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式 결단 필요한 한국 정치인들[포럼]

정진영 경희대 국제학과 명예교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선을 100여 일 앞둔 21일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당내 경선을 통해 사실상 후보로 확정된 상태에서 형식적 지명 절차를 목전에 두고 내린 결단이기에 민주당의 대선 후보직에서 사퇴한 것과 마찬가지다.

바이든이 왜 사퇴를 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지난달 27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의 TV토론 이후 민주당 내부와 기부자들 사이에서 후보 사퇴 압박이 커져 왔다. 미국 유권자의 70% 이상이 바이든의 건강 상태가 차기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특히, 지난 13일에 있었던 트럼프 피격 이후에는 지지율 격차가 더 벌어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바이든이 사퇴한 것은 사면초가에 빠져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당내 경선 승리를 통해 사실상 후보로 확정된 현직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자기보다는 다른 후보가 나서는 것이 대선에서의 민주당 승리를 위해, 그리고 미국 민주주의와 국제 평화를 위해 조금이라도 낫다고 스스로 인정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는 후보 사퇴 성명에서, 자신의 후보직 사퇴가 “나의 정당(민주당)과 조국(미국)을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밝혔다.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당과 국가의 이익을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를 고민한 결과임이 분명하다.

미국 역사상 현직 대통령이 경선을 포기한 적은 이전에도 있었다. 1952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그랬고, 1968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그랬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경선 초기에 포기했다. 그런데 바이든은 경선에서 승리한 이후에 후보직을 사퇴한 것이다. 이 차이가 11·5 미 대선 결과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앞의 두 경우 모두 민주당 대통령들이었고, 그들을 대신해서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인사들은 모두 본선에서 공화당 후보에게 패했다.

역사가 되풀이되기라도 하듯, 이번에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관심을 두는 것은 바이든 대통령의 용기 있는 결단이다. 큰 정치인이 보여준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자세다. 그래서 부럽다. 나라야 어떻게 되든, 자기가 속한 정당이 어떻게 되든 편 갈라서 서로 죽일 듯 싸우는 우리의 정치 현실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 2년이 지난 지금도 어설프고 서툴러 보인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뭔가 해 보려고 애를 쓰는 것 같지만, 뭐가 잘못된 줄도 모르고 경험으로부터 배울 줄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참모들과 수평적인 토론을 하고, 국민과 가까이하려고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긴 줄 알았는데, 들리는 말은 대통령의 격노와 고집불통이다. 나라가 어떻게 될지 걱정된다. 과감한 변화를 위한 용기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은 오로지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에 급급한 듯하다. 이 대표의 이른바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하기 전에 대선이 있도록 사법 절차를 지연시키거나 대통령을 탄핵해서 대선을 앞당겨야 한다고 생각하며 움직이는 것 같다. 그러나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윤 대통령을 공격하고 탄핵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자기를 버리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큰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바이든의 용기와 결단이 부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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