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력’ 지원 강화 급하다[시평]

이혁재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의대 증원 단기적 이공계 영향
외환위기 때 조기 퇴직 후유증
정상화 때까지 인력 대책 중요

정부 지원은 취약점 보완 집중
반도체 시설 확충 지원하면서
기술 인력 붙잡을 혜택 늘려야

최근 의과대학 정원 확대 문제로 정부와 의학계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이 상황을 지켜보는 대다수의 공과대학 교수는, 의대 정원 증원에 따라 우수 학생들이 의대로 진학하게 되면 공대로 진학할 학생들이 줄어들 것으로 우려한다. 반면, 장기적으로는 공대 입시에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는 교수들도 있다. 다만, 당분간 이공계에 입학하는 우수한 학생들의 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며, 이 기간에 산업체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지가 현재 공대에 주어진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대학에 입학하던 1980년대만 해도 서울대 공대의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과 및 제어계측공학과 등의 입시 커트라인이 서울대 의예과보다 더 높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사태가 발생하고 이공계 출신들이 일찍 퇴직하는 경우가 발생한 이후로 보다 안정적인 의약계의 인기가 높아지고, 이공계의 인기는 떨어지게 됐다. 이러한 이공계 외면이 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는 인력난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인력난을 가중시키는 또 다른 원인으로, 우리 기업에서 재직하던 인력들이 해외로 이직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서 3위의 경쟁력을 가졌던 미국 마이크론이 최근 한국 기업들을 따라잡게 된 것도 우리 인력이 많이 이직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반도체 업계에서는 판단하고 있다. 국내 기업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주는 해외 기업으로의 이직을 막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정부에서도 부족한 반도체 인력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의 반도체학과 정원을 늘리는 등 다양한 인력 양성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대학 정원을 늘리더라도 우수 인력을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신설된 반도체학과에서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이러한 원인은, 상위권 학생들이 의약계로 몰리면서 상대적으로 이공계가 외면받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공계 외면이나 해외 이직과 같은 국가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근무하는 기술 인력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야만 할 것이다.

최근 우리 정부는 26조 원 규모의 ‘반도체 산업 종합 지원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저금리 대출, 투자세액 공제, 투자펀드 조성, 연구·개발(R&D) 지원, 그리고 전력 및 용수 등 인프라 구축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해외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불가피하다. 세계 여러 나라 정부에서는 더 큰 규모의 반도체 산업 지원책을 실행하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는 자국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원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반도체 설계 회사들은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반도체 생산 시설이 부족한 취약점이 있다. 따라서 자국 내 생산 시설 유치를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고, 추가적인 금융 지원이 이뤄진다. 반면, 반도체 설계 분야의 경우 세계적인 기업이 미국에 많다. 설계 회사들의 경쟁력은 우수한 인력으로부터 나오는데, 미국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높은 연봉과 좋은 근무 환경으로 전 세계의 많은 인력이 모여들기 때문에 미국 정부에서 대규모 예산 투입을 하지 않는다.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 지원의 방향을 우리 현실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반도체 생산 시설 확충을 우선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우리의 취약점인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인 대규모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반도체 산업 인력들에게 직접 혜택을 주는 지원을 고려해야 한다. 금융 지원, 세금 혜택 등을 반도체 기업에 근무하는 인력들에게 제공하거나, 인프라 구축도 이들을 위한 생활 시설에 지원할 수 있다. R&D 지원도 기업의 기술 개발 참여 인력들에게 직접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가능하다.

이러한 정부의 지원이 기업을 통해서 이뤄진다면, 해당 기업의 인력 확보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기업에 혜택을 준다는 비판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반도체 산업 정책이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관련 기술 인력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정부는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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