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중구 ‘쪽방촌’ 인근 고시원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쪽방 주민’ 남모(61) 씨의 방에 약 봉투와 의료용품, 세간살이 등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회현역 인근 고시원에 ‘경고장’
건물주 리모델링 이유 운영중지
거동불편 거주자 건강악화 우려
글·사진=노지운 기자 erased@munhwa.com
“이 뜨거운 날에 거리에 나앉게 생겼습니다. 제 삶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서울 낮 최고기온이 35도로 올라 폭염특보가 내렸던 19일. 서울의 대표적 ‘쪽방촌’ 중 하나인 중구 회현역 인근 A 고시원의 문과 벽 곳곳에는 “20일 이후부터는 단전, 단수, 가스 중지됩니다”라는 서늘한 ‘경고장’이 붙어 있었다. 지난달 25일 건물주가 건물 철거 및 리모델링을 이유로 고시원 운영을 중지하겠다며 붙인 안내문이다. 총 40개 실로 이뤄진 이 고시원에는 쪽방상담소가 지정한 10명의 ‘쪽방 주민’들이 살고 있다. 거동이 불편하고 건강이 좋지 않은 거주자들에게 무료 급식 등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건물주는 거주자들에게 한 달분 임대료를 면제해 주는 대신 퇴거에 불응할 경우 폐문까지 하겠다고 경고한 상황이다. 하지만 ‘퇴거 시한’ 하루 전인 이날까지도 이곳 쪽방 주민들은 이사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성인 남성이 다리도 제대로 뻗을 수 없는 1.5평 남짓의 작은 방이지만, 이들에게는 소중한 보금자리기 때문이다. 곽모(74) 씨는 “지난달 아무런 설명 없이 안내문이 붙었고, 이달부터는 세제와 부식이 끊겼고 쌀도 없다”며 “아픈 환자도 있는데 한 달 만에 나가라 하니 주저앉아 울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10년째 이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다는 남모(61) 씨는 만성 신부전증으로 투석을 받고 있다고 했다. 반년 전부터는 합병증으로 다리 양쪽 모두 괴사돼 거동도 어렵다. 남 씨의 좁은 방(사진)에는 사계절 옷과 각종 세간살이, 약 봉투와 의료용품이 쌓여 있었다. 남 씨는 “옆방 주민이 가져다주는 밥으로 하루 한 끼씩 먹으며 버티고 있다”며 “전기와 수도가 끊기더라도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4년 전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크게 다쳐 거동이 어려운 장모(74) 씨도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거냐”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2024홈리스주거팀’은 20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 고시원의 퇴거 요구는 위법”이라며 서울시의 개입을 촉구했다. 단체 관계자는 “주택임대차보호법 등에 따라 최소한 6개월 전에는 이사할 것을 고지해야 한다”며 “당장 이사가 어려운 데다 건강이 좋지 않은 주민들이 거리로 나가게 되면 건강 상태가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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