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ETF 거래대금 3위… ‘모험’ 아닌 ‘여행’ 처럼 투자하라[기고]

■ 기고 - 김찬영 KB자산운용 상장지수펀드(ETF)사업본부장

최근 덴마크 정부가 너무 매워서 어린이 등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불닭볶음면을 리콜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불닭볶음면의 전 세계적 뜨거운 인기에 기름을 붓는 격의 일이 있었다. 그뿐 아니라 증권업계에서는 이러한 불닭볶음면의 해외 돌풍에 힘입어 무려 30년 만에 삼양식품의 시가총액이 농심을 넘어서는 역사적인 일도 있었다.

상장지수펀드(ETF)라는 투자의 도구가 빠르게 대중화되면서, 점점 더 라면과 같이 일상용품(commodity)화되고 있다. 치열한 라면 회사들의 경쟁처럼 ETF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ETF의 불닭볶음면을 만들어 내겠다는 각오로 어느 때보다 뜨거운 차별화 경쟁을 벌이고 있다.

ETF의 경우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500이나 코스피200과 같이 주로 특정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전략을 취하다 보니, 실제로 라면이나 치약 등과 같이 상품 간 차별화가 쉽지 않고, 차별화를 위해서는 고유의 브랜드로 투자자에게 각인시키거나, 혹은 철저히 더 투자자의 입맛에 맞는 맛이 포함된 지수를 기반으로 한 ETF를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다 보니 최근 뜨거운 인공지능(AI) 그리고 반도체 투자 열풍에 힘입어 엔비디아에 15% 이상 투자하는 ETF가 한국에만 23개 상장돼 있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 미국에 비해 ETF 시장 규모가 거의 백분의 일 수준이지만, ETF의 거래대금의 측면에서는 미국, 중국에 이어 전 세계 3위를 기록할 정도로 특히 개인투자자들의 ETF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나라다. 코스피 전체 시총에서 ETF가 차지하는 비중은 6.7%에 불과하지만, 거래대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4.7%에 달할 정도로 매매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기도 하다.

그러는 사이 펀드를 주식시장에 상장해서, 펀드와 주식의 장점을 모아 놓았다던 20세기 최고의 금융 발명품이라는 본연에 대한 찬사는 점점 더 희미해지고, 한국에서는 빠르게 사고파는 주식의 특성만이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 ETF 이전 펀드 투자에는 은행이나 증권회사 담당 직원의 설명이라도 있었지만, 이제 일상용품화되고 나서는 투자자들이 유튜브 검색을 통해 정보를 얻고 ETF를 선택하고 있다. ETF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에서 새로운 ETF를 내놓을 때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라면을 권하면서 건강을 논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튀기지 않은 면 등 건강한 라면을 표방하는 라면들이 지금껏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조리법 등 라면을 더 건강하게 즐기는 방법은 얼마든지 소개할 수 있다. ETF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 역시 투자자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더 자극적인 ETF에 집중하는 것보다 ETF를 통해 어떻게 더 건강하게 투자를 즐길 수 있는지에 대한, 결국 수익률의 대부분을 좌우하는 자산 배분을 포함한 투자자 교육에 이제는 더욱 집중해야 할 것이다. 특히 개인투자자들의 연금 계좌에서 ETF 투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상황 속에 이러한 건강함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개개인의 노후 연금에 대한 ETF 투자는 결코 안 되면 말고식의 모험이 아니라, 덴마크 같은 아주 먼 나라로의 아주 긴 인생의 여행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