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집권하든 美 산업정책 강해진다[시평]

김도훈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前 산업연구원장

자유무역 외치던 미국 급선회
바이든은 첨단 산업 투자 강요
트럼프 자국우선주의 더 심각

중국 등 주요국 경제정책 전환
한국 번영 토대는 글로벌 시장
정교한 산업-통상정책 세울 때

정부의 힘으로 특정 산업을 육성하려는 산업정책이 부활하고 있다. 그것도 산업정책을 펼치는 나라들을 비판하며 자유무역을 외쳐 오던 미국이 주도하는 것이 더욱 놀랍다. 차기 미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실현하기 위해 대통령 재임 당시 역점을 두고 추진한 핵심 경제정책도 차세대 주력 제조업들을 다시 미국으로 가져가려는 산업정책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기억한다. 그가 다시 집권한다면 미국이 이런 산업정책을 더욱 강화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지만 미국 경제의 공급망을 책임져야 할 핵심 산업으로 반도체·2차전지·바이오·희토류 등을 지정하면서 반도체와 2차전지 등에서 강한 경쟁력을 가진 한국과 대만의 주요 기업들에 미국으로의 투자를 강요하다시피 하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한 대통령은 오히려 조 바이든이다. 바이든은 2021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을 초청해 가진 정상회담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맨 먼저 그 자리에 참석한 한국 기업 총수들을 일일이 거명해 일어서게 하면서 자신이 추구한 한·미 외교적 성과가 바로 이들이 미국으로 투자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미국민은 물론 세계인에게 애써 알렸다. 트럼프든 바이든이든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미국이 산업정책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임은 기정사실인 셈이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이른바 자유시장경제를 기치로 내세우면서 세계 경제 시스템을 자유무역주의로 이끈 나라 아닌가? 필자는 1990년대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근무하는 동안 이 기구의 중요한 정책 논의 분야 중 하나인 산업과학기술국 주요 회의에 미국이 아예 대표를 파견하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랐다. 즉, 미국은 산업과 과학기술을 정부가 주도해서 발전시키려는 것은 선진국들이 추구해선 안 되는 정책이라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그런 논의를 하는 자리 자체를 아예 외면했다.

그런 미국이 자유무역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세계무역기구(WTO)를 무력화하고, 힘들여 추진해 오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는가 하면, 그렇게도 비난하던 특정국의 특정 상품을 타깃으로 하여 관세를 대폭 올리는 조치를 서슴지 않는다. 그뿐인가? 이른바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명목으로 도입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는 전기자동차 등에 자국 생산 2차전지를 사용하는 기업에 대해 지원하겠다는, WTO가 가장 금기시하는 조항을 도입하기도 하여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을 당황하게 만든 바 있다.

세계 경제의 자유무역 기조를 지키는 ‘큰 형님’ 역할을 해오던 미국의 태도가 이렇게 급선회하면서 그러잖아도 자국 산업 경쟁력 제고에 힘을 기울이고 싶었던 세계 각국은 앞다퉈 산업정책을 너도나도 강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개별 국가는 물론 EU 공동체 전체 차원에서 차세대 첨단 산업에 대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고, 일본도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2차전지 기업들 유치에 열을 올린다. 이 모든 선진국의 정책 기조 전환을 불러일으킨 원흉(?)이라고도 할 수 있는 중국은 지금까지의 국내 산업 육성과 수출 촉진이라는 정책 기조를 더욱 강화하는 한편, 이들 선진국이 차세대 첨단 산업 발전 과정에서 중국 산업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에 대항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동안 쌓아온 자금력과 인력을 총동원해 차세대 반도체·2차전지·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에서의 입지 유지를 위해 필사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지금까지 거론한 주요국들이 세계 무역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세계 경제는 바야흐로 자유무역의 기조를 버리고 산업정책을 부활시키는 시대로 성큼 접어들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무역 기조에 발맞추면서 미국 시장은 물론 자유무역으로 더욱 넓어진 세계 시장을 향해 수출을 확대해 나감으로써 오늘의 경제적 번영을 일궈 왔다. 그런 우리나라로서는 ‘산업정책 부활 기조’가 달갑지만은 않다. 더 나아가 우리 스스로의 산업정책과 통상정책의 기조를 어떻게 세워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깊어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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