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체크’ 병행한 美 대선 TV토론[포럼]

김용호 연세대 교수·국제정치학

대통령 선거에 TV토론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60년 9월이다. 47세의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부통령은 8년 부통령 관록과 많은 TV 연설 경륜으로 존 F 케네디 상원의원을 가볍게 공략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닉슨이 놓친 게 있었다. 무릎을 다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던 데다 방송 진행자들이 제공하는 분장까지 거부한 것이다. 결국, 그는 땀과 기름기가 번득이는 얼굴로 화면에 나타났다. 반면, 상·하원에서 잔뼈가 굵은 케네디는 캠프에 분장팀까지 꾸리고 있었다. 네 살 차이였지만 케네디는 젊고 패기 있는 후보로, 닉슨은 피곤하고 노쇠한 후보로 각인된 것이다.

지난 10일 열린 미 대선의 첫 TV토론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 비해 비교우위를 즐기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검사장 출신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정면대결이었다. 두 후보의 나이 차이는 18년. 두 후보 모두 필살기를 들고나왔다.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의 인기 없는 정책과 해리스를 한데 묶어 공략했다.

“해리스는 바이든이다.” “해리스가 당선되면 미국의 종말이 올 것이다.” “난 바이든도 아니고 트럼프는 더더욱 아니다.” “트럼프의 정책들은 ‘해묵고 지겨운 각본’이다.”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 시에서 불법 이주자들이 애완동물을 잡아먹었다는 트럼프의 발언은 패착이 될 듯하다. 뉴욕타임스는 ‘해리스가 덫을 놨고, 트럼프가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는 소제목을 뽑았다. 토론이 끝난 뒤 트럼프가 스핀룸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 그가 직접 나타났다는 것은 토론에서 열세를 깨닫고 반전을 꾀하려는 시도라는 평이 나왔다.

미국의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폭스뉴스와 CNN은 한쪽에 편향된 보도를 쏟아냈다. 이젠 미국도 확증편향의 양극화 현상이 팽배한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이번 TV토론에서 진행자들이 후보의 발언 내용을 현장에서 확인해 사실 여부를 가려 밝히는 절차는 다음 우리 대선에서도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 즉흥적인 토론 과정에서 ‘표현의 명확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우리 법원의 결정을 보완해줄 제도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국제 공조보다는 미국만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대외정책이 추진돼 미국과 동맹국의 치명적 안보가 희생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 여론도 여기에서 파생된 것이다. 해리스는 트럼프의 이런 정책이 오히려 미국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비난한다. 해리스가 당선되면 인도·태평양 전략의 큰 그림이 계속되겠지만, 북한과 대화를 추구할 가능성도 있다. 젊은 체인저를 자처하는 해리스가 북핵 문제를 매듭지으며 새로운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의 큰 그림을 그리려 할 것이고, 북한은 국제 제재와 경제난을 더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이다. 해리스가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인해 하루에 3억 달러의 전비를 부담할 필요가 없어졌다’ ‘역사상 처음으로 현재 지구상 그 어디에도 전장에서 싸우는 미군은 단 한 명도 없다’고 한 대목은 귀담아들어야 한다.

신뢰받는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은 예측 가능성이다. 설익은 정책을 인기 끌겠다며 섣불리 던지면 국제사회 전반에 커다란 악영향이 미친다. 강한 국가를 열망하는 미국 유권자들이 자신들과 국가를 책임질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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