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아닌 나 위해… 말과 행동에 ‘자비 한 스푼’ 어떨까요? ”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서울 은평구 진관사 효림원에서 만난 혜주스님이 차담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스님은 진관사 명상센터장을 맡고 있다. 박윤슬 기자

■ ‘K-명상’ 보급 앞장서는… 진관사 명상센터장 혜주 스님

대학서 불교·유아교육 전공
스님 된 후 美 명상교육 박사
‘K-명상’의 세계화가 목표

“출가한지 20년이 넘어서야
조금은 여유롭고 편안해져
나에게 자비를 허했다는 뜻”

“고통의 시대를 지나고 있어
2030세대도 K - 명상 주목
대치동 학원서도 강연 요청”

“올해 출가 25년이에요. 20년이 넘어가서야 ‘마음이 중요하다’는 게 무엇인지, 그 의미가 확실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서울 은평구 진관사 명상센터장 혜주 스님(43)의 말이다. 10대에 출가해 동국대에서 불교·유아교육학을 전공했다. 정식 스님이 된 후엔 미국에서 명상교육학 박사를 받았다. 오랜 세월 수행하고 공부하며 타인의 마음을 살폈다. 그런데 이제야 마음이 중요하다니. 그만큼 ‘마음 다스리기’가 어렵다는 걸까. 아니면, 어떤 마음은 그 깊이가 범인과 전혀 다른 걸까. 둘 다 맞고, 둘 다 아닌 듯도 하여 그저 듣는다.

“자유롭고 싶었고, 지금도 그래요. 그런데 그동안 ‘자유로워야만 해!’하고 집착하진 않았는지…. 조금 여유롭고 편안하게, 나에게 자비를 허했다는 뜻입니다.”

최근 진관사 효림원에서 혜주 스님을 만났다. 그 말대로 여유와 편안, 자비가 넘치는 모습. 분명 잘 다스려진 마음의 결과물일 터, 범인의 마음도 어떻게 아름답게 빚을 수 있나 물었다. “일단 편안해야 합니다.” 스님이 강조하는 건 우선 자세다. 흔히 명상하면 꼿꼿하게 앉아 오래 버티는 걸 떠올리지만, 스님은 “몸이 편해야 호흡이 잘 되고, 마음 안팎의 것들을 알아차린다”고 했다. 자신에게 맞는 장소를 찾는 것도 요령이다. 익숙해지면 어디든 나만의 ‘명상 세계’가 된다. “내 마음 불편하면 다 지옥, 내 마음 편하면 다 극락이죠. 후자를 지향하는 게 명상이니,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훈련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진관사 명상센터장 혜주스님. 박윤슬 기자

혜주 스님은 동국대 아동청소년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조계종 ‘선명상 보급 프로젝트’의 정예 요원이다. 매주 총무원장 진우 스님을 필두로 관련 회의가 열리는데, 그 중 유일한 비구니 스님이다. 이 사업은 2600년 한국 불교 핵심 수련법인 선명상을 ‘K-명상’으로 명명, 세계화를 목표로 한다. 미국의 존 카밧진이 명상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한 후, 세계적으로 명상열풍이 불고 있는데, 스님은 “이미 우리가 오랜 시간 해온 것을 역수입한 격”이라면서 “카밧진이 대중화에 큰 역할을 했고, 이제 선명상이 또 다른 전기를 만들 때”라고 말했다.

스님은 최근 2030을 중심으로 불교 철학이 주목받고, 명상도 인기인 것에 대해 “시대가 명상을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한마디로 ‘고통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명상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 스님은 공교육과 명상의 만남을 줄곧 주장해왔다. 이는 스님의 논문 ‘명상의 교육콘텐츠로서의 의미 : 교육적 효과에 대한 미국 문헌 분석을 중심으로’(2017)에도 잘 나와 있다. 1996∼2016년 미국에서 발표된 명상 관련 논문을 종합·분석한 논문은 미국이 공교육의 한계를 명상으로 보완하면서, “교사와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감소하고 교실 분위기가 평화로워졌다”는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스님은 미국의 명상 기반 교육 프로그램 ‘See Learning(시 러닝·소셜 이모셔널 에티컬 러닝)’을 국내 실정에 맞춰 적용하는 연구도 계속하고 있다. 얼마 전 이탈리아 파도바대에서 열린 국제명상학회에서 관련 발표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학교로 복귀한 초등학생들에게 이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3∼4개월 후 조사한 결과 정서 조절과 공감 능력이 월등히 높아졌다는 것. 스님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다양한 기관에서 강연 요청도 늘었다. 스님은 “대치동 학원에서도 연락이 와서 깜짝 놀랐다”고 고백했다. 입시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이 스트레스로 청소년 정신상담소 등을 찾는다더니, 이제 학원에서도 명상을 가르치려는 것. 집중력 향상에 좋다고 하니 사교육처럼 ‘주입’하려는 걸까. “당연히 거절했죠. 명상은 어떤 수단도 목적도 될 수 없어요. 특히, 이런 식의 ‘명상의 자본화’는 반드시 막아야 해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진관사 명상센터장 혜주스님. 박윤슬 기자

명상이 여러 분야에서 적확한 시너지를 내기를 바란다는 스님은 ‘자비 명상’을 가장 선호한다. ‘모든 것이 마음에서, 모든 것이 나로부터’인 불교 철학을 가장 명확하게 정리한 행위여서다. 조계종 주최 선명상 체험 행사 등에서 스님은 늘 자비 명상을 이끈다. 타인을 돕고 타인에게 좋은 걸 주는 일…. 다소 어깨가 무거워지는데, 스님은 “자비는 그런 게 아니다”라고 했다. “내 맘이 싫고 고통스러우면 억지잖아요. 희생은 자비가 아닙니다.” ‘나’를 사랑한다. 즉, 자신에게 자비를 베푼 후, 타인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 물론, 궁극적으로 자비는 모든 중생을 향한다. 그래서 명상 연구가 오래된 해외에선 ‘명상적 정의 구현’이라는 말까지 있다. “나, 가족, 친구. 그렇게 조금씩 자비의 범위를 넓히다 보면, ‘억지’나 ‘희생’은 없지요. 자, 오늘부터 모든 말과 행동에 ‘자비 한 스푼’씩 넣으면 어떨까요?”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