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강의 계엄 비판 동감… 어둠속서 더 밝은 빛 볼 수 있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8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만난 2023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욘 포세.

■ 작년 노벨문학상 욘 포세… 한국 계엄사태 등 소회 밝혀

“무력 통한 국회 장악 안돼
우크라 분쟁 등 너무 절망적
저녁 지나면 반드시 아침 와

한강 작품 사랑 언어에 감동
집필 끝난 뒤에 바로 읽을 것”

오슬로(노르웨이)=글·사진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한강의 강연을 실시간으로 챙겨 들었습니다. 한강만의 언어로 오랫동안 간직해 온 사랑에 대해 전해준 것은 큰 감동이었습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노르웨이의 희곡 작가 욘 포세는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예술가의 집(Kunstnernes Hus)’에서 8일(현지시간) 문화일보와 만나 한강 작가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그도 한강 작가의 수상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노벨 위크’를 관심 있게 지켜보던 터였다.

거두절미하고 우선 한국의 혼란한 정치 상황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인터뷰 초반엔 꺼내 놓지 않았던 스누스(무연 담배)를 집어 들며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답변했다. “한국의 사정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지만 무력으로 국회를 장악하려 한 것은 분명 심각한 상황입니다. 한강 작가가 일련의 사태에 관해 밝힌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한강 작가는 지난 6일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 아카데미에서 열린 글로벌 기자회견에서 비상계엄에 대한 질문에 “지난 며칠 동안 많은 충격을 받았다”면서 “맨손으로 군인들을 껴안으며 제지하려는 모습 등에서 진심과 용기를 느낄 수 있었다.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포세는 “문학 밖의 일들에 대해 (나는) 뛰어난 통찰을 가지지 못했다”며 몸을 낮췄다. 그러나 그는 다층적 위기를 마주한 세계와 인간에 대해 놀라운 이야기들을 풀어 놓았다. 그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쓴다’라는 행위였다. 신념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혼란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절망적 조건을 생각하는 일만을 계속할 수는 없다”며 “원래 하던 것처럼 계속 쓰고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글에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사회적 조건이 악화하는 경우에 대해선 뜻이 단호했다. “당연히 싸워야 합니다. 사회적 위기가 너무 심각해서 우리의 소중한 것을 상실하게 만든다면 다른 무엇을 할 수도 없으니까요.”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향해 경고했다. “우리는 분명 평화를 위한 걸음을 내디뎠던 과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에게는 남북정상회담 같은 장면이 될 수 있죠.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평화를 재건할 기회를 멀어지도록 만들 뿐입니다.”

포세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며 ‘희망’에 관한 화두도 던졌다. 그는 밤이 긴 북유럽에서 평생을 살았다. 어둠은 그의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였다. “어둠을 알아가는 것은 빛을 알아가는 일입니다. 어둠 속에 있을 때 더 밝은 빛을 찾아낼 수 있죠.” 그의 작품 ‘아침 그리고 저녁’ ‘샤이닝’ 등에도 녹아있는, “반드시 저녁을 지내야만 아침이 오고 새로운 날이 시작된다”는 생각은 답답한 상황에 처한 한국인들에게 어느 때보다 큰 응원으로 다가왔다.

스스로가 “마음속 큰 어둠을 간직한 사람”이라고 말한 포세는 어떻게 어둠 속에서도 희망과 사랑을 쓸 수 있는 것일까. “작품을 쓸 때 오로지 이전에 전혀 안 적이 없었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말이 단서다. 그가 마주한 “노르웨이 서부의 피오르 해안과 파도에 귀 기울이고 앉아있는 일”은 어느 순간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어둠과 침묵 너머의 감각을 그의 머릿속에 그려낸다는 것이다. 심지어 포세는 “잠에서 깨자마자 꿈이 지워지기 전에 곧바로 써내려간다”는 특유의 집필 습관도 고백했다.

한강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아직 읽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집필 중인 원고를 끝내면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노벨상에 대해 “분명 수상 이후 작가의 삶은 바뀌게 된다”며 “무엇보다 자신의 세계를 지켜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지난해 노벨 박물관에 기증한 자신의 육필 원고가 내년에 출간된다는 사실도 전했다. “그동안의 작품과 대조되지만 지금껏 제가 쓴 글 중 가장 가볍고 유머러스합니다(웃음).”