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자립준비청년 ‘지킴이’… 그늘진 곳 비추는 ‘햇빛 리더십’[Leadership]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휠체어를 탄 채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 Leadership - 취임 6개월 맞은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

소아마비탓 지체장애 4급판정
사법시험 합격후 판사로 임용
“한명의 어려움도 외면 않을것”

한센인 시설 6개월간 7번 찾아
멘토링·긴급 생계지원금 지급
“북한이탈주민 고충도 살필것”

지난 10일로 취임 6개월을 맞은 유철환(64) 국민권익위원장은 역대 위원장들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따뜻한 리더십을 선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 위원장이 장애인, 자립준비청년 등 소외된 취약계층을 위한 현장을 누비며 이들의 권익 보호에 발 벗고 나서고 있는 것. 특히 유 위원장은 지난 6개월 동안 7차례 이상 한센인 시설을 찾았을 만큼 한센인의 권익 증진에 집중해 ‘한센인 지킴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유 위원장의 따뜻한 리더십은 성장배경과도 연관이 깊다. 그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4급 판정을 받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로 임용됐다. 장애인으로서 소외계층의 아픔을 누구보다 공감한다는 그는 재임 동안 정책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 발굴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유 위원장은 22일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올해 처음으로 지정된 ‘북한이탈주민의 날’(7월 14일)을 언급하면서 북한이탈주민의 권익 향상을 위해 권익위가 할 수 있는 일도 찾겠다고 밝혔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달 26일 경남 산청군 한센인 시설인 산청 성심원을 방문해 한센 어르신들을 격려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제공

◇‘한센인 지킴이’ 자처하는 유 위원장=유 위원장은 “권익위는 국민 단 한 명의 어려움도 가벼이 여기거나 외면하지 않고 해결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기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중에서도 우리 사회의 취약·소외계층으로 불리는 분들의 어려움은 더 신속하게,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일반적인 고충이나 애로사항으로도 취약계층에겐 회복할 수 없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유 위원장은 한 달에 한 번 이상꼴로 한센인 요양시설을 찾을 만큼 한센인의 권익 보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유 위원장은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았고 그 후유증으로 지체장애 4급의 장애인으로 평생을 살아왔다”며 “몸이 불편한 분들이 느낄 수 있는 어려움이라던가 아쉬움을 스스로 체감하면서 자연스럽게 소외계층이나 취약계층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 위원장은 제21회 한센인의 날을 맞아 지난 5월 17일 전남 고흥군에 있는 국립소록도병원, 여수시에 있는 한센인요양시설 ‘애양평안요양소’와 한센인 정착촌인 ‘도성마을’을 연달아 방문했다. 유 위원장은 연쇄 방문을 통해 2021년 권익위가 한센인 권익 보호 및 정착촌 환경·복지와 관련해 9개 중앙부처에 권고한 사항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꼼꼼히 살폈다. 지난 2월 7일엔 권익위 직원들이 모은 성금으로 농·축·수산물을 구매해 충북 청주시에 있는 한센인 요양시설 ‘에버그린사회복지센터’에 전달했다.

유 위원장은 한센인 정착촌의 오랜 숙제를 풀어내기도 했다. 전남 영광군의 한센인 정착촌 ‘영민마을’은 정부의 한센인 격리정책과 사회적 차별 속에 소외된 채 떠돌거나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퇴소한 한센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정착촌이다.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한센인들이 이곳에 정착할 수 있도록 토지를 무상 임대했다. 문제는 천주교 재단이 2020년 1월 외부 양돈사업자들에게 토지임대차 계약(2년 단위, 최장 15년)을 하면서 발생했다. 영민마을 거주민들은 축산 악취 피해에 밤잠을 설치며 시달려야 했다. 결국 정착민들은 지난해 7월 “마을 내 혼재된 양돈사업에 따른 축산 악취 문제를 해소해 달라”며 권익위에 집단민원을 제기했다.

권익위는 영광군에 내년부터 마을 환경 정비사업을 추진할 것을, 천주교 광주대교구엔 정비사업이 완료될 때까지 악취 개선 노력을 조건으로 축산 농가에 토지를 한시적으로 임대할 것을 권고했다. 그는 “한센인에겐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 노후화된 시설, 현실과 맞지 않는 지원정책과 규제 등 어려움이 많다”며 “재임 기간에 하나하나 조사해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 2월 28일 충북 청주시 청년뜨락5959에서 권익위의 이동형 민원창구 ‘달리는 국민신문고’에 참여한 지역 청년들과 대화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제공

◇사회 적응에 어려움 겪는 청년에도 관심…“北 현지 주민 권익도 살필 것”=유 위원장은 자립준비청년, 은둔 청년 등을 돕는 데에도 열정을 갖고 있다. 권익위는 지난달 7일 자립준비청년·은둔 청년과 함께 보건복지부·교육부·아동권리보장원·한국토지주택공사(LH)·사회적고립가구지원센터 등을 한데 모아 고충 청취 자리를 마련했다. 한 참석자는 “아르바이트로 인한 근로소득 발생 시, 생계수당이 줄어 일하고 싶은 의욕이 사라지고 생계수당만으로 지내고 싶어진다”며 평소 느꼈던 고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또 권익위는 5월 29일 한밭대, 5월 30일 연세대·부산대를 찾아가 20·30대 청년들의 고충을 듣는 ‘응답하라 2024 청춘신문고’를 운영했다. 학생들은 축제 행사장에 마련돼 있는 ‘국민신문고’를 친 후 현재 겪고 있는 고민이나 정부에 바라는 희망 등을 털어놨다. 권익위는 즉시 해결이 가능한 사안은 학교 측에 전달했으며, 즉시 해결이 어려운 고민은 추후 관계기관 협의 등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학생·청년들을 향한 유 위원장의 따뜻한 관심은 학교법인 문화학원·삼일학원 이사장을 역임한 그의 경력에 기초한다. 그는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자립준비청년이나 복지 사각지대의 위기가정을 위해 관계기관과의 업무협약을 통해 멘토링, 법률상담 및 긴급 생계지원금 지급 등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은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가정위탁 등의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 이후 보호가 종료돼 홀로서기에 나선 청년을 의미한다. 복지부가 보호 종료 후 5년 이내 자립준비청년 503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2023 자립지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거주 문제(26.9%), 돈 부족(23.2%), 취업 정보 부족(17.9%), 돈 관리 지식 부족(7.2%), 외로움·심리적 부담(6.2%) 문제 등을 호소했다.

유 위원장은 ‘권익 구제’와 관련해 임기 중 이루고 싶은 바는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한센인에 대한 지원 문제와 자립준비청년·은둔형 외톨이 청년의 사회 적응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난 14일 제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념식이 있었는데, 최근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지원 방안이나 고충 해소 방안도 살펴보고 있으며, 더 나아가 북한 현지 주민들의 권익을 살피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판사 시절도 ‘약자 대변’… 국가 가혹행위 피해자에 위자료 지급 판결

■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은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은 소아마비로 입은 장애를 딛고 법조인이 된 뒤 사회적 약자 대변에 힘쓰고 있다. 어릴 적 법조인이 되기로 한 것도 자신과 같은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돕기 위함이었다.

유 위원장은 1960년 충남 당진 출생으로 동성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유아기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를 저는 장애를 입어 지체장애 4등급 판정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인 그는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로 임용됐다. 2006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로 일할 땐 검찰 조사를 받다가 수사관들로부터 가혹 행위를 당한 피해자에게 국가와 검사가 공동으로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1988년 전주지법 판사로 근무했을 때는 사법부 독립과 민주화를 위한 서명운동에 참여해 이른바 ‘서명 판사’로 불렸다. 22년간 판사로 재직한 그는 2007년부턴 변호사로 활동해왔다. 권익위원장으로 임명되기 전까진 서울 중구 선거관리위원장, 권익위 중앙행정심판위원 등으로 일했다.

유 위원장은 지난 1월 권익위원장에 임명됐다. 그는 취임식에서 “우리 사회의 불우한 이웃에 대해 몸소 찾아가는 권익위를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이 직을 맡게 됐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부친은 8·9·12대 국회의원을 지낸 유제연(90) 전 신민당 사무총장이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정치판에 뛰어든 그는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2017년 대선 당시에는 국민의당 안철수 캠프에서 인권특별위원장을 맡았다. 2019년에는 자유한국당에 입당, 충남도당 부위원장 겸 법률지원단장을 역임했다.

△충남 당진 △서울대 법학과 △사법시험 24회 △전주지방법원 판사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 △법무법인 로하나 대표변호사

권승현 기자 ktop@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