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지자 금융정책의 후환[뉴스와 시각]

임대환 경제부 부장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이른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통화정책과 금융 규제 간의 부조화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은 경기 부양을 위해 저금리 정책을 시행했다. 저금리에 따른 대출 증가와 자산 가격 상승 현상이 나타났지만, 금융 당국은 부동산 투자 규제를 강화하지 않았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거품이 끼기 시작했고, 1990년대 초반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서 자산 가격이 급락했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계속 낮췄다. 늘어나는 대출에 대한 제동은 없었다.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에게도 대출이 이뤄졌고,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확대는 미국 금융시장에 독이 됐다. 부동산 버블이 형성됐고, 주택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다가 버블이 꺼졌다. 미국 금융기관들의 부실은 전 세계의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금융 규제의 부적절한 완화 또는 강화는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해친다. 금융정책의 일관성과 조화는 경제 안정 유지에 필수적이며, 그래야만 금융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초 7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적용을 시행 일주일을 앞두고 9월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스트레스 DSR은 DSR을 산정할 때 잠재적인 금리 인상 폭(스트레스 금리)을 적용하는 것으로, 급증하는 가계대출을 제어하기 위한 조치다. 금융 당국은 제도 시행 연기 이유로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2단계 규제에는 제2금융권 대출이 포함되는데, 자금이 필요한 취약계층이 여전히 많은 상황에서 2금융권을 많이 이용하는 서민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일리 있는 이유다. 그러나 ‘정책 혼선’에 따른 부작용은 곧바로 나타났다. 2단계 규제 시행 전에 대출을 받아놓고 보자는 불안 심리가 확산하면서,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이 이달 들어 불과 4일 만에 2조2000억 원가량 늘어나는 등 대출이 폭증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연기가 ‘빚내서 집을 사라’는 신호로 비쳐 대출 수요를 자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계대출 문제가 심각해지자 규제 시행을 연기했던 금융 당국이 이번에는 5대 은행 등을 상대로 현장지도에 나섰다.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을 갑자기 연기해 가계대출 증가를 부채질해 놓고, 그 책임을 은행에 전가한다는 오해를 받을 만하다.

시장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룰’이 필요하며, 공정한 룰은 정부의 투명하고 일관된 정책에서 비롯된다. 정부가 제시한 약속과 일정을 스스로 깨트리는 행위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악재다.

통화주의 경제학의 대표적 인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일관되고 예측 가능한 금융정책은 더 나은 경제 결과를 가져온다”고 했다. 신임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금융 당국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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