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에도 치적 홍보 앞선 中[뉴스와 시각]

박세희 베이징 특파원

중국에서 ‘7하8상’이라 불리는 7월 하순, 8월 초순은 장마 대응 특별 기간이다. 올해는 이보다 더 일찍부터 남부 지방에 폭우가 쏟아져 피해가 속출했다.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인 후난(湖南)성 둥팅(洞庭)호의 제방이 무너져 내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중국 관영 매체들의 보도는 의아함을 자아냈다. 언론들이 집중적으로 보도한 것은 제방 복구 현장이었다. 둥팅호 제방 220m 구간이 무너진 지 사흘 뒤인 8일 밤 중국 관영 CCTV는 제방 복구 현장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TV 속 둥팅호 제방 위에는 수십 대의 배수 차량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고 연결된 펌프와 호스를 통해 제방 안쪽의 물을 밖으로 뽑아냈다. 이날 밤 마지막 돌로 제방 복구 작업이 완료되자 100여 명의 대원은 갖가지 붉은색 깃발을 치켜들고 환호했다. CCTV 아나운서는 “원래 계획보다 열 몇 시간 앞당겨 제방 복구를 완료했다”고 흥분된 목소리로 전했다. 제방이 무너진 뒤 당시 타지키스탄을 국빈방문 중이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주민 생명과 재산 보호에 만전을 다하라고 긴급 지시를 내렸는데, 시 주석의 지시 이후 불과 77시간 만에 제방 복구를 완료한 것이라는 내용이 전해졌다. 제방 복구가 완료된 지 일주일이 넘게 지난 지금도 각종 인터넷 매체에는 당시 긴박했던 복구 상황과 대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당시 대원들을 위해 현장에서 우육면을 끓여 대접했던 청년들의 이야기도 각종 미담과 섞여 전해졌다.

물론 대원들의 노력은 대단하고 대원들을 지원한 청년 자원봉사자들의 마음은 예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는 찜찜함은, 이번 재난의 핵심에 관한 이야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고 복구 성과만을 강조한 데에 있다. 제방이 무너진 원인에 대한 정확한 조사나 예방 조치, 이로 인한 이재민들의 피해 상황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사상자는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나 워낙 정보가 제한되어 있다 보니 정확한 통계가 맞느냐는 의문까지 일각에서 나온다. 중국 매체들의 이러한 행태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최근 중국에서 발생한 미국인 교수들에 대한 흉기 공격, 일본인 모자에 대한 테러 역시 해외 언론에 보도됐음에도 이에 대한 중국 외교부의 공식 입장만 건조하게 전하는 게 중국 언론들이다. 중국공산당과 시 주석 찬양 일색의 내용만 보도되고 중국에 좋지 않은 내용은 아예 숨기는 건 여기선 예삿일이다.

하지만 재난 상황에서까지 당을 찬양하고 정부의 대응만 칭찬하는 일은 지나치다. 일부 중국 국민의 반응도 싸늘하다. 제방 복구 현장을 담은 SNS 게시글에는 ‘재난 현장에서 깃발이라니 말이 되느냐’ ‘이재민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는 왜 알려주지 않느냐’ 등의 댓글이 올라왔다. 최근 만난 한 중국인 지인은 “TV나 신문에서 점점 북한을 떠올리게 하는 보도들이 늘어간다”고 푸념했다. 그러나 이번 제방 복구 보도에 대한 댓글 대부분은 ‘역시 중국의 속도는 대단하다’ ‘제방 위 붉은 깃발이 유난히 아름다워 보인다’ 등 애국적 내용이라는 점을 보면 당국의 언론 통제 노력이 빛을 발하는 듯해 더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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