리고 이제 와 처음 하는 말이지만 당신이 우리 집 막내 사위로 찾아와줘 진정 고맙게 생각하네. 동갑내기 부부로 가장 예쁘고 똑똑한 우리 막내를 낚아챘으니 하늘이 정한 그 인연에 감사할 따름이네.

돌이켜 보건대 환갑도 못 넘긴 짧은 생애 속에서도 당신은 언제 어디서나 위로는 예의 바르고 좌우 옆으로는 친절하고 아래로는 자상했기에, 진정 봄날의 햇살처럼 따사로운 사람-다정다감(多情多感)의 본보기로 살았네.

한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마감하기가 힘든 시대라 당신도 몇 번 직장을 옮겼지만, 당신은 늘 화제가 풍부하고 아이디어가 넘치는 재능 있는 사람으로 어디서든 조직의 활력소로 그 역할을 다하였네. 그래서 나는 늘 당신이 그 타고난 끼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언론계나 방송계에 종사하기를 바랐지만, 당신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한국장학재단’을 마지막 직장으로 정하였지.

어려운 현실에 부대끼는 젊은이들을 만나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며 그들의 미래를 열어주는 장학사업에 나름의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며 열(熱)과 성(誠)을 다해 근무하였네. 지방화 시대를 맞아 본부가 대구에 내려가는 바람에 주말 부부로 생활하면서도 그 불편과 외로움을 꿋꿋이 견디며 씩씩하게 살아왔었네.

공무원 아닌 공무원으로 정세의 부침에 따라 정치색이 전혀 다른 수장(首長)들을 번갈아 모셔야 하는 그 고충을 내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당신은 단 한 번도 그런 내색을 한 적이 없었네. 아랫사람으로서 예를 다하고 맡은 바 직분에 충실하며, 누구 앞에서나 당당했기에 ‘겸손하되 결코 비굴하지 않은’-‘겸허(謙虛)와 자존(自尊)’을 동시에 지닌 진정한 공직자였네.

아마 2년 전 이맘때였지. 몇 개월 지속된 두통 끝에 병원을 찾아 정밀검사를 했더니 급성 뇌종양 그것도 수술조차 어렵다는 악성이라고 했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당신은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일상을 보내며 남은 생을 정리하겠다고 참으로 담담하게 말했었지. 그대로 두면 3개월을 넘길 수 없다는데 어찌 두고만 볼 수 있단 말인가. 딸 바보인 약점을 이용한 우리들의 공세에 당신은 백기를 들고 순순히 수술대에 올랐고, 이후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재활 치료에 이어 항암 치료까지 꿋꿋하게 견뎌냈지.

그러나 너무나 깊숙이 박혀 있어 제거가 불가능했던 작은 암세포가 남아 있었고 결국 이놈이 준동하여 퍼져 나갔으며 점차 언어와 사고에까지 장애가 오고 결국 오늘에 이르게 되었네.-지나온 이 모든 과정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우리의 영혼이 육신을 벗어날 수 없다’는 영육(靈肉) 간의 조건과 그 한계가 아니었을까….

허섭(배움의공동체 ‘학사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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