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정치 퇴출할 장치 만들어야 한다[포럼]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지난 1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유세 때 오른쪽 귀 부위에 총상을 입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5 대선의 공화당 후보로 공식 지명됐다. 이번 총격 사건과 관련, 미국 사법 당국은 암살 시도로 규정했다. 범행 동기를 더 조사해 봐야겠지만, 전문가들은 미국 사회에 팽배한 혐오정치와 자신의 의사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표출하는 정치 양극화가 이번 테러를 초래한 것으로 진단한다.

피격 후 트럼프는 “이런 일이 미국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지만, 예견됐던 일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외교협회(CFR)는 지난 1월 4일 제출한 ‘2024년 예방해야 할 위협 우선순위’ 보고서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위협으로 ‘정치폭력’을 꼽았다. 보고서는 ‘올해 대선을 전후해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가 국내 테러와 정치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테러의 요인은 많겠지만, 상대 진영을 악마화·적대화하는 정치인들의 입과 혐오정치로 보는 게 적절하다. 젠더·이민자·소수자 정책을 놓고 반목하던 워싱턴 정치는 2016년 트럼프 등장 이후 더 자극적 언사가 일상화했다. 막말 정치의 한 축인 트럼프가 총격을 받았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이번 사건은 정치 양극화와 혐오정치를 조장한 장본인이 정치 테러의 피해자가 됐다는 점에서, 또 ‘자업자득의 부메랑 효과’를 입증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 크다. 즉, 정치권이 뿌린 혐오정치가 부메랑이 돼 테러와 폭력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성찰적이며 교훈적이다.

우리나라의 정치 양극화도 위험수위에 있다. 2022년 퓨리서치센터 조사를 보면, 전 세계 주요 19개국 중 정당 지지자들 간 갈등이 가장 심한 나라는 2위가 미국, 1위가 한국이다. 우리의 정치 양극화가 위험한 만큼, 혐오정치도 심각하다. 사회관계망(SNS)·유튜브 등에선 상대 진영이나 뜻이 다른 정치인에 대한 폭력·비하성 글과 영상이 넘쳐난다. 지난 4·10 총선을 앞두고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피습, 원희룡 총선 후보 후원회장 이천수 씨 드릴 협박 사건까지 일어났다.

총선 이후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는 혐오정치는 최악이다. 이른바 ‘개딸’이라는 강성 지지층에 장악된 민주당은 ‘이재명 사법 리스크’에 대한 방탄으로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태도로 ‘대통령 탄핵’ ‘검수완박 시즌2’ 등 입법폭주를 강행한다. 대통령과 여당 역시 국정 기조와 수직적인 당정관계를 바꾸지 않은 채 거부권을 남발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정치권이 극단적 언동으로 강성 지지층을 자극해 정치적 양극화를 조장하는 행태는 공통적이다. 결국, 상대를 경쟁자 아닌 타도할 적으로 규정하고, 혐오를 퍼붓는 행태는 정치 테러의 자양분이 될 수밖에 없다. 강성 지지층을 선동하며 혐오정치를 조장하는 정치인들은 자신이 정치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강력한 예방책이 필요하다. 차제에 여야는 혐오 표현과 증오 발언을 일삼는 정치인을 퇴출하기 위한 ‘공천 배제 방안’을 내놔야 한다. 관건은, 증오와 혐오의 언어를 어떤 식으로 객관화·계량화해 공천 심사에서 페널티를 줄 것인가이다. 국회 의사록이나 언론, 유튜브에 공개된 막말 등의 횟수나 빈도를 계산하는 등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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