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발전따라 재난 다양해지는데… 처벌 급급하느라 예방대책 뒷전”[현안 인터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양기근 한국재난관리학회 회장(원광대 소방행정학과 교수)이 23일 서울 중구 새문안로 문화일보에서 최근의 재난과 관련한 현안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백동현 기자

■ 한국재난관리학회장 양 기 근 교수

지도에 침수흔적도 표시하는 日, 집 구할때 가장 먼저 체크
배수시설 넘는 극한폭우 염두 ‘제2오송 참사’ 막아야
배터리 화재는 물만나면 격렬해져… ‘소화약제’ 개발 시급
클라우드 먹통사태는 디지털 재난… 변화 선제대응 필요

김윤림 기자, 정리=김군찬 기자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 2022년 이태원 압사 사고, 2023년 오송 지하차도 참사, 올해 6월 24일 화성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 그리고 장마철 물 폭탄을 쏟아붓는 극한 기후….

자연 또는 사회적 대형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 사회는 늘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귀 따갑게 들었다. 그러나 재난은 끊이지 않았고, 더 다양해진 양상으로 늘 우리 곁을 노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모든 재난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사회 변화상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끝없는 편리추구 또는 탐욕과 기술 발전이 합쳐져 삶이 나아지고 사회발전을 향해 나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거기까지였던 게다. 발전과 함께 우리가 더욱 세심히 챙겼어야 할 것들, 그리고 앞선 희생에서 배워야 할 것 등은 금세 까먹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1986년 자신의 저서 ‘위험사회(Risikogesellschaft, Risk Society)’에서 사회가 산업화로 발전할수록 위험과 그로 인한 불안이 증대되는 위험 사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위험 사회란 위험이 사회의 중심 현상이 되는 사회를 의미한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하고 변해도 재난은 ‘끝’이 아니라 ‘다변화’와 ‘반복’일 뿐이다. 그러나, 최대한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오직 인간의 몫이다.

양기근 한국재난관리학회 회장(원광대 소방행정학과 교수)은 23일 문화일보에서 진행된 현안인터뷰에서 지하고속도로 건설 같은 사회기반시설, 부동산에 대한 침수흔적도(圖), 지하 전기 충전소, 그리고 미래 성장산업 속에서의 대형 재난 발생 가능성 등 현재진행형에서부터 미래의 재난대비까지 여러 가지 의견과 쓴소리를 쏟아냈다.

―요즘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기습폭우에는 어떻게 대비하는 게 좋을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크게 보면 기후 위기, 즉 극한 기후인데, 강도가 갈수록 세지고 빨라져서 법과 제도 등이 이를 예측하거나 따라가지 못한다는 게 더욱 문제입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예·경보 시스템이 발전하고는 있지만 적절하게 따라갈 수 있을지는 걱정입니다. 지하고속도로도 건설 중인데, 과학기술적으로는 완벽하다고 하지만, 오송 지하차도 참사도 주변의 미호천 범람까지는 예측하지 못한 결과 아닙니까. 배수시설을 훨씬 뛰어넘는 극한폭우까지 염두에 두고 추진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파장이 있겠지만, 일본에선 침수흔적도가 일반에게 공개됩니다. 지도에다가 어느 정도 비가 오면 어디까지 찬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지요. 집 구할 때 가장 먼저 본다고 합니다. 이런 좋은 제도는 우리도 도입을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폭우 때뿐만 아니라, 모든 재난 조짐이 보일 때 최선의 대처 방법은 미리 대피하는 것입니다. 재산이 아깝다고 지키려고 하다가는 소중한 인명을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니까요. 한 박자 빠르게 위험을 인지하고, 인지했으면 주저 없이 바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것이 더 큰 재난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아리셀 공장 화재 대응에서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요.

“리튬 배터리 화재는 현재의 소화 약제 기술로는 대응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배터리 화재는 물과 반응하는 금수성(禁水性)을 갖고 있습니다. 물을 만났을 때 격렬하게 반응하는 속성이 있지요. 해서, 물로는 화재 진압이 어렵고, 열 폭증 현상까지 빚어져 진압이 어렵게 됩니다. 마른 모래로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선진국도 금수성 화재에 대해선 소화 약제를 개발하는 중입니다. 국가가 연구·개발(R&D) 예산을 통해 금수성 화재에 대한 보편성 있는 소화 약제를 개발하는 게 시급한 문제입니다. 아파트 등에 설치돼 있는 지하 전기 충전소도 지상 이전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화재가 나면 소방 대응이 늦어질 우려가 있어요. 또 외국인을 포함한 산업현장 인력에 대한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꼼꼼히 살펴 우리가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고, 재난 취약계층에 대한 안전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제4차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5년 주기)이 올해로 종료됩니다. 내년부터 새롭게 운영될 제5차 계획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돼야 할까요. 개선 방향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의 재난 및 안전 관리의 방향을 설정하는 최상위 종합 계획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문가가 이야기할 때 다른 계획들과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의 연계가 미흡하다, 이게 3차, 4차 계속 지적되는 부분인데요. 원인은 한마디로 우리나라 행정문화상의 문제가 아닐까, 이렇게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재난관리 최일선에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재난 대응 역량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개선 필요성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자치단체장의 재난관리 리더십, 전문성, 교육훈련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중 (재난관리에 대한) 단체장의 관심이 핵심입니다. 전문성은 공무원들과 관련된 얘기입니다. 중앙정부는 기능별 전문성 중심으로 편제돼 있지만 지방정부는 종합행정 성격을 띠고 있어요. 재난 등 특정한 분야에 전문성을 갖기 어렵지요. 시도와 중앙정부가 전문성을 지방정부에 지원하고 역량을 제고할 수 있는 여러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육훈련은 민방위 교육과 재난교육의 연계성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전문성을 갖춘 재난안전분야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는데 확충 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재난안전은 범위가 넓죠. 재난과 안전은 성격이 다릅니다. 안전은 평상시에 주무부처 업무를 통해서 해결하고 집행하면 되지만, 재난은 외부적 충격이 왔을 때 그 조직이나 지역사회 자원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것입니다. 평소 업무를 통해서 예방 관리하지만 외부 충격이 오면 범위를 넘어선 재난이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안전과 재난은 분리해서 접근해야 합니다.”

―해외선진재난방지시스템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우리나라도 재난관리 대응을 잘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재난관리 현장 능력은 최선진국 수준이지요. 그런데도 재난관리에는 끝이 없습니다. 미국에서 특히 배워야 할 점은 재난 이후의 대응입니다. 9·11, (2005년 발생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도, 발생하고 나면 무엇이 문제인지 1∼2년간 진단 및 원인 규명을 한 다음 제도적 개선점을 내놓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책임자 처벌에 집중돼 있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합니다. 근본적 문제를 찾고,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 마련은 흐지부지되기 일쑤고요. 재난관리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조직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재난관리분야 연구투자는 어느 정도인가요. 또 부족한 부분은 뭐라고 보시는지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료를 보면 올해 재난안전 R&D 예산은 1조8700억 원으로 지난해 2조2600억 원보다 오히려 4000억 원이 감액됐어요. 이는 정부의 R&D 전체예산이 지난해(31조1000억 원) 대비 올해(26조5000억 원) 줄어든 탓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 R&D 예산은 줄더라도, 재난안전 분야는 오히려 늘려야 한다고 봅니다. 앞으로의 기후위기와 복합 대형재난 가능성까지 감안하면 이에 대비한 R&D 예산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재난을 대하는 태도, 또는 준비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1차적으로, 재난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는 게 출발점입니다. 그래야만 많은 예산과 시간 투자에 동의할 수 있지요. 두 번째, 재난과 함께하는 삶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재난 취약계층에 대한 관심과 시설 확충, 제도개선이 가장 중요합니다.”

―재난과 관련해서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해 주시지요.

“재난관리에서 우리도 선진국에 와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멉니다. 재난대응 역량을 키우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재난도 복잡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원활한 차량통행을 위해 만드는 지하차도(오송), 인파가 몰려 발생하는 사고(이태원), 아리셀 공장화재(1차전지) 등 사회·산업 발전과 함께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리튬 화재가 발생하게 된 배터리 산업 성장의 이면에 있는, 다양한 재난이 배양되고 있는 산업적, 사회·문화적 측면들에 주목해 재난을 예방·대비하고 철저한 대응을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지금은 2차전지가 상용화되고 있고, 지난 19일(미국 현지시간)에 발생한 클라우드 기반의 글로벌 사이버 정전 사태는 디지털 재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난이 갖고 있는 단편만 볼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곳에서 재난이 발생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첨단 제4차 산업혁명이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이때 우리는 이런 변화에 얼마나 선제 대응하고 있는지, 심각하게 돌아보고 세밀한 대책을 서둘러야 할 때입니다.” 김윤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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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재 골든타임 7분…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 늘려야”

골든타임 확보하려면…
“소방차 등 특별 번호판 부착
차단기 자동통과시스템 필요”

“재난이 더욱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선 ‘골든타임’ 확보가 가장 중요합니다.”

양기근 한국재난관리학회장(원광대 소방행정학과 교수)은 23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재난현장에서의 골든타임 확보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재난은 관련 법(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에 따라 크게 자연재난과 인적재난으로 나뉘는데, 재난마다 설정된 골든타임은 다 다르다. 화재 현장의 경우 7분 내 도착해 화재 진압을 해야 하며 심정지 환자가 발생하면 4분 내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가 이뤄져야 한다. 양 교수는 “특히 도심 내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재난 중 하나인 화재의 경우 갈수록 교통량 증가 등 소방차의 신속 출동을 저해하는 요인이 많아지면서 사실상 골든타임을 지키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양 교수는 소방차 등 긴급차량의 빠르고 안전한 출동을 위해 일부 지역에서만 시범운영 중인 ‘긴급차량 우선신호(제어) 시스템’을 차량 통행량이 많은 구간이나 상습 차량 정체 교차로 등 전국 곳곳에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시스템은 긴급차량이 교차로에 접근 시 차량 위치와 방향을 자동으로 파악해 신속히 교차로를 통과할 수 있도록 녹색 신호를 우선 부여하는 방식으로 긴급차량의 출동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골든타임 확보를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히지만 시스템 전국 확산은 더딘 상황이다. 양 교수는 “소방과 달리 경찰에서는 교통 혼잡 등 이유로 시스템 확충에 신중한 입장”이라며 “소방은 경찰 등 관계기관과 ‘긴급자동차 출동 환경 개선 협의회’를 지속해서 운영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긴급자동차 자동 진출입시스템’ 구축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전용번호판(앞 세 자리 998·999)이 부착된 긴급차량이 상황 발생 시 무인 차단기 등에 막힘없이 자동으로 진입하도록 하는 시스템인데 아직 예산 문제 등으로 전국적으로 시행이 이뤄지지는 않는 실정이다. 양 교수는 “번호판 교체 전이라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협의해 관할 소방서의 소방차량을 등록, 언제든지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