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당할 수 있는 ‘국가폭력’… 써야 하는 이야기가 있어서 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백가흠 작가는 “문학은 질문”이라며 “괜찮니? 정말 괜찮을까? 계속 물어서 마침표를 물음표로 변화시키는 것이 문학의 가장 중요한 쓸모”라고 말했다. 박윤슬 기자

■ 소설·산문집 동시 출간 백가흠

산문 ‘왜 글은 쓴다고 해가지고’
어머니 타박을 책 제목으로 써
글 쓰느라 종종 뾰족해지기도

소설 ‘아콰마린’은 첫 추리장르
다뤄질 대로 다뤄졌다는 사건들
누군가는 여전히 망가진삶 살아

소설가 백가흠이 네 번째 장편소설과 두 번째 산문집으로 돌아왔다. 장편은 전작 이후 10년 만이다. 소설 ‘아콰마린’(은행나무)과 산문집 ‘왜 글은 쓴다고 해가지고’(난다)를 양손에 든 백 작가를 서울 중구 문화일보사에서 지난 23일 만났다. 계명대 문예창작과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백 작가이기에 학기와 원고 마감이 겹쳤을 것 같다는 걱정의 물음을 건넸다. 그는 “죽는 줄 알았다”며 “‘그러게 왜 책은 낸다고 해가지고!’ 하는 생각을 수십 수백 번 되뇌었다” 말하고 웃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번 산문집에는 문학에 대한 그의 생각이 담겼다. “책 제목은 어머니께서 가장 많이 하시던 타박이에요. 글 쓰느라 종종 뾰족해지기도 하고, 글을 써야 한다는 이유로 해외 이곳저곳을 다니느라 부모님 곁을 비우는 시간도 많았거든요.” 책 속을 가득 채워 답하고 있는 그 질문. “그래서 도대체 왜 쓰시는 거예요?” 묻자 멋쩍은 웃음 끝에 대답이 돌아왔다. “아직도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써야 하는 이야기가 있을 때 그저 씁니다.”

그는 등단 24년 만에 처음으로 써야 하는 이야기를 쓸 도구로서 ‘추리’ 장르를 선택해 도전했다. “해보지 않았던 장르라 소설의 전개부터 결말까지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는 소회는 그가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면서까지 써야만 했던 이야기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소설은 청계천에서 손톱에 ‘아콰마린’색 매니큐어가 칠해진 채 잘린 손이 괴상하게 뒤틀린 모습으로 발견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미제 사건 전담반’(미담반) 소속 경찰들이 잘린 손의 주인이 살아 있음을 알아내고 수사에 본격 돌입하지만 손의 주인은 피해감을 호소하기는커녕 계획이 있다는 듯 수사망을 무너뜨린다.

소설은 수사의 진행 상황과 미담반 소속 형사들의 숨겨진 과거사를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이를 통해 페이지를 넘길수록 신체를 잘라 공공장소에 전시하는 괴사건의 원인에도 숨겨진 과거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결국 독자들이 범인과 사건의 단서를 추적하며 소설을 읽는 동안 한국 사회를 살아가며 덮어두었던 불편한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니거든요. ‘근현대사’라고 이름 붙여도 여전히 어딘가에는 역사 교과서 속 사건으로 인해 망가진 삶을 ‘현재진행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죠.”

백 작가는 산문집에서도 ‘언제 어디서 내게 가해질 수도 있는 국가 폭력은 잠재되어 있는 트라우마’라며 ‘우리는 아무도 그 내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언급했다. 결국 그가 써야만 하는 이야기란 일전에 발표한 ‘조대리의 트렁크’(창비) 등에서도 선명히 다뤄진 국가 권력에 의한 폭력이며 정리되지 않는 근대사다. “누군가는 이미 다뤄질 대로 다뤄졌다 말할지도 모르죠. 여전히 뉴스를 장식하는 재심 판결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죠.”

등단 20주년을 넘기고 어느덧 오십 줄에 들어선 백 작가는 “어릴 적보다 글 자체는 잘 써져도 하루가 다르게 체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느낀다”며 “‘글쓰기는 엉덩이로 쓰는 일’이라던 황석영 선생님 이야기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쓰고 싶은 것이 많아서 조급하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러나 서두르기보다 제대로 정리하고 넘어가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이번 소설은 곧바로 후편을 준비하고 있어요. 등장인물들이 살아온 공통된 역사는 보여줬지만 개개인만의 고유한 역사는 보여주지 못했죠. 기대하며 읽어주시길 부탁드려요(웃음).”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