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은 퍼펙트, 선발은 노터치… 공정으로 ‘10점 만점’ 협회 이끌다[Leadership]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대한양궁협회장 겸 아시아양궁연맹 회장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024 파리올림픽 기간인 지난달 29일 양궁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우리나라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을 축하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우석, 김우진, 정 회장, 김제덕. 대한양궁협회 제공

■ Leadership - 양궁 전 종목 석권 정의선 대한양궁협회장

선대부터 공정 최우선 강조… 2005년부터 회장직
철저히 성적으로 국가대표 뽑고 스태프도 공채로만
파벌 등 외부요소 배제 통해 ‘순수 실력자’만 남아
車첨단기술, 장비에 적용… 자세·심박수 정밀 분석

한국 양궁 대표팀이 2024 파리올림픽 남녀 개인·남녀 단체·혼성 단체전 등 5개 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내며 ‘전 종목 석권’이라는 경이로운 성과를 보여줬다. 이번 올림픽 양궁 경기에서 우리나라가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면서 대한양궁협회장 겸 아시아양궁연맹 회장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리더십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020년 현대차그룹 회장에 오른 정 회장은 지난해 그룹이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하도록 이끌었다. 아울러 정 회장은 2022년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3위 자동차 기업에 올려놓고 3년 연속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불황의 여파 속에서도 영업이익 26조 원을 넘겨 현대차와 기아가 국내 상장사 영업이익 1, 2위를 차지했다.

정 회장은 본업인 자동차 사업에서 최고의 리더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미국 오토모티브 뉴스는 한 해 동안 자동차 산업에 이바지한 인물들을 뽑은 ‘2023 오토모티브 뉴스 올스타’ 38인을 발표하며 정 회장을 가장 뛰어난 성과를 보인 ‘자동차 산업 올해의 리더’로 뽑았다. 오토모티브 뉴스는 “정 회장은 다양한 미래 기술을 이끌며 모빌리티의 새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며 “정 회장의 구상은 대담하고 미래 지향적이며 창조적이고 현대차그룹은 그의 리더십 아래 자동차 산업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정 회장의 리더십을 두고 20년 넘게 양궁 선수들을 묵묵히 챙기며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 자리를 지키는 데 힘을 보탰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에서는 기업 경영과 양궁 지원 모두 힘쓴 정 회장의 리더십을 두고 ‘공정성’ ‘체계성’ ‘준비성’이라는 3가지 키워드로 표현하고 있다.

◇철저하게 실력과 경쟁으로 승부하는 ‘공정성’= 12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1985년 대한양궁협회 회장사를 맡으며 40년간 한국 양궁에 전폭적인 지원을 이어오고 있다. 정 회장은 아버지 정몽구 명예회장에 이어 지난 2005년부터 대한양궁협회장을 맡고 있다. 정 회장은 이 과정에서 지원은 적극적이고 확실하게 하되, 협회 운영이나 국가대표 선수 선발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학연, 지연 등 이른바 파벌로 인한 불합리한 관행이나 불공정한 선수 발탁 없이 철저하게 실력, 공정한 경쟁으로 선발하기 위해서다. 명성이나 이전 대회 성적보다는 현재의 성적으로만 국가대표가 될 수 있고, 코칭스태프도 공채를 통해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발된다. 정 회장은 지난해 12월 1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서울 호텔에서 열린 ‘2023 한국 양궁 60주년 기념행사’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공정하게 경쟁했는데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쳐도 괜찮다”며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품격과 여유를 잃지 않는 진정한 1인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선수들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지난 2021년 열린 도쿄올림픽과 2023년 항저우아시안게임 당시에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회가 1년 연기되자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이 다시 열렸다. 직전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라 해도 다음 대회에 선발된다는 보장은 없다. 실제로 치열한 선발전을 통해 도쿄올림픽 3관왕을 기록한 안산 등 전 금메달리스트 대신 전훈영(30·인천시청), 남수현(19·순천시청)이 국가대표가 됐다. 이번 올림픽 3관왕에 등극한 김우진(32·청주시청)은 기자회견에서 “대한양궁협회는 선수 누구나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협회”라고 밝히기도 했다.

◇첨단기술 동원한 시스템을 지원하는 ‘체계성’= 정 회장이 이끄는 대한양궁협회는 현대차그룹 지원 아래 체계적인 선수 훈련 시스템을 도입했다. 정 회장은 이달 4일 양궁 남자 개인전 경기가 끝난 후 한국 양궁이 강한 면모를 보이는 원동력을 묻는 질문에 “선대 회장님 때부터 이어져 온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유소년부터 국가대표에 이르기까지 우수 선수 육성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특별지원으로 일선 초등학교 양궁 장비와 중학교 장비 일부를 무상 제공하고 있다. 지난 2013년에는 초등부에 해당하는 유소년대표 선수단을 신설해 장비와 훈련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유소년대표(초등학생)-청소년대표(U16·16세 이하)-후보선수(U19·19세 이하)-대표상비군(U21·21세 이하)-국가대표’에 이르는 우수 선수 육성 시스템을 체계화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양궁대회인 ‘현대자동차 정몽구배 한국양궁대회’를 개최하는 등 양궁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양궁의 스포츠 과학화를 통한 경기력 향상을 위해 기술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의 자동차 연구·개발(R&D) 역량을 활용해 양궁 훈련장비와 훈련기법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선수와 일 대 일 대결을 펼치며 경기 감각을 높이는 ‘개인 훈련용 슈팅로봇’, 슈팅 자세를 정밀 분석해 완벽한 자세를 갖출 수 있도록 돕는 ‘야외 훈련용 다중카메라’, 어디서든 활 장비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휴대용 활 검증 장비’, 비접촉 방식으로 선수들의 생체정보를 측정해 선수들의 긴장도를 파악하는 ‘비전 기반 심박수 측정장비’ 등을 제공했다.

정 회장의 이 같은 체계적인 지원은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자동차가 내연기관 모델에서 전기차 모델로 전환하는) ‘전동화’ 전환이 진행되는 흐름에 맞춰 신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현대차그룹의 혁신 행보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대중화를 위해 야심 차게 내놓은 모델에 그룹 최초로 적용한 새로운 기술을 공개하기도 했다. ‘캐스퍼 일렉트릭’에는 차량 전후방 1m 이내에 장애물이 있는 상황에서 가속페달을 밟았을 때 이를 오조작으로 인식해 제동하도록 한 ‘페달 오조작 안전 보조’(PMSA) 시스템이 적용됐다.

◇4년 뒤 LA올림픽을 대비하는 ‘준비성’= 정 회장은 파리올림픽 양궁 경기가 마무리된 이후 벌써 2028년 LA올림픽에 눈을 돌리고 있다. 정 회장은 “LA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곧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대회에서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분석해서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장영술 대한양궁협회 부회장은 통화에서 “정 회장은 늘 올림픽이 끝나면 다음 올림픽 준비에 돌입해 왔다”며 “현대차, 양궁협회 등 관계자들이 모여 다음 대회를 위해 필요한 사안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난상토론’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의지를 강조해 왔다”고 전했다.

앞서 정 회장은 직전 대회인 도쿄올림픽이 끝난 직후부터 대한양궁협회와 함께 파리올림픽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실제 경기장인 레쟁발리드 경기장과 똑같은 시설을 충북 진천선수촌에 조성하도록 해 실전 연습 환경을 제공했다. 레쟁발리드 경기장에서 약 10㎞ 떨어진 스포츠클럽을 통째로 빌려 국가대표팀만을 위한 전용 훈련장을 설치하는 한편, 별도로 경기장에서 300m 떨어진 거리에 선수단 휴게 공간도 마련해 줬다. 식사는 한식을 비롯해 소화가 잘되고 체력 유지에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 준비됐다. 또 올림픽 개막식 전부터 현지에 미리 도착해 우리 선수들의 전용 훈련장과 휴게공간, 식사 등 준비 상황을 꼼꼼하게 살핀 것으로 전해졌다. 장 부회장은 “마지막 경기인 남자 개인 결승전에서 김우진의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기도하는 정 회장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많은 양궁인은 대표팀뿐만 아니라 정 회장이 5관왕을 했다고 표현할 정도”라고 말했다.

올림픽 참석을 겸한 약 10일간의 파리 출장을 마친 정 회장은 지난 7일 귀국한 뒤 다시 현업인 자동차 업계로 돌아왔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등으로 인한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 회장의 ‘금빛 리더십’이 현대차의 더 큰 성장을 위한 행보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24 파리올림픽 남자 개인·단체전, 혼성 단체전에서 금메달 3개를 차지한 한국 양궁 국가대표 김우진(32·청주시청)이 지난달 4일 충북 진천군 진천선수촌에서 진행된 스페셜 매치에서 양궁로봇과 대결하고 있다. 대한양궁협회 제공

큰 대회 앞둔 선수에 ‘멘털관리’ 서적… 선물도 ‘디테일하게’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양궁 국가대표 선수와 회사 임직원들에게 책을 선물해 눈길을 끌었다. 주로 정신력을 고양시키거나, 삶의 철학과 기업 경영 등에 대한 통찰력을 주는 내용이다. 정 회장은 평소 각 분야 인재들이 보다 성장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재계에선 정 회장이 식견과 안목, 인간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두루 겸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 회장은 지난해 열린 항저우아시안게임 당시 양궁 선수들과 점심을 함께하며 미국의 스포츠 심리학자 짐 아프레모가 쓴 ‘챔피언의 마인드’를 선물했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를 경험한 선수들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법을 알려주는 이른바 ‘멘털 트레이닝’ 서적이다. 아시안게임에서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일상으로 돌아온 선수들에게 큰 위안과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2021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는 미국 트리니티 칼리지의 스쿼시 코치인 폴 아시안테가 집필한 ‘두려움 속으로’를 스쿼시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건넸다. 이 책은 스쿼시팀 선수들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의 다양한 노력과 경험 등을 풀어냈다. 정 회장은 선수들에게 당시 “긴장을 극복하고 건강하게 최선의 경기를 펼쳐달라”고 당부했다.

정 회장은 2020년에는 대표 등 고위 임원들에게 중국의 유명 경영 컨설턴트이자 칭화(淸華)대 교수인 왕중추(汪中求)가 쓴 ‘디테일의 힘’을 선물했다. 이 책은 개인·기업·국가 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디테일’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일본 완성차 기업인 토요타가 미국에서 자사 임직원이 3개월간 머무르며 가정의 특성에 맞게 설계된 캠핑카를 출시하기까지 과정을 담았다. 특히 치밀한 사전조사를 통해 사소한 부분에서도 성장 전략을 모색하는 ‘가이젠’(改善·토요타가 1990년대 초 비용절감을 위해 내놓은 생산성 혁신운동) 정신을 소개해 반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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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회장은…

△서울 휘문고 졸업(1989.2)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1993.8) △미국 샌프란시스코 경영대학원 졸업(MBA)(1997.8) △기아자동차 사장(2005.3~2009.8) △현대자동차 부회장(2009.8~2018.9)△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2018.9~2020.10) △국제 수소위원회 공동 의장(2019.1~2020.7) △대한양궁협회 회장(2005.5~) △아시아양궁연맹 회장(2005.11~) △현대차그룹 회장(2020.10~)

최지영 기자 goodyoung17@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