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밝을 필요는 없어… 회색빛 감정도 괜찮아” [어린이 책]

■ 어린이 책

오늘은 회색빛
로라 도크릴 글│로렌 차일드 그림│웅진주니어

그림책의 주인공은 “나는 오늘 회색빛이에요”라고 말한다. 회색빛 기분이란 새카만 밤하늘, 종이 위의 낙서, 길 위의 웅덩이, 식어버린 차 같은 것이라고 아이는 부연한다. 또 그건 내가 나답지 않을 때 드는 낯섦이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혼자인 것 같은 외로움이기도 하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애써보지만 자신도 그 실체가 무엇인지 다 알기는 어렵다.

사회적 역할이나 지위 등에 따른 마음가짐과 행동 양식이 고정적이고 규범적인 사회에서는 감정을 절제하고 보편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도덕이나 연대의 실현을 위해 자부심보다는 겸손함을 우위의 덕목으로 두기도 한다. 혹은 기쁨이나 설렘 같은 감정은 긍정적이지만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감정은 부정적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 가지 색깔이 아니다. 사실 감정도 너무나 다양해서 감정의 스펙트럼을 몇 가지 개념으로 일반화하거나 평가할 순 없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아이들이라고 매일 해맑게 웃으며 씩씩하게만 자랄 순 없는 노릇인데, 어른들은 어른들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아이의 감정을 부정하거나 교정하려 든다.

회색빛. 아이가 혼란스러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그 빛깔은 벅차도록 멋지다. 회색빛 웅덩이에서 첨벙거릴 수도 있고, 회색빛 돌바닥에서 색칠놀이를 할 수도 있다. 마음이 느끼는 모든 빛깔은 서둘러 분류되거나 치워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자신을 이루고 타인을 이해하는 데 귀하게 쓰일 빛들이다. 곁에 있는 누군가 힘들어할 때 나는 네 마음의 주인은 바로 너야, 라고 말해주고 싶다. 또 네 마음이 어떤 빛깔이어도 너를 사랑한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40쪽, 1만6800원.

신수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