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분노를 낳는 사회[뉴스와 시각]

안진용 문화부 차장

“국회를 보면 다 ‘말병’이 걸린 것 같다. 악다구니와 저주와 욕설이 가득하다.” 소설가 김훈은 24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열린 신간 ‘허송세월’ 북토크에서 이같이 말하며 혀를 찼다. TV 뉴스의 단골 장면이다. 각종 현안을 두고 여야는 감정적 대립만 반복한다. 꼬집고 비아냥댄다. 왜 그럴까? 표면적 이유는 ‘분노’다. 서로 다른 이념에 사로잡힌 이들이 상대의 언행에 사사건건 화를 낸다. 그렇다면 그 분노의 원천은 무엇일까? ‘불안’이다. 여당은 정권을 유지하려 하고, 야당은 정권을 되찾으려 한다. 그 불확실성 속에서 느끼는 불안을 분노로 표출하는 셈이다.

이런 현상은 국회에 국한되지 않는다. ‘왜들 그리 다운돼 있어? 뭐가 문제야 say something’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K-팝 스타 지코의 ‘아무 노래’가 대중의 공감을 사듯, 주위를 둘러보면 대다수가 불안을 느끼고, 이를 분노로 귀결시킨다. 지난해 한국계 미국 감독 이성진이 연출한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비프(BEEF)’가 미국 최대 TV 시상식인 ‘에미상’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8관왕을 차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트 주차장에서 경적을 울렸다는 이유만으로 지구 끝까지 쫓아가 복수하고, 또 반격하는 두 주인공처럼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화가 나 있다. 대문호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니나’(1877)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비슷한 모습으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는 가르침은 15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유효하다.

현재 상영 중인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2’의 흥행은 이런 사회적 현상이 투영된 결과다. 2016년 개봉된 1편은 어린 여자아이 라일리의 머릿속에 사는 기쁨·슬픔·분노·까칠·소심이라는 5가지 감정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그리고 8년 만에 돌아온 속편에서 라일리는 사춘기를 맞았다. 질풍노도의 시기답게 불안·질투·따분·당황이라는 새로운 감정이 추가됐다. 여기서 사춘기 라일리를 지배하는 감정은 불안이다. 부모·친구·선배 등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불안을 느끼고 이는 분노로 표출된다.

25일까지 815만 관객을 모은 이 영화의 연령별 예매 분포를 보면 4050세대가 38.8%다. ‘전체 관람가’ 만화영화에 중년층이 몰리는 건 이례적이다. “자녀에게 보여주려다 내가 울었다”는 관람평이 속출한다. 숨겨놓은 마음을 들킨 셈이다. 세상에 나쁜 감정은 없다. 기쁨만이 전부는 아니다. 가족을 떠나보냈을 때, 즐거운 일을 찾기보다는 한바탕 목놓아 울어야 응어리가 풀린다. 불안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다만, 누군가는 그 불안을 웃음·눈물로 희석시키는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분노로 치환한다. 그 분노는 건드릴수록 커지는 이솝우화의 사과와 같다. 분노가 분노를 부르고 집단 분노는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다.

그래서 김 작가는 귀를 열라고 강조한다. “듣기가 바탕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들으면 상대방의 의중을 알게 된다. 따라서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불안도 도망간다. 이에 따라 분노도 조절 가능한 수준으로 작아진다. 귀는 2개고 입은 1개다. 적게 말하고 많이 들으라는 것이다. 원래 진리는 이처럼 뻔한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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