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100년 넘어설 K-믹스[뉴스와 시각]

김인구 문화부장

네이버웹툰의 모기업인 웹툰엔터테인먼트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하면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웹툰으로 나스닥을 뚫다니…. 개장가가 공모가보다 10%가량 높게 솟으면서 흥행몰이에도 성공했다. 이를 통해 웹툰엔터테인먼트는 약 3억1500만 달러(약 4400억 원)를 조달했고, 기업 가치는 29억 달러(4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웹툰과 친하지 않은 5060 세대는 아마도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과거 궁핍의 상징이었던 만화의 가치가 4조 원이라고? 이제는 젊은 웹툰 작가가 강남의 빌딩을 사고, 럭셔리 스포츠카를 타는 시대다. 웹툰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소속 창작자 가운데 수익 상위 톱100 작가의 지난해 연평균 수익이 100만 달러(13억8000만 원)를 돌파했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 직업 톱10에 웹툰 작가가 빠지지 않는다. 김준구 웹툰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웹툰엔터테인먼트를 아시아의 디즈니로 키우겠다. 이미 그 여정의 절반을 넘어섰다.”

미국의 세계적인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업 월트 디즈니 컴퍼니는 지난 1923년 설립돼 101년 역사를 자랑한다. 지난 100여 년간 디즈니는 빼어난 성장만큼이나 커다란 위기를 겪었다. 첫 번째는 창업자 월트 디즈니의 사망 후 경영진의 무사안일주의로 침몰해가던 1984년이다. 마이클 아이스너가 새로운 CEO로 부임해 과감한 인수·합병으로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변신했다. 두 번째는 아이스너 CEO가 이사회와 불화를 빚었던 2005년. 이번엔 밥 아이거가 새 CEO로 부임해 2006년 픽사, 2009년 마블코믹스, 2012년 ‘스타워즈’의 루카스필름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규모를 더욱 키웠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영화 개봉이 연기되고 테마파크 사업이 중단되면서 지독한 위기에 빠졌을 때 디즈니+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게임 사업 등을 개척하면서 다시 도약했다.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가 나타났고, 해법은 과감한 투자와 끊임없는 콘텐츠의 개발이었다. ‘겨울왕국’의 엘사, ‘어벤져스’의 아이언맨, ‘스타워즈’의 제다이 등 뇌리에 박제되다시피 한 인기 캐릭터의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이쯤 되면 절로 답이 나오는 것 같다. 지난 20년을 헤쳐온 K-웹툰이 앞으로 10년, 100년을 바라보며 가야 할 길 말이다. 우리에겐 밥 아이거 대신 김준구가 있다. 그 자신이 창작자였던 월트 디즈니 대신 ‘공포의 외인구단’의 만화 1세대 이현세를 비롯해 ‘무빙’의 강풀, ‘미생’의 윤태호, 그리고 수천 명의 유망주가 있다. 이들의 생각과 전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웹툰 종주국으로 이번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는 것, 시스템을 구조화하고 캐릭터(IP)를 축적해야 한다는 것. 디즈니가 지난 100년간 분투해온 일과 같다. 다만, 시대와 환경이 다르니 그냥 따라 하는 것만으론 부족할 터. K-웹툰뿐 아니라 K-팝, K-무비, K-뷰티, K-푸드 등을 믹스하는 게 좋을 듯하다. K-웹툰을 근간으로 해서 다양한 K를 하나로 버무리거나 여러 가지로 분화시키는 방법 등이다. 디즈니는 100년이 걸렸지만, K-웹툰의 시간은 훨씬 빠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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