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빈 객실서 발화… 소방당국 “전기적 요인 유력”

노후건물 누전·합선 가능성 커
“객실서 흡연…” 담뱃불 의혹도

‘부천 호텔 화재’ 최초 발화추정지점인 810호가 빈 객실이었는데도 불이 난 원인으로 ‘전기적 요인’이 지목됐다.

조선호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은 23일 오전 화재 현장을 방문하고 “전기적 요인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810호 객실엔 당일 투숙객이 없던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타는 듯한 냄새가 난다”면서 당초 810호에 입실했다가 객실을 바꿔달라고 했다는 손님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도 전기 사고 가능성을 거론했다. 에어컨 등 고전압을 요구하는 전자기기들의 사용량이 많아지는 여름철인 데다가, 지어진 지 20년이 넘은 호텔인 만큼 전선 등이 노후화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투숙객이 없는 방에서 불이 났다면 전기 사고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했다. 이어 “호텔처럼 전기 사용량이 많은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전선 피복 등이 벗겨지면서 누전·합선 등에 취약해진다”며 “사람이 없어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대기전력’만으로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놓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근 B 호텔의 관리인도 “호텔은 가장 치명적인 사고인 화재를 항상 염두에 두고 점검하는데, 빈방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화재는 합선 등 전기 문제밖에 없다”고 전했다.

다만 감식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은 만큼 담뱃불이나 취사도구 등에서 불씨가 옮겨붙었을 가능성도 여전히 있다. 입구에 ‘관광호텔’이라고 쓰여 있는 이 호텔은 중국, 러시아 등 외국인들의 방문이 잦은 곳이었다고 한다. A 호텔은 온라인 예약 페이지 등에선 ‘전 객실 금연’으로 안내돼 있지만 “객실에 담배 냄새가 진동한다”는 후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 인근 주민은 “버너같이 불을 쓰는 취사도구를 호텔 안으로 들고 가는 외국인들을 자주 봤다”고 말했다.

사망자 7명을 포함해 총 19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데에는 스프링클러 부재도 원인으로 꼽힌다. 2017년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6층 이상 모든 신축 건물에 층마다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가 됐지만, 2003년 준공된 이 호텔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은 탓이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호텔의 카펫이나 내장재 등에서 유독가스가 많이 나오게 되는데, 대피 중에 이를 흡입하고 계단에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수한·노지운·조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