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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맙습니다 - 내 평생 친구, 비에게
나는 비가 참 좋다. 소나기도 좋고 이슬비도 좋고 폭우도 좋다. 몇 날 며칠 내리는 장마도, 깜짝 이벤트처럼 예고 없이 슬쩍 찾아왔다가 도망치는 소나기도 좋다. 비가 오기 전 안개가 껴 어둑한 하늘도 좋고, 비가 내려서 축축해진 땅도 좋다. 빗방울이 우산에 닿아 부서지는 빗소리도 좋다. 어릴 적부터 비를 그렇게도 좋아했다. 비가 가져다주는 갑작스러운 모든 선물을 사랑한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머릿속에 생각이 많고 외로운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내 삶을 돌아보면 영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생각이 많아질 때면 이끌리듯 비를 찾았다. 나는 비를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어릴 적 난 맞벌이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 홀로 방 안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 방안엔 적막함만이 돌곤 했다. 그런 나날들을 보내던 내게 비는 묵묵히 곁에 있어 주는 친구와 같았다. 규칙적이면서 불규칙한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는 내게 말을 거는 듯했고 비가 내리는 동안엔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난 우산 아래에서 빗소리를 듣는 그 정도로만 딱 비를 좋아했다. 비 내리는 하늘 아래에서 비를 온전히 다 맞는 걸 좋아할 정도는 아니었다. 비를 맞으면 뒤처리가 많아지는 게 싫었다. 스스로 물기로 가득한 몸을 닦아내야 하고, 축축해진 신발을 씻고 말리기까지 해야 했다. 빗방울은 얼마 없는 나의 머리카락도 앗아가기까지 했다. 그렇게 비를 맞는 순간의 기쁨을 위해 따라오는 수고로움이 너무 많다.
이런 수고로움을 벗어던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한 날은 따릉이를 타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기숙사까지 30분이나 남았는데 폭우가 쏟아졌다. 폭우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망설이다 그냥 빗속에서 자전거를 타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차가운 빗방울이 몸을 적시고 옷이 축축해지자 찝찝함이 들었다. 그런데 가림막 없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를 30분을 맞으며 기숙사로 돌아왔을 땐 알 수 없는 쾌감이 들었다. 생각보다 비를 맞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짜릿했다. 다들 우산 아래에서 피하는 비를 나만 맞고 있는 상황도 재밌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때부터였다. 비 내리는 걸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비를 맞기까지 좋아하게 된 순간이.
성인이 되고 대학교 고학년인 지금 나는 늦은 저녁에 밖에서 달리는 걸 좋아한다. 달릴 때만큼은 잡생각이 머릿속에서 잠시 나가 있기에.
며칠 전에도 여느 때와 같이 러닝을 하러 나갔다. 매일 편도로 4㎞, 왕복 8㎞를 뛰곤 하는데 한 3㎞쯤 갔을 때 비가 갑자기 쏟아졌다. 이마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맺혔던 땀을 모두 씻겨내 주었고 등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뛰고 있는 내 등을 토닥이며 격려하는 듯했다. 울어도 된다고, 내가 가려줄 테니 마음껏 울라고 비가 말을 거는 듯했다.
그렇게 언제부턴가 비가 오는 날은 자연스레 우는 날이 되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뛰면서 편하게 울어본다. 울어도 티가 안 나서, 비가 나 대신 변명을 해줘서 주저하지 않고 울 수 있다. 내 몸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한편에 묻어둔 아픈 기억과 머릿속을 꽉 차고 있는 고민을 치워주고 그 자리에 희망을 심어준다. 나는 항상 날 찾아오는 비에게 의지한다. 비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소리 없이 대가 없이 행복을 주고 홀연히 떠난다. 다음번 비가 오는 날엔 한달음에 달려나가 하늘 보며 활짝 맞이할 것이다. 꼭 고마운 마음을 아낌없이 전부 전해주고 싶다.
김유빈(성신여대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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