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DX 표류 누가 책임지나[뉴스와 시각]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건조해 임진왜란에 대비하지 못했다면 조선은 조기에 멸망했을 가능성이 크다. 선진 방위산업과 우수한 무기체계는 현대전에서도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다. 현대판 거북선에 비유되는 함정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이다. 2036년까지 6000t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을 순수 국내 기술로 건조해 실전 배치하는 KDDX 사업비는 7조8000억 원. 당초 일정대로라면 지난 7월까지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을 끝냈어야 했다. 사업자 선정이 늦어지면서 사업 연기설까지 나온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특정 사업을 두고 끝없는 법정 공방 등 이전투구를 벌이는 업체 간 과열경쟁 탓이 크다. 더구나 이런 상황을 조정하고 관리해야 할 방위사업청이 업체 눈치 보며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면서 불필요한 비용 지불과 군 전력화 차질로 국익을 해친다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연말까지 지연되면 손실액이 1000억 원대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전력화 지연 또는 사업 좌초로 발생할 안보 공백은 상상을 초월한다. 업체 간 과열경쟁과 진흙탕 싸움이 호기를 맞은 K-방산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 미래를 갉아먹을 것이란 우려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근 천궁-Ⅱ 수출을 두고 컨소시엄 관계에 있는 LIG넥스원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간 갈등이 불거졌고,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방사청의 중재 역할론에 회의적 반응도 나온다.

우리는 천신만고 끝에 자체 설계기술을 확보,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번째 국산 이지스함 건조국 문턱까지 이르렀다. 50년간의 함정 국산화 대장정에서 가장 어려운 관문에 도전하고 있다. 이지스 전투체계 국산화를 바탕으로 KDDX에 최초 탑재될 통합 전기식 추진체 업체 주도 개발 포함, 완전 전기식 전투함을 독자 기술로 연구·개발하는 사업이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 업체를 선정하지 못한 채 시간만 허비하는 현실은 안타깝다.

방사청은 최근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두 업체가 공동으로 KDDX 상세설계에 참여한 후 1·2번함 공동 개발, 동시 발주, 동시 건조를 포함한 다양한 사업 추진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그동안 방사청은 기본설계 수행 업체에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수행하게 하는 원칙을 고수해 왔다. 지난 2월에는 한화오션이 제기한 사안과 관련해 계약심의위원회에서 기본설계 수행 업체가 부정당업체로 제재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한데 ‘공동 상세설계, 1·2번함 동시 건조’ 방식은 연구·개발 단계에서 복수 업체를 지정하는 것으로, 함정 건조 사업에서 전례가 없다. 이로 인한 사업 기간 연장, 비용 증가, 시험평가 책임 소재 등의 문제가 불거져 사업이 늪 속에 빠져들 수 있다. 상세설계를 공동으로 수행하면서 시험평가는 1번함 건조 업체가 맡게 된다면 누가 건조에 나설지 의문이다. 특정 업체는 책임과 손실만 떠안게 되고 다른 업체는 일방적 수혜를 입는 상황이 만들어져 특혜 시비 등 감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방사청은 규정과 법적 문제가 없게 하면서 국내 함정 기술 및 수출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는 상생의 해법을 빨리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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