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범죄자라도… 작품은 ‘무죄’일까[북리뷰]

■ 괴물들
클레어 데더러 지음│노지양 옮김│을유문화사

인성 대신 재능갖춘 예술가들
창작물에 대한 애증 느끼게해
‘예술 덕후’ 저자의 딜레마 담아

작품 사랑하는 감정 비난못해
괴물 낳는 사회구조 바뀌어야

이상한 날이다. 낮에 시내로 나가는 지하철에서 올해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작품집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문학동네)을 읽었다. 저녁엔 지인과 오랜만에 만나 수다를 떨다가 스치듯 김기덕 감독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한밤중 집에 와서 미국 작가 클레어 데더러의 ‘괴물들’을 읽었다.

이 책은 2017년 말 미국의 문학잡지 ‘파리 리뷰’에 실린 에세이에서 시작됐다. ‘괴물 같은 남자들의 예술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미투(#MeToo) 운동이 한창이었을 때다. 폭로가 이어지면서 예술계를 지배하던 괴물들이 파산하고, 그들의 작품이 ‘취소’되어 퇴출됐다. 그와 함께 한때 그 작품에 열광했던 우리 마음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사전상 괴물의 정의는 ‘무서운 것, 거대한 것, 성공과 관련된 것’이다. 우리는 그것에 끔찍한 혐오와 함께 숭배의 유혹을 느낀다. 우리 안에도 그것이 있음을 은연중 알기 때문인 듯하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보여주듯, 예술가는 그걸 끄집어냄으로써 인간의 극명한 이중성을 폭로하는 일에 재능을 갖춘 자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우리의 예술적 영웅이 그 매혹적 어두움, 그 뛰어난 반도덕을 삶에서 행했을 때, 우리는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2017년은 저주받은 이 괴물이 작가의 삶을 둘러싼 죽어버린 질문을 부활시킨 해다. 한 작가의 전기적 사실을 무시하고, 그 작품을 제대로 읽는 게 가능할까. 우리 도덕과 우리 예술 사랑이 조화를 이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에서 저자는 괴물의 정의를 새로 내린다. “특정 행동으로 인해 우리가 어떤 작품을 작품 자체로 이해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람”이다. 괴물들은 끔찍한 말이나 행동으로 비난받았고, 동시에 훌륭한 작품을 지어 우릴 매혹했다. 우리는 그런 괴물을 숱하게 만날 수 있다.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는 열세 살 소녀 서맨사 게일리를 성폭행했다. 우디 앨런은 애인 미아 페로의 10대 딸 순이 프레빈과 동침했다. 윌리엄 버로스는 아내를 총으로 쏘고, 에즈라 파운드는 파시즘에 부역했다. 모성을 버린 여성 예술가 괴물도 있다. 성공을 위해서 도리스 레싱은 아이를 두고 떠났고, 조니 미첼은 갓난아이를 입양 보냈다. 물론 왜 여성만 죄책에 빠질 정도로 양육 책임을 지느냐는 당연한 반문도 있다.

저자의 서술 방식은 매우 독특하다. ‘관객의 자서전’을 쓰겠다는 말대로, 미투 시대가 환기한 이 묵직한 주제를 이론적·체계적으로 파고드는 대신 “혹시 나도 괴물일까?”라는 성찰적 고백, 무수한 성희롱과 성폭행 위기를 넘어 생존한 자전적 서사, 예술 애호가로 치열하게 살아온 삶에 대한 회고, 현대문화의 쟁점들에 관한 비평적 통찰이 어우러진 태피스트리를 짜나간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이 책에서 저자의 매력적 비평(‘롤리타’ 분석은 내가 읽은 가장 탁월한 비평에 속한다)과 함께 예술가 괴물과 그 작품에 대한 공감과 분노, 탄식과 애착으로 이루어진 감정의 폭풍과 곧장 마주친다. 자기감정 분석을 무기로 하는 비평이 문학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시대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 예술가의 삶에 민감하다. 인터넷 덕분에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는 예술가를 코앞의 친밀한 존재로 만들고, 우리 정체성을 그와 그 작품에 투사하게 만든다. 이로부터 팬덤과 취소 문화가 나타난다. 말실수에서 범죄까지 그들의 행위가 남긴 어두운 얼룩은 내 자아를 더럽힌다. 우리는 모욕과 수치에 치를 떨고, 상처를 분노로 바꾸어 서둘러 그들을 취소하고 제거하려 애쓴다.

문제는 이미 우리의 끈끈한 일부가 된 그 작품을 말끔히 삭제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사랑을 맺고 끊는 게 쉬우면, 애착이나 트라우마 같은 말이 존재할 리 없다. 서정주의 마술적 한국어는 그의 친일 행적을 안 다음에도 여전히 마음의 혀를 구르게 한다. 이게 우리 잘못은 아니다. 애증은 우리 삶의 기본 형태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괴물일 수 있음을 알기에, 우리는 끔찍하게 미워하는 이들과도 미움과 증오, 용서와 화해를 교차해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진짜 잘못은 괴물의 작품을 사랑한 우리가 아니다. 온갖 이유로 그를 면책하고 부추겨 큰돈을 챙긴 가부장제 자본이다. 따라서 윤리적 표백을 위해 한때 사랑했던 작품 앞에서 괴로워하며 모조리 삭제하고 취소하며 무찌르려 애쓸 이유는 없다. 차라리 그런 괴물을 지속해서 생산하는 사회 개혁에 눈 돌려야 한다. 문제는 언제나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타락한 구조다. 340쪽, 1만8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